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자택 쪽은 별 일이 없으신지요. 제가 사는 쪽은 눈이 밤낮으로 내린 덕에 하얀 세상이 되었습니다. 뒤쪽 베란다를 힐끔 내다보았을 때 눈이 꽤 쌓였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집에만 있다 보니 어느 만큼인지까진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외출할 일이 있어 잠시 나왔다가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꽤 애를 먹었습니다.
까치발을 들어 끙차 끙차 쌓인 눈들을 밀어내면서 저는 또 한 번 잠시 마지막 해, 눈이 잔뜩 쌓일 바닷가 집을 생각했습니다. 어서 고요하고 먹먹한 그 흰 세상에 푹 파묻히길 또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니 제 나이 먹는 것보다 아이들 나이 먹는 것을 먼저 인지하게 됩니다. 이제 제 둘째 아이는 곧 열아홉이 됩니다. 라면 하나 끓일 줄도 모르고 설거지, 빨래 같은 것도 할 줄 모르는 아가씨. 하지만 저희 둘째는 세 동생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했다 생각이 드니 지금 이대로도 장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둘째를 처음 마주한 건 당시 남자 친구 가게 옆 공사장 안이었습니다. 어디서 삐약 삐약 소리가 계속 나서 나가보니, 자그마한 박스 안에 한 줌 사료와 종지그릇에 담긴 물 하나, 그리고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미 첫째가 있었던 우리는 누군가 그래도 데려가지 않을까.. 한껏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그 자리에 두었습니다. 10월의 서늘하고도 춥던 그날 밤, 한참 삐약거리던 소리는 차츰 사그라들었고 그렇게 누군가 데려갔겠거니 안도하던 몇 시간 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간 그 자리에는 검은 털뭉치 하나가 물 때문에 퉁퉁 불어 터진 사료 범벅이 된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저 지나가던 폐지 줍는 누군가가 안에 담긴 것들을 바닥에 탈탈 털어놓고 미련도 없이 간 듯 보였습니다.
그 뒤로도 키울 자신이 없던 우리는 급한 대로 무릎담요에 둘둘 싸맨 아이를 안고 보호소에 전화를 했으나 입양되지 않으면 살처분된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선생님, 이 세상에 그 어떤 생명이 자신의 의지 없이 한 달 뒤 죽기 위해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을 알고도 그 길 위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아이는 같은 해 태어난 지 오빠와 함께 둘째가 되었고 이름에 열매 실(實) 자에 돌림자를 넣어 넣어 곱디고운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저를 퍽 닮았습니다. 다른 아이들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것과 달리, 우리 딸아이는 작은 눈을 가졌지요. 그래도 누구보다 초록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가졌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두 번이나 아이를 잃어버린 일도 있었지요. 한 번은 아주 아기일 때 딱 한나절이었고 두 번째는 아직 셋째까지만 있었을 때에 이사 간 날, 바로 그날 집을 뛰쳐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꼬박 한 달을 찾아 헤맨 끝에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어휴...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평소에는 정말 얌전하고 소리 소문도 없지만 한 번 사고를 치면 아주 초대형 사고를 치는 우리 딸.
다섯 아이 중에 제일 작습니다. 그리고 살성이라고 하지요.. 그 근육질감 말입니다. 사내아이들은 확실히 여자 아이들보다 단단하고 두툼한 근육을 가졌는데, 딸 셋 중에서도 둘째는 유독 더 여리여리하고 보드라운 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햇볕에 잘 데워진 구름을 손에 쥐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그런 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리고 작은 아이가 자신보다 훨씬 커지던 동생들을 참 다정다감히도 잘 돌봐서 키워줬습니다. 대책도 없이 덥석 덥석 동생들을 집어 오는데도 저한테 내색 한 마디 없이 동생들을 핥고 품에 안아 건강하고 단단하게 키워냈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보면 퍽 마음 아픈 장면인데 아직 동생들이 어려 엄마에게로 와서 하나씩 옆구리에 낑겨 있을 때 뒤늦게 침대 위로 올라와서는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는 한참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다가 내려가던 기억이 꽤 여러 번 있습니다. 그땐 그래, 하고 무던히 넘겼는데 동생들이 성묘가 되고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어느 순간에서부터 인가 동생들이 제 옆구리에 낑겨 있어도 기어코 동생들에게 한 소리를 해서 제 옆으로 들어오는 걸 보자니... 아, 예전에는 오히려 양보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커졌지요.
흑단같이 검고 까맣게 빛나던 털. 천상 여자아이인 듯 매니큐어를 바른 듯 손 끝만 흰색으로 덮여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반짝이던 딸아이는 어느새 나이가 들었습니다. 이젠 눈가와 발 주변에도 희끗희끗 흰 털이 돋아났고 검은 진주알 같던 눈동자가 어느새 나이가 들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아직 건강합니다. 여전히 집안의 어머니로서 자리하고 있죠. 이젠 막내조차도 덤벼들면 휙휙 휘청일 정도로 나이가 들었어도, 그래도 제겐 참 큰 의지가 되는 딸아이입니다. 장녀는 집안 기둥이라는 말, 무슨 말인지 딸아이를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토록 마음이 휘청이고 있어도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어쩌면 딸아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년이면 이제 딸아이는 열아홉이 됩니다. 다른 집 노묘들을 보면 나이 든 태가 제법 나는데, 아직 소녀 소녀한 우리 아이는 언제 정도에 그런 느낌이 날까요. 하긴, 기세 등등 하던 첫째 큰 놈도 아프기 시작하더니 확 그 나이가 느껴질 정도로 늙던데, 딸아이도 그래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고 이별이라지만, 일단 올해는 모두들 넘기지 싶습니다. 딸아이가 떠나면 이제 셋째와 다섯째만 남게 될 텐데, 아무래도 셋째가 가장 타격이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희 집 덩치 1호인 셋째는 엄마처럼 핥아 키워준 둘째에게 제 덩치도 모르고 아직까지도 안기려 들다가 혼이 나곤 하니까요.
가족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준다는 것,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 제가 그걸 몰라 가족들을 뒤에 두고 떠날 생각을 한다는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저 역시 남겨지는 쪽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까요.
되는 시간까지, 억지 부리지 않고 되는 시간까지는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려고 합니다. 요즘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딸아이는 종종 머리맡으로 와서는 이불을 들어달라며 빼앵- 울어댑니다. 이불 모서리를 들면 쏙 그 안으로 들어와서 둥그렇게 몸을 말고는 펼쳐놓은 손바닥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몇 번이고 쓰다듬어달라 떼를 쓰지요. 다 늙어서 떼쟁이가 돼버린 의젓하고 착한 내 딸. 떠나는 날까지 제 안에 있는 무엇이라도 끌어다 불살라서라도, 아이에게 다 쏟아주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