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 남자친구에게서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헤어지자 했고 다시 만나재도 거부했고 그리고 일 년 정도가 지난 시점입니다. 사실 연락이야 거의 두 달 전까지 했었지만, 공식적인 헤어짐은 작년이었습니다. 그 사이 헤어진 사이인데도 다시 헤어지는 과정을 수차례 겪었으니 실감하는 건 사실 몇 개월 전인 듯 하긴 합니다.
여러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아쉬움? 은 그 감정들 사이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드디어 제대로 된 사랑을 찾아갔다는 것이 기뻤고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저를 막아서기엔 역부족인 사람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일 테니까요.
그 사람과 같이 하면서 꾸던 꿈들 중 하나가 유독 기억에 남는데 아주 추운 지방 어느 곳, 눈보라가 치는 와중 아이들과 그와 제가 있던 한 공간에서 저는 아이들을 그 사람 품에 안겨주고 제가 입고 있던 파카도 벗어주며 아이들을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또 아이들의 체온은 사람보다 높아 그가 따뜻하게 있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고 사실 현실 속에서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어 아마 현실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는 그 선택을 했지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같이 살 생각이나 방도는 없었냐 물으시지만, 사실 그 꿈에서도 그런 생각은 안 해봤던 것 같습니다. 그저 저는 계속 아래로 아래로, 그를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생각이 다였지 싶습니다.
그 꿈을 이야기했을 때 울었던 그가, 이젠 다른 사랑을 만났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잘된 일입니다. 한 편으로는 저를 세상에서 떠올려줄 만한 가족 외 사람은 이제 없다는 것이, 마치 저에게는 마지막 실을 끊어낸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해서 뭔지 모르게 마음속 평온함이 찾아온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올해 중순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 뒤로 약 한 달 정도는 메시지들이 온 것 같긴 한데, 하루는 고사하고 일주일, 이주일이 넘게 단 한 통의 메시지도 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 속에서 제가 완전히 잊혀진 것처럼요. 서운하거나 불안하냐고요?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선 아주 안심인 상황입니다. 제가 세상 속에서 사라져도 한동안은 아무도 알지 못할 테니까요.
간혹 이주에 한 번 정도 어머니께서 연락을 하시긴 하지만,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제 말에 위안을 받으시는 듯도 합니다. 예전에 정말 힘이 들어잘 못 지낸다고 솔직하게 말한 때에는 늘 후회를 남겼습니다. 잘 못 지낸 건 나인데, 결국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 하는 쪽도 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젠 그냥 잘 지낸다,라고말하는 편이 가장 편안합니다.
이제 그는 안정된 직장도 찾았고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편하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습니다. 그와 함께 하면서 저는 제 눈으로 밝고 맑던 그가 시들어가는 걸 보았습니다. 생각도, 속도 없이 막 웃어대는 해바라기 같던 그가 말수가 적어지고 채도가 낮아지는 걸 보면서 그게 맞나 싶었습니다.
이젠 그가 저를 잊을까요? 영영 잊어줄까요? 사실 저는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안 좋은 기억은 그다지 기억하지 않는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저와의 기억들을 금세 지우거나 덮어두거나 묻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를 몹시 좋아했거든요. 물론 그도 아이들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는 말을 전하면서 아이들 사진만은 간혹 보내달라는 그의 청을 거절하는 건 사실 조금 망설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저는 그가 아이들을 몹시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꼭 저희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의 속에는 사랑이 차고 넘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저희 아이들 쪽에 손을 뻗어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그의 테두리 안에서 그의 가정과 그의 아이들을 챙기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그게 저의 생각이었는데, 잘못된 걸까요?
아이들 중에서 셋째는 간혹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얼마 전 여름 옷가지들을 정리하다가 미처 그의 옷 하나를 버리지 못한 걸 알고 버리기 위해 방 안에 던져두었는데, 아이가 와서 한참을 냄새를 맡고 비비적대더군요. 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택하여 걷는 길이 아이들에게 최대한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좀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제가 '아저씨'와 헤어진 것을 나중에라도 용서해 줄까요? 부디 그래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