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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Nov 25. 2024

아이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숨 쉬어봅니다

설거지를 하는 도중 깨달았습니다. 환기를 시키느라 열어둔 부엌 쪽 창문을 타고 넘어온 바람 덕에 하아- 하고 숨을 내쉬면 입김이 하얗게 서린다는 것을, 그리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선생님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겨울을 몹시도 좋아합니다. 뭐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일단 그 무겁고 회색빛이 도는 공기며 바람도 좋고, 눈을 가늘게 떠야 할 정도로 파랗고 시린 하늘도 좋고 옷장에 넣어두었던 옷들에서 나는 묘한 향기도 좋아합니다. 가만히 앉아 숨을 들이마셨다 내쉴 때마다 코 끝을 찌르는 아릿한 느낌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목소리를 색으로 느낀다거나 바람에 색이 섞여 보이거나 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겨울 바다의 향기를 맡아보셨는지요. 그건 여름에 퍼지는 바다 향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20대에 굳이 면허를 따려 들지 않는 저에게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하나 있었는데, '걸어서 볼 수 있는 세상의 크기와 대중교통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의 크기가 다르듯, 직접 운전을 해서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의 크기는 너무도 다르다'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면허를 땄죠. 제 첫 차는 경차였는데, 그 당시 제가 살았던 동네는 언덕이 제법 있는 곳이라 처음으로 스노우 체인을 글쎄, 10만 원이 훌쩍 넘는 걸 샀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는 너무 제빙이 잘 되어 있는 덕에 맨바닥에 그 스노우 체인을 끌고 다니게 되겠다 싶더군요. 맨바닥에 스노우 체인을 갈아대며 망가뜨리기엔 고가였으므로, 성능도 시험할 겸 겸사겸사 지방으로 차를 끌고 내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야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잘 되어 있지 않았던 때라 어느 이차선 도로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왼쪽으로는 바로 옆으로 해변과 바다가 펼쳐졌고 하늘에서는 거센 바람과 함께 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히터를 틀어둔 덕에 포근한 실내와 달리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눈송이들, 그리고 왼쪽에서 기함을 토하듯 거칠게 넘실대던 바다. 조금 창문을 여니 그 찬 바람들이 밀려 들어와 내부의 따뜻한 공기와 섞이고 담배 냄새와 커피 향, 따스한 온기와 차운 공기가 멜팅되어 차 내부를 휘감아 돌 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비로소,

저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은 보통 수면시간이 18시간에서 20시간 정도 된다 하는데 저희 집 아이들은 늙은 나이에도 꽤나 활동적이신지라 그래도 평균 하루의 절반 이상은 깨어 있는 듯합니다. 날이 추워지면 확실히 전보다는 활동성이 좋아집니다.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뭐랄까... 좀 더 부숭부숭해집니다. 맞습니다. 털쪘다고들 표현하는 것처럼 동그래진다고 해야 할까요, 동그랗기보단 뭔가... 이렇게 부숭부숭해집니다. 먹는 게 다 털로 가나? 싶을 정도로 털 빠짐이 심한 시기를 지나는 시기가 지금이지 싶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면 지금처럼 부숭부숭해져서 좀 더 푹신해지고 포근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는 답답한 걸 극도로 싫어하다 보니 아직까지도 양쪽 베란다 문을 조금씩이라도 열어두고 바람이 흐르게 두는 편인데 그게 아이들에겐 조금 시린 건지, 아이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모두 동글동글 몸을 말고 잠을 잡니다. 그런 아이 뒤로 살며시 다가가 둥그렇게 말린 등을 쓰다듬다가 코와 입을 아이 어깨와 가슴 쪽으로 푹 숙여 파묻어 봅니다.




그럼 저의 숨소리와 아이의 숨소리, 그리고 코와 입술, 양 볼로 녹아들 듯 스며드는 온기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체취도 함께 말입니다. 정말 고맙게도 자다 날벼락 맞아 꽤나 귀찮을 텐데, 세 아이 모두 뒤로 허그하듯 안겨오는 커다란 엄마의 머리를 밀쳐내거나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가만가만히 숨결을 나눠줍니다.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아이의 온기와 숨결을 내 안으로 스미도록, 흠뻑 적셔지도록 한참을 코 박고 있다가 솜뭉탱이 같은 손도 잡아봅니다. 원래 고양이들은 손바닥에 젤리 같은 부분을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온갖 신경이 모두 몰려 있는 곳이기에 그 부분을 다치면 도망갈 수 없어 본능적으로 그 부분을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그 손도 그냥 내어주곤 합니다.


저보다 몇십 배나 작은 몸을 가지고 있는 저의 아이들은 저보다 몇십 배나 커다란 인내심과 사랑으로 미련하고 바보 같고 서글프고 방황하는 엄마를 그저 다독이듯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렇게 한참을, 한참을 아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일어서면 제 숨결에 축축해진 털이 이리저리 쓸려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그걸 보고 저는 풀썩 웃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을 웃습니다.




늦은 새벽입니다, 선생님. 이 시간엔 아이들이 자야 할 시간인데 제가 침대에 있지 않은 탓인지 내내 셋째가 이제 그만 자라며 큰 눈으로 저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저의 삶은, 이 아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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