음... 지난번 선생님과의 상담 이후로 생각을 더듬어봤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나 죽음을 그리워했는지 말입니다.
원인은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저에게 강렬하게 남겨진 것 하나는 있습니다. 웃으실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책 속 캐릭터 하나였습니다.선생님도 보셨을까요? 안 보셨을 것 같긴 한데, 여튼 사이코메트러 에지라는 만화였습니다. 어... 좀 변태스럽고, 좀 괴기한 면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렇게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 도서는 아니었지 싶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만화든, 책이든, 백과사전 조차도요. 그렇게 접한 만화 속 캐릭터 중 칸나비스가 남긴 대사가 아마도, 일생 저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칸나비스(cannabis)라는 이름은 마약을 대략 통칭하는 단어지만, 이 만화에선 괴롭고 슬픈 사연을 가진 살인청부업자로 나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 캐릭터가 유독 머리에 각인된 이유... 제가 처음 본 여장 남자였는데 몹시 예쁜 데다가 잔혹한 강함에 혹했다고 해야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하지만 그때 만화를 볼 땐 그가 남긴 이 말들이 저의 평생을 쥐고 흔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포근함으로 각인된 죽음은 그래서 지금 이 나이까지도 저를 쥐고 늘 그리운 대상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죽음은 두렵거나 공포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공포와 고통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끝끝내 다가서야 할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걸 실천에 옮길 기회는 꽤나 여러 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의 끝을 막은 게 바로 18년 전 만난 큰 아이 었고요.
그날에 그 순간에 그 시간에 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연년생으로 줄줄이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저의 삶은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에 끝이 났겠지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게 있어서 다섯 아이를 평균 수명 이상까지 큰 탈 없이 잘 키워냈다는 건, 한 아이도 어린 날에 먼저 앞서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저의 꽤 큰 자랑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이 아이들을 세상 풍파 속에서 버려두지 않고, 작은 집, 별 볼 일 없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춥지 않게, 굶지 않게, 쓸쓸하지 않게 키워낸 건 제 유일한 뿌듯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화장 문화가 철저히 발달한 우리 나라라고 해도 혹시 묘비를 만들 수 있다면, 저는 그 곳에 다섯 아이들의 엄마라고 적히면 좋겠다.. 늘 막연하게나마 꿈꿔오곤 했습니다.
막연했고 그저 마음속 깊숙이 곱게 접어 넣어두었던 어린 날의 꿈처럼 여겨졌던 그 순간이 큰 아이가 16살의 나이로 죽고 나서, 그리고 또 한 아이가 떠나고 나니 뭐랄까, 이젠 좀 더 현실로 다가와 버렸습니다. 이제 엄마의 역할이 끝나가기에 저의 마무리도 구체화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선생님과의 상담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살아봐라, 살아야 한다, 사는 것이 낫다, 죽으면 안 된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그런 건 이미 안팎으로 신물 나게 들어왔습니다. 살아서 그다음엔?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뭐 어떻게든 살면 되지- 라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사이에 선생님까지 보태고자 시작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해답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요청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약물이 될지, 계속된 상담이 될지 그 외의 무언가가 될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아실까요? 지금 선생님의 표정으론 선생님도 아직은...이라는 표정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