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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윤 Jan 27. 2023

우리는 저마다의 악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목소리를 내는 우리의 작은 악기, 성대에 대하여.


가장 처음 배운 악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처음 배웠던 악기는 피아노였습니다.

기억상으로는 체르니 30번까지 쳤던 것 같아요.

콩쿠르에도 나갔던 기억이 흐릿하게 있습니다.


문득, '체르니 30번까지 친 거면 어느 정도 친 거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체르니 30번을 마쳤다면 당신은 이미 피아니스트>라는 책이 나옵니다.

피아니스트이신 분들께 죄송하리만큼 저는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연습을 한 만큼 동그란 음표에 색칠을 해가는 게 숙제였는데,

피아노는 치지도 않고 음표에 신나게 색칠만 해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 피아노를 치면

연습도 하지 않고 색칠만 한 그 음표가 가짜였다는 게 금방 들통이 났지만요.


사실, 제가 배우고 싶었던 악기는 피아노가 아니라 기타였어요.


삼촌 집에 제 몸보다도 훨씬 큰 기타가 하나가 있었는데,

삼촌 집에 가면 기타 줄을 튕기며 놀곤 했습니다.

기타 줄을 튕기면 나는 소리가 좋았거든요.



모두 같은 줄인 것 같지만

저마다 두께가 다른 여섯 개의 줄들을 튕기면

그 두께에 맞는 정직한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두꺼운 줄에서는 두꺼운 소리가 나고

얇은 줄에서는 얇은 소리가 나고.


기타 지판의 두꺼운 칸에서는 낮은 소리가 나고

마디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얇은 칸에서는 높은 소리가 나고요.


어떤 줄을 튕기느냐, 어떤 마디에서 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결국

부모님께 친구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기타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숙제를 위한 색칠놀이만 하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연습을 하고 싶어지는 기타 학원을 다니게 되었죠.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우연히 기타를 잡으면 손가락이 기억을 더듬고 제 위치를 찾아갑니다.

물론 아주 버벅거리지만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정직하고도

매력적인 기타만의 소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요즘 저는 목소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어려운 내용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선생님인 것처럼


좋은 글은

어려운 내용도 쉽게 이해되고 읽히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목소리에 대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내내 고민하고 있어요.


'이렇게 설명하면 쉬울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더 재미있을까?'


이론적인 이야기나 지식적인 내용을 줄줄이 읊기보다는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되기도 하고,

글감이 되기도 하는 작가의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 낯설고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말하기를 말하는 사람인 제가,

말하기에 대한 눈으로 세상을 읽고

말하기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는 건 어색한 일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듯

읽기와 쓰기 그리고 말하기는 늘 함께하니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제가 좋아하는 재즈를 들으며 말하기에 대한

말하기가 존재할 수 있는 목소리에 대한 글을 쓰다가


재즈 선율에 도드라지는

기타 소리와 우리의 목소리가 제법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성대라는 악기와

'기타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타라는 악기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우리 몸의 악기, 성대

'가장 처음 배운 악기가 무엇인가요?'

이 글의 첫 문장인데요.


사실 제가 가장 처음 연주한 악기는 피아노가 아닙니다.

가장 처음 연주한 악기는 '성대'라는 악기죠.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장 처음 연주하게 되는 악기는 성대입니다.

이 악기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목소리라는 소리를 내니까요.


우리는 이미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만 배우지 않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 악기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갈 뿐이죠.


기타와 달리 우리의 성대는 낯선 악기처럼 느껴집니다.

여러 공연을 보며 기타는 직접 보는 경우는 많지만

목 안에 있는 성대를 직접 보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수많은 목소리를 듣지만 정작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 채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이요.



며칠 전, 친구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당연하게 주어져서 그 가치를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요.

청년에게 젊음이 그러하듯,

인간에게 목소리가 그러한 게 아닐까 싶어요.


목소리라는 이 소리를 내기 위해 우리 몸에서 얼마나 많은 근육들이

섬세하게 움직이는지를 알게 되면 조금은 덜 당연해지지 않을까요.



출처 : NewYork-Presbyterian


목소리를 내는 우리의 악기, 성대(Vocal cords)

후두(Larynx)라는 케이스에 들어있는 악기입니다.


성대는 후두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요.


후두는 쉽게 말해 공기 통로 역할을 하는 단단하고 짧은 관인데요.

단순한 파이프 같지는 않아요.

파이프의 굵기를 조절할 수 있는 관입니다.

호흡을 할 때 공기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파이프죠.


몸 어딘가에 앰프를 장착한 것처럼 울림이 있는 목소리,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를 가지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목소리를 위해서는 후두를 내리고 공명감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후두가 올라가면 공명감이 사라지거든요.


이 후두 안에 있는 우리의 성대는

열렸다 닫혔다는 반복 하며 목소리라는 소리를 연주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면,

호흡을 할 때 V 모양으로 벌어지면서 열리고

벌어져있던 성대가 | | 모양으로 닫힐 때

이 사이로 공기가 통과하면서 진동이 일어나

성대라는 악기에서 목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을 발성이라고 부릅니다.



출처 : Osborne Head & Neck Institute


이 사진이 실제 성대를 촬영한 사진이에요.


조금 낯설고 다소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의 몸 안에 있는 이 작은 악기는 열렸다가 닫혔다가,

벌어졌다가 접촉했다가를 반복하며 목소리라는 소리를 내고 있어요.


바로 이 과정에서 '얼마나 좋은 밸런스로 접촉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목소리는 여기서 결정되거든요.



과하게 붙으면 좋지 않은 목소리가 납니다.

오래 들으면 피로감이 드는 목소리가 나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성대가 과하게 접촉될 경우 그런 목소리가 납니다.


실제로, 성우들이 아역 연기나

아주 작고 귀여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

성대를 과하게 접촉을 시킨 상태로 성대를 조여 목소리 연기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대가 과하게 떨어져 있어도 좋지 않은 목소리가 나와요.

바람이 새는 듯한 목소리,

쉰 것 같이 허스키한 목소리

그래서 전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목소리들이 그 예입니다.


과거의 저도 이런 경우였는데요.

실제로 저를 트레이닝해 주셨던 선생님께서는

제 목소리를 처음 들으셨을 때,

"고장 난 수도꼭지 같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성대가 너무 벌어져서 호흡이 마구 새던 제 목소리는

어린 시절부터 담배 피우냐는 오해가 따라다닐 만큼

아주 허스키한 목소리였거든요.


지금은 성대를 좋은 밸런스로 접촉하는 방법을 알고

또 꾸준히 훈련하고 있는 덕분에 이제는 어딜 가서 누구를 만나도

"목소리가 너무 좋으시네요"라는 칭찬이 따라다니지만요.




성대와 기타, 무엇이 닮았나요?


우리가 소리를 인식하는 과정의 첫 번째는 물체의 진동입니다.

물체의 진동이 주위 공기를 진동시키며 퍼져나가고

이 진동이 우리의 고막을 진동시키면 그 신호를 뇌로 전달해

우리가 비로소 소리를 인식하게 되는 거죠.


우리에게 친숙한 기타로 이야기해 보면,

기타 줄을 잡고 튕기면 줄에서 진동이 일어납니다.

그 진동이 기타 바디를 진동시키고,

더 나아가 주변 공기를 진동시키죠.


이러한 진동의 과정을 우리가 기타 소리로 인식하는 거고요.


재미있는 건 기타의 어떤 줄을 잡느냐에 따라 진동수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기타 줄은 가장 얇은 1번 줄부터 가장 두꺼운 6번 줄까지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두꺼워지는 기타 줄


두께가 얇을수록 빠르게 진동하고

두께가 두꺼울수록 느리게 진동하죠.


두께가 얇은 1번 줄은 빠르게 진동하지만

줄의 질량이 줄었기 때문에

소리의 크기나 질감도 그만큼 얇습니다.

그런 이유로 1번 줄에 가까운 줄일수록 높은음이 납니다.


두께가 두꺼운 6번 줄은 느리게 진동하지만

줄의 질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소리의 크기나 질감도 그만큼 두꺼워져요.

그래서 6번 줄에 가까워질수록 낮은음을 냅니다.


우리의 성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균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비교해 보면

남성의 목소리가 훨씬 낮습니다.


그렇다면

남성의 목소리는 기타의 6번 줄과 닮았고

여성의 목소리는 기타의 1번 줄과 닮았겠네요.


실제로 남성이 여성보다 성대가 훨씬 길고 두껍습니다.

어린이의 성대가 성인의 성대보다 훨씬 짧고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볍고 맑은 거겠죠.


저는 여성이지만 굉장히 낮은 음역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중저음을 넘어선 저음의 음역대를 가지고 있는데,

타고난 제 성대는 평균 여성분들의 성대보다 길고 두꺼운 편이기 때문일 겁니다.


덕분에 "예쁜 목소리"보다는

"멋진 목소리"라는 이야기를 훨씬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하면서

어린 남자아이의 귀여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여성의 예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마치 숙련된 기타리스트가

1번부터 6번까지의 기타 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연주를 하듯,

성대의 길이나 두께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성대는 그 길이나 두께를 조절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성대 주변 근육들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 근육들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익히면

우리는 성대를 두껍게 쓸 수도 있고

성대를 얇게 쓸 수도 있습니다.


타고난 성대의 굵기나 길이 자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주변 근육들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또 좋은 성대 접촉 밸런스를 찾아감으로써

얼마든지 좋은 목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제가 목소리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악기를 이해하고, 악기를 다룰 줄 알면

누구나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매력적인 목소리

내가 가질 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악기를 잘 다루기만 하면

나도 가질 수 있는 소리예요.


어린 시절부터 흡연자로 오해를 받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이제는 고급스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변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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