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상담이군요... 늘 저의 긴 침묵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진짜 말하는 법을 잊은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오늘도 자유 주제인가요? 그렇군요, 그럼 음...
선생님은 '노인냄새'라는 걸 아시나요? 그, 나이 든 사람에게 나는 특유의 체취말입니다. 언젠가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요, 주름진 살들 사이에서 씻어도 씻기지 않는 땀 잔여물이나 각질, 기름 잔여물에서 나는 냄새라 하더군요.
그런데 고양이들에게도 노묘 냄새라는 게 있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전에는 나지 않았던 체취들이 입 주변이나 등, 엉덩이, 또 정수리 쪽에서 나곤 합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요즘 밤마다 붙들려 양치질과 물티슈 세수질을 당하고 있답니다.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 하던 걸, 엄마가 백수가 된 통에 매일 당하려니 꽤나 싫었던지 버둥대긴 하는데, 다들 힘이 장사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당해주는' 아이들이 나름 참 고맙기도 합니다.
그러다 며칠 전 딸아이의 볼을 보았을 때 뭔가 엉켜있길래 어디서 또 구석을 탐험하다가 묻었나 싶어서 휴지로 닦아냈는데, 어느샌가 핏물과 진물이 동시에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 닦아낸 아이 볼은 어딘가에 찍힌 듯,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사실 고양이 다섯을 키워낸다는 건 네 살짜리 다섯 쌍둥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저쪽에서 두 놈 싸우는 거 말려놓으면 이 쪽에서 두 놈 또 투닥거리고 저 멀리서 또 다른 녀석이 사고 치고 있고 뭐... 그렇지요. 그렇게 18년을 동시에 키워오다 보니, 이 정도 상처에는 사실 놀라지는 않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버둥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이마에 뽀뽀해 가며 볼 주변을 소독솜으로 닦고 고양이 상처 연고를 발라두었습니다. 아이들 비상약 정도는 구비해 두니까요.
아물 것이다라는 건 알았지만 속상했습니다. 어디다 그런 건지 한참을 머릿속에 더듬어봤지만 아무래도 지들끼리 놀다 그랬겠거니, 했습니다.
네, 속상했습니다. 저 작은 얼굴에 다칠 곳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다 늙은 할머니래도 고운 내 딸 얼굴에 생채기라니, 저 부분이 다 아물더라도 털이 안 나면 어쩌지? 하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자꾸 버둥대는 아이를 쓸어안고 안 놓아주게 되더군요.
저희 어머니도 제가 다치면 속상하실까요? 혹은 제가 사라지면 마음이 아프실까요? 그럴 겁니다!라고 냉큼 생각이 따라오진 않는군요..
선생님께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건 있습니다. 저희 집은 중간에 망하거나 불우한 환경이었거나 가정 불화 등등 하고는 거리가 먼 집입니다. 어쩌면 보통 제 나이 때의 부모님보다 더 많은 이해와 배려를 해주시는 분들이세요. 하나 있는 남동생과도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친구에 가까운 관계라고도 볼 수 있죠. 그러니 부모님이나 가족에게서 원인을 찾거나 원망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는 삶이 힘겨웠고 살아 있는 것이 어려웠고 뭐 하나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상황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아이 때부터 일기장에 오래 살고 싶지 않다,라고 썼을 지경이니까요. 그러니 저의 눈을 읽으면서 아하, 지금 네 생각의 근원은 가족이구나!라고 넘겨짚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구나 물어보시면 바로 대답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저는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을 원해왔는지.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20년 전 즈음에 저는 멈춰 섰을 겁니다. 지금은, 아직 저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선택하지 못했을 뿐... 대체 무엇이 저를 이토록 살아 있는 내내 그 그늘 아래 휘감아두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문제는 저 하나가 아닐까요.
지난 수십 년간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 어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던 저는, 문제는 나 하나이다라는 결론 밖에는 내릴 수가 없게 되었고 그것이 선생님과의 상담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