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오면서 남긴 제 메시지를 기억하시는지요. 애써 세상을 살아보면 더 아름답고 예쁜 것들이 존재함을,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바라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제가 대답했지요.
선생님 말씀은 너무 잘 알겠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아주 붉은 시럽을 가운데 담은 봉봉 사탕 같다고. 저의 자살을 막기 위해 너무도 애쓰시는 붉은 진심을 그대로 저에게 내리꽂는 대신 부드럽고 불투명한 겉면으로 감싸 저에게 건네신다고요. 제대로 설명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저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무슨 말인지 너무 정확하게 잘 알았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메시지를 드렸지요. 너무 저를 위해 애쓰지 마시길 바란다고, 사람이란 게 돌아오는 게 아주 작게라도 있어야 그다음을 나아갈 힘이 생길 텐데, 돌려 쥐어드릴 작은 보람도 없는 저 때문에 너무 지치실까 싶다고요. 그 말에 선생님께서는 제가 행복하길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저를 너무 애써 설득하려 한 게 아닌지, 미안하다고 답해주셨지요.
여전히 실은, 퍽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 몰랐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웹 페이지 너머로 그의 이름이 왔다 갔다 하길래 무심하게 그냥 쓱 넘겼습니다. 그러다 그가 긴 여행을 떠났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입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말은 퍽 아이러니하게도 왜? 왜? 어째서? 당신이 왜? 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늘 자살을 꿈꾸고 있는 제가 막상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죽음에는 마치 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내뱉을 법한 말을 잘도 똑같이 내뱉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의 그는 능글- 능글, 어휴, 능글- 하게도 눈웃음 살살 치면서 정면으로 꽂혀 들어오는 주먹조차 슬렁~ 하고 피하며 씩 웃을 것만 같은 사람, 재테크도 취미도 물론 본업인 연기도 기가 막히게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나 오래된 것도 아닌, 바로 얼마 전 대박 친 OTT에도 출연했으니 그가 사람들에게 잊힐까 봐 두려워한 선택 같지도, 혹은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선택 같지도 않아 보였기에 어쩌면 저는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왜? 당신이 아니 왜?
말들도 많고 탈들도 많습니다. 사생팬이라니, 파혼이니 어쨌는지 참 말들도 많습니다. 하긴, 문빈 님 때도, 종현 님 때도 그랬습니다. 아, '나의 아저씨'에게도 사람들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요.
긴 여행을 떠난 그와
그 주변을 둘러싼 그의 동료들, 혹은 형 동생이라 불리웠던 그냥 동료들보단 조금 더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
또 그들을 둘러싼 많은 팬들, 아니면 하이에나들
그 뒤로 저와 같은 잘 모르는 사람들
저는 그의 진짜 속내를 절대로, 절대로 알 수 없는 '네 번째 그룹'에 속해 있으므로 그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길을 택했을 때까지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아주, 아주 아주 희미하게나마...
아마도 저 역시 그렇게 제가 가려던 길의 끝에 다다라 있을 땐, 이제껏 저의 겉모습만 봐왔던 사람들은, 어디 가서든 대차고 당차게 밀어붙이듯 살아가는 사람으로 취급했던 사람들은, 마치 생채기 하나 안 날 것처럼 생겨먹은 애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말하겠죠.
아니 왜? 왜? 걔가 왜?
그때엔 지금의 그처럼 저도 역시 긴 침묵 속에 잠겨 있겠지요. 왜 그가 굳이 SNS의 댓글창을 닫아두고 떠나간 건지도 어쩌면,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긴 합니다.
그는 그 길을 한 발 앞서 내디뎠고 저는 내딛을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쉽게도 왜? 왜?라고 입을 펄럭대지만 그 순간에 우왁! 하고 그 길을 내딛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단 인간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남는 것이 본능인데, 정확히 그 반대로 걷는 그 길이 어떻게 왁! 하고 한 순간에, 그냥 내켜서, 그 잠깐을 못 참아 그러하겠습니까.
제가 선생님과 상담의 끝에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을 기억하는지요.
영화 은교의 대사 중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혹시 아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저는 그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힘차게 헤치고 나아가 살아나간 사람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을 다 해 축복의 박수를 두 손바닥이 터지도록 칠 수 있습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마냥 질투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대단하고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랑스럽다고까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꺾인 제가 비난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거나 제가 꿈꾸는 꿈이 결국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질타받고 싶진 않습니다. 그들의 극복에 축하를 보내듯, 누군가는 그대로 꺾일 수도 있음을 그냥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아, 네가 결국 그 끝을 이겨내지 못했구나. 그래도 애썼다. 해볼만큼 해본 거겠지.라는 말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마치 역병 환자처럼 대해지거나, 삶에 대한 무자비하고 집요하기까지 한 설득과 협박으로 질식되지만은 않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