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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Nov 13. 2024

무당과 신점을 보다 전화를 먼저 끊어 버렸습니다

저는 사실 무속 신앙을 믿거나 신점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대충 느껴지시죠? 그런 것들을 의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엔 일단 제 인생이 너무 다사다난했고요, 무엇보다 비용이 아깝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제가 신점을 봤습니다. 네, 놀라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뭐, 하지만 선생님도 지금 저를 보시다시피... 지쳐있으니까요.


사실 선생님과의 첫 상담을 할 때도 그랬지만, 힘드냐? 네, 힘듭니다. 까지는 대답을 할 수 있는데 뭐가 그리 힘드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리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저는 아, 나는 내가 무엇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스스로 뭐가 어떻게 힘든지도 말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구나... 하며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죠.


살면서 신년 운세도 보지 않고 넘어가던 제가 문득 생각이 나 신점을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을 검색하면서 그래도 똑 부러지게 말해줄 무당을 찾은 제 잘못 인지.. 그래도 나름 어르고 달래듯 넘어갈 상대를 찾은 게 아니라, 지금의 저를 어쩌면 따끔하게 혼을 낼 수도 있고 아니면 뭔가 저를 깊은 눈으로 들여다봐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들여다 봐도 모르는 혹은 차마 들여다 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저와 다르게도 깊고 따스한 시각으로 들여다 봐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이토록 이유도 못 대고 어버버... 하고 있는 덜 떨어진 저를, 마치 엄청난 교통 사고 후에 앓는 후유증으로 모든 생각과 기억이 엉키고 부서진 저를 다 안다- 해줄 수 있는 누군가 말입니다.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는 탓에 화상 통화로 신점을 보려 얼굴을 맞대는 순간, 저는 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차... 싶었습니다.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뭐랄까... 손가락 네다섯 개에 끼워진 금반지와 굵은 금팔찌. 울려대는 핸드폰에 빼앗기는 시선. 그냥 아차...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왜 자신을 찾았냐는 말에... 힘이 들어서요.라고 말하니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며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저는 서둘러 지금 직장이 없어서 새로운 직장... 까지 말하고 말이 막혔습니다. 애초에 그걸 다 설명할 거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왔거든요. 사주도 안 본다더니.  



말을 끊은 그 무당은 저에게 대뜸 20대에 신내림을 받았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에? 라며 당혹스러울 정도의 감정이 훅 들어왔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하시듯, 저도 신내림이라는 건 뭐랄까 막 아프거나.. 왜 그 기타 등등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까요. 아니, 저는 그런 게 없...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윽박지르듯 꼭 그런 걸 앓아야 신내림을 받나! 하고 고함을 치시더군요. 아, 콘셉트가 이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뭐 예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윽박지르듯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사람과 상냥함으로 자신이 나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지시키려는 사람 중 앞쪽이구나.라고요. 폭풍처럼 휘몰아쳐 들어오는 비난들. 네가 인상도 안 좋아, 성격도 안 좋아, 또 뭐라고 했더라... 비호감 덩어리라 주변에 사람이 없다. 네가 그러니까 직장이 없다.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어디 가서 뭘 하겠냐. 뭐 이런 이야기들?? 이 쏟아져 내리더군요.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해서 딱히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마음가짐은 가져야 하겠다 싶어서 청소하고 씻은 뒤에 머리가 채 마르지 못해 빗질하고 마주한 얼굴에 대고 저에게 미친년 마냥 머리가 그게 뭐냐,라고 할 때도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요즘 마음이 너무 무거워 하루에 한 번 청소하는 것도 간혹은 힘겨워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일어나 청소하고 씻고 오는 통에 머리를 다 못 말렸다 했더니 하루에 한 번 씻는 것도 힘들다고 하니, 돼지새끼냐라고 묻는 말에도 뭐... 반박은 딱히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기본적인 씻고 먹고 하루를 어쨌든 제시간에 일어나 제시간에 자는 것까지 흐트러지면 진짜 이건 안 된다,라는 경고성 알람은 스스로도 가지고 있다고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이미 말했던 터니까요.


하지만 제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전화를 끊어버리게 된 말은 저에 대한 비난이나 질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보고 도대체 왜 사냐,라고 묻길래 고양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라고 답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과 비웃음을 동시에 띄우더군요. 그리고는 걔들은 뭐냐, 해서 길에서 주었다 대답했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쏟아지는, 짐승새끼들 내다 버려라.


딱,

정말 딱 거기까지 듣고 저는 바로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종료했습니다.




조금 지나니 전화가 다시 오더군요. 전화를 끊은 거냐라고 묻길래 끊었다 대답했습니다. 그게 어이가 없었던지,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 자신은 이렇게 무례하게 먼저 전화 끊는 사람에게 점사 못 봐준다 하길래 저도 저희 아이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생각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바로 전화는 끊기더군요. 아, 아까운 내 복비.


너는 그 돈이 아깝지도 않냐? 나한테 왜 점사를 보겠냐고 했냐?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아깝다 생각하지 않던 그 복비가 그 순간 생각나더라고요. 순간 조금 전 화상 통화해서 나, 이런 무당이야 으스대듯 자신에게 찾아왔는데 자신이 깠다는 사람들의 신상이 적힌 카드 뭉치를 흔들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아, 아깝다, 내 돈.


사실 선생님, 저에 대한 매도에 가까운 비난은 뭐... 사람마다 말하는 타입이 다르지 않습니까. 충격 요법을 써서라도 제가 정신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거다 치면 그럼 뭐.. 반박하지 않고(실은 반박할 틈도 주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무당과의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아니요, 선생님. 생각해 보면 사실 한 가지입니다.




무당이라는 사람은 신이라는 존재를 모시며 말을 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말을 전하며 잘 되기를 기원해 주는, 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야 그쪽은 워낙 잘 몰라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용어도 몰라 제대로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헤아려 생각해도 20대 때 신내림을 받았어야 한다는 둥, 지금 얼굴에 받았어야 할 신의 얼굴이 있다는 둥 그런 말들은 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의 말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그 앞에 서 있는 상담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 짐승 새끼들 내다 버려라,라고 내뱉는 대로 내뱉던 그 무당은 이미 그 순간부터 글러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아채는 일이 있으면 야- 멍석 깔아라, 무당이다, 무당.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일 터인데, 그 무당이라는 작자가 앞에 둔 사람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존재조차 무엇인지 모르고 내뱉는 대로 지껄인다면, 이미 그로서 그 무당은 혹은 그가 모시고 있다고 하는 그 신은 영- 글러먹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의 이름을 빌어 호통과 윽박지름을 내뱉던, 손가락마다 번쩍거리는 금 가락지와 굵은 금팔찌를 내보이던 그 무당은... 글쎄요.

아마도 자신을 두고 무례하게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저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런지도요. 아님 신에게 저를 벌하라 빌었을 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이유는 도통 알 수 없지만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싱크대로 달려가 퉤- 하고 뱉어낸 침 안에 피가 잔뜩 고여 있더군요. 마치 안에 들어왔던 더러운 것을 뱉어내듯 그렇게 퉤 하고 뱉어낸 핏덩이 위로, 믿지도 않는 굵은 소금을 저 깊은 곳에서 꺼내 착착- 싱크대에 소리가 울릴 만큼 세차게 뿌려댔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제가 걱정이 되는지 아들내미가 안방에서부터 부엌까지 총총 총총 뛰듯 걸어와 그 커다란 눈을 굴려가며 저를 살피고는 냐- 하고 울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번쩍 들어 품에 안았습니다. 이런 아이를 내다 버리라고요? 그냥 나 살자고 내다 버리라고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순간 진심을 다 해 욕지거리를 할 뻔했군요.







아, 선생님. 정말이지 탁 트인 하늘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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