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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Jun 03. 2024

뭘 해도 되는 날이 있다

복권 당첨이 별거인가

주말 아침, 남편이 운동을 가자면 깨운다. 잠을 더 자고 싶다는 마음에 이불을 끌어당겼다.

"정미숙 씨, 한 달의 시작 1일이 중요하다면서요.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골프 치러 가요."

평소 내가 하던 말을 똑같이 하는 남편 성화 못 이겨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 가자 가자. 최근에 산 골프복과 가방도 개시할 겸.'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거울에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마음에 든다.  

"준비 완료! 가요."


출발할 때는 구름이 껴서 살짝 걱정했는데 골프장에 도착하자,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기듯 얼굴을 내밀었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빈 스윙을 몇 번 했다. 어드레스(샷할 자세를 취함)를 잡고 스윙을 했다. 정타 맞는 소리와 함께 똑바로 날아갔다. 위치는 나쁘지 않다. 어프러치(그린 주변 플레이)로 어렵지 않게 그린에 떨어뜨렸다. 생각보다 1번 홀은 가볍게 파를 했다. 기분 좋게 다음홀로 넘어갔다. 오랜만에 골프채를 잡았는데도 나쁘지 않은 플레이에 라운딩 시간이 즐거웠다. 그렇게 9번 홀에 도착했다. 남편이  가뿐하게 그린 위 올렸다. 나도 질세라 방향을 보고 신중하게 스윙을 했다. 발사각도 좋고 방향도 좋다.


"뭐야, 저러다 홀인원 하는 거 아냐."

"홀인원은 아무나 하나."

"쨍그랑"

"뭐야, 홀인원!"

우리는 너무 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린으로 달려갔다. 남편이 홀인원이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봤다. 공이 높이 날아가더니 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홀인원을 쳤다고 말을 해도 그게 가능해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내가 홀인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근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골프인생 첫 홀인원이다. 정규홀이 아닌 파3에서 홀인원 했다고 누구는 우습게 볼지도 모른다. 실력이 좋다고, 하고 싶다고 홀인원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100% 운이다.


홀인원의 짜릿한 기분이 사라질까 봐 사진에 담고 또 담았다. 남편도 해보지 못한 홀인원을 내가 하다니 어리벙벙하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남편에게 의시대 본다.

"내일 라운딩에 홀인원 공으로 치고, 홀인원 하고 오세요."

남편이 웃는다. 6월 첫날 운동하기 싫었던 나는 생각보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




오후에 아이와 함께 알라딘 중고서점에 방문에 읽지 않는 책을 팔고, 새책을 데려왔다. 갑자기 안내 방송이 나온다. 타임스퀘어 1층 광장에서 야시장이 열렸다고 했다. 어떤 물건들이 나왔는지 구경하는데 남편이 당황해하며 달려왔다.

"어쩌죠?"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별마루 천문대 예약하려는데 6월에 예약 가능한 날짜가 없어요."

'이럴 수가 6월 여행은 영월로 가기로 했는데 천문대를 갈 수 없다니.' 아이가 실망하는 모습이 그려져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후 남편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그럼 7월로 예약해요. 예약 오픈일은 언제예요?"

"바로 오늘 3시 30분에 예약 사이트가 열려요."

시간을 확인하자, 30분 뒤면 예약 사이트가 열린다. 우리는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3시 30분이다. 둘이 동시에 사이트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접속했는지 사이트가 느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다. 포기하려는데 갑자기 예약화면으로 바뀌었다. 이게 뭐라고 손이 떨린다. 일자를 확인하고 결제를 했다.

"예약이 되었습니다."

문자를 확인하고서 우리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이파이브를 하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오늘 당신 뭘 해도 되는 날인데요."





아일랜드 식탁에서 사용하는 의자가 며칠 전 앉아있는데 망가졌다. 갑자기 한쪽 다리가 찌그러지면서 의자에서 떨어졌다. 몸무게가 이렇게 많이 나갔던가 생각하며 비슷한 의자를 사기 위해 모던하우스에 방문했다. 때마침 2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의자를 선택하고 결제를 하는데 생일 쿠폰이 있다며 5천 원 할인을 더 받았다. 기분 좋은 하루의 연속이다.


트렁크에 의자를 싣고 차에 타는데 갑자기 스치는 생각 하나,

'이상하다 분명 의자 가격이 20% 할인 중이었고, 생일 쿠폰까지 썼으면 가격이 더 저렴했을 것 같은데.'

다시 영수증을 확인해 보았다. 정가에서 5천 원만 차감되었다.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 가격을 확인했다. 역시 할인되어 있는 가격이 붙어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직원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나, 제가 정신줄을 놓았네요. 어제 쉬었더니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남편이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금액이 이상해서 갔더니 직원분이 잘못 계산했더라고요."

"오~ 당신 잘 확인하지 않잖아요."

"그니까. 오늘은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확인했지 뭐예요."

"오늘 당신 뭘 해도 되는 날인가 보다. 홀인원도, 천문대 티켓도, 의자까지. 이런 날 복권 사야 하는 것 아니에요."


정말 복권이라도 사야 하는 걸까. 오늘 하루가 나에게는 복권당첨이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하루를 선물 받기도 한다. 인생 왜 이리 재미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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