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정말 어디서나 볼 수 있을법하지만 이상적인틀에 가까운 남자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특목고 졸업, 전교회장 출신
평균 이상 성적
즐겨쓰는 유행어, 밈
교정기
평범한 키, 평범하고 깔끔한 외모
메디컬 맞벌이 부모님
쓰레빠
츄리닝에 후드티
전교회장인 것과 간혹 1,2등하는 성적만 제외하곤
내가 평소에 머릿속으로 ‘평범한 남학생이라면 이정도겠지’ 라고 생각했던 그 환상이 내 눈 앞에 서있을 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평범한게 제일 어렵다던데.
시험을 다 보고 날 때
혹은 아침마다 등원하기 전에
자습이 끝나도 누나 누나 하면서 찾으면 나는 어색함을 최대한 표정에서 감추기를 노력했다.
재수학원에서 소위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친목은
그럼에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듯이
선생님들은 동성간 대화를 어느정돈 허락했으나
이성끼리는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공간이 너무도 평안했고,
그런곳에서 말 없이 섞여들어갔다.
학원 근처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나선 정말 외로웠는데 그 애는 거짓말처럼 우리학원으로 편입을 들어왔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은 한국 입시에 관해 잘 몰랐고
그렇다고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다른 친구에게 “오늘 영어가 어려웠어”따위의 말을 하기엔 괴리감이 심했는데
그는 적정한 타이밍에 적절했고 무엇보다도 평범한 애였다.
아직도 고등학생태를 벗지 못해서 종종 어디 휘문고나 현대고 같은 곳에 앉혀두면 현역이라고 오해할법도 했다.
우리는 한동안 주변에서 알게모르게 스쳐지나가면서 마약거래를 하듯 인강 아이디와 비번이 적힌 쪽지를 주고받고
시험을 다 치르고 조퇴를 하곤 우리집에서 답을 맞추면서 저녁을 먹고 오답을 보곤 했는데 그게 정말 재밌었다.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이래서 학교에서 다들 친구를 사귀고 낄낄거리면서 밥을 같이 먹는구나‘ 라는 생각을 몰래 하며.
학원에서 나는 반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나를 19살이라고 소개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유시험으로 들어왔고 수시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현역.
나이를 빼면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수시를 써본 적도 없고 검정고시생에 유시험생이었으니.
어쩌다가 아이들이 수다를 떨 때
“해열이는,,,수시 6광탈의 아픔을 모를거다ㅠㅠ”라고 나보다 4살이 어린 아이가 탄식할 때
속으로 ’다른 의미로 모르긴 하지,,,‘라고 이마를 짚었다.
그러던 중 유독 이 남학생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친해지자
나는 더 늦어지기 전에 내 나이를 밝혔다.
도망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기가 여동생이 한 명 있어서 동생 싫었는데 “오히려 좋아”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그 순진함이 어떻게 보면 귀여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누리고 있던 모든 편안함을 반납해야했고 (…)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을 한 번도 친밀하게 대해본 적이 없어서.
더군다나 그가 대체 어떤 형태의 환상을 갖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아서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또 혹시 이게 숨기고 싶었던 공포회피 작용에 의한 심리인가 싶은 의구심.
다행히 그가 기숙학원으로 학원을 옮기는 바람에 자연스레 다시 멀어졌지만
나는 그 친밀감이나 갈구해왔던 평범함을 마주하자 정작 불편해했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래서 내가 학교에서 평범한 친구와는 어울릴 수 없었구나.
상대방이 날 밀어내도 혹은 나를 편하게 생각해줘도 결국 내가 문제였다.
내가 그들을 편하게 해주지 못해서.
나는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것들에 익숙한 인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