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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Nov 23. 2024

들떠야 할 순간, 서글픈 건 어디가 고장 난 걸까요

선생님, 조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서 상담이 늦어졌습니다. 뭐 이런저런 일들입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제 손에 꼭 쥐어주듯 지난번 상담 때 몇 번이고 당부하셨던, 마음투자사업엔 등록해 두고 예약도 잡았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걸 권유해 주신 게 첫 번째 상담 때였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습니다. 

가서 또 무슨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죽고 싶노라고. 요 얼마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꽤나 오래전부터의 일이라고, 이미 여러 차례 시도도 해보았었노라고, 그리고 여전히 매일같이... 마치 매달린 엄마의 옷자락 마냥 손아귀에 꼭 쥐고 그거 하나 보고 버티어 살아간다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여튼저튼 의무방어전처럼 이력서를 내고는 있습니다. 이력서를 내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으로 제출하고는 있습니다. 이렇게 하겠다는 의지 하나 없이 그냥 쓱 들이미는 이력서가 어쩐지 제 입장에서는 좀 민망하다 못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받는 기업 쪽에서야 알 턱이 없겠지만서도,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주제에 제출하는 것조차 염치가 없다고 생각이 된달까요. 그래서 그런지, 거절 의사를 전하는 기업에게 서운한 마음조차도 안 들곤 합니다.


그러다 이번주에 헤드헌터를 통해 제출했는데, 헤드헌터 쪽에서는 제 경력이나 이력을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추천해보고 싶다고도 했고요. 이력서를 검토해서 다시 한번 제출해 줄 수 있냐 해서 주말에 정리해서 전달하겠다 했습니다. 헤드헌터 쪽은 꽤나 잘 매칭될 것처럼 은근 기대감을 갖는 듯도 하고, 뭐 여튼 통화한 분위기는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요 근래 들었던 소식 중에 그나마 반가운 축에 속하는 소식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왜 저는 그 전화를 끊은 후에 서글픈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input-output이 좀 말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강아지-멍멍, 오리-꽥꽥처럼 끝말잇기에도 좋은 소식-기쁜 마음. 

그런데 저는 엉뚱하게도 슬픈 기분이 한참을 마음 바닥에서 찰박거려 그 흔들림이 멈춰질 때까지 두 눈을 감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저 멀고도 깊숙히 숨어버린 후였습니다.




편의점에서 기껏 산 물건을 두고 와선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질 않나, 잠은 계속 계속 미친 듯이 쏟아집니다. 고양이들 평균 수면이 20시간이라던데, 저도 거기에 견주어 보면 결코 지지 않겠다 싶을 만큼 계속 졸고 잠을 자게 됩니다. 고작 반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 남짓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뭔가 단단히 망가졌다는 생각은 드는데, 도대체 그걸 어디서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제 의지 문제일까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의지가 생기지 않아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 뒤죽박죽 되는 기억들,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괴롭히는 기억들, 머리를 털고 고함을 지르고 나 자신을 윽박질러 빠르게 떨치려고 해도 금세 다시 곁으로 들러붙어 괴롭히는 과거의 시간들, 기억들. 그 누구 하나 온전하게 순수한 따스함으로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 


이젠 감정마저도 맞지 않는, 맞지 않는 자리에 끼워지고 있는 볼트처럼 뭔가 빠르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뭘 해야 괜찮아질까요. 아니, 적어도 짧게 남은 시간들까지는 버틸 수 있을까요. 


오늘도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온 몸에 뽀뽀 50번씩을 구석 구석 날려대고 작은 솜방망이 같은 손을 살짝 움켜쥐어도 거칠게 빼지 않고 그저 잡혀준 채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 이 아이들 때문에라도 미친 엄마가 아니라 아직은 제정신으로 남아 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뭘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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