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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행복조각

by 윤기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전날 제주도에서 도착한 청귤 두 박스를 차에 실어 처가에 배달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바깥양반의 오더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중문 가까이에 놓아두었던 과일을 들었다. 하나에 10kg밖에 되지 않으니 두 개를 동시에 드는 건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삼대 500을 치진 못해도 이 정도 무게는 손쉽게 다루는 내 모습을 보자 왠지 뿌듯해지기도 했다. 주책맞아 보이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하하.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을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후 과일 상자를 내려놓았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예상과 달리 사람이 타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란 말을 급하게 뱉고선 과일 상자를 다시 번쩍 들었다.


'뜩.'

'하... 젠장!'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허리에서 났다. 아니, 난 것 같았다. 8년 전, 보름 정도 침대 생활만 하게 했던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되니까(어디서 주워 들었다) 청귤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재빠르게 몸을 밀어 넣었다. 물론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14층에 사는 이웃은(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1층에서 내렸고 나는 지하 1층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지하 1층까지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데 지하 2층으로(내 차가 주차된) 가려면 조금 전 박살 난 허리와 과일 상자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하...'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몸을 45도 비틀어 허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시야를 확보한 후 오른쪽부터 천천히 한 발 한 발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고선 과일 상자를 트렁크에 싣고 무사히 배달을 완료했다. 이게 지난주 일요일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배달 임무를 완수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자 불편함이 밀려왔다. 허리 통증을 잊게 할 만큼 불쾌한 거였다. 그건 어쩌면 브런치 마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단 마음이었다. 돈 받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닌 데다 스스로 정한 마감이니까 한 번쯤 눈 딱 감고 넘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하...)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설령 마감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쉽게 타협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몸을 겨우 일으켜 책상에 앉아 맥북의 덮개를 열고 글을 쓰려는데 앉아 있는 것조차 허리에 큰 부담이 됐다. 그래서 결국엔 타협했다. 사진만 올리는 것으로.


글은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사진까지 대충 올리고 싶진 않았다. 나름 엄선해서 사진을 고르고(B 컷과 C 컷 중에서) 흑백으로 변환하고 전체적으로 톤이 어울리도록 보정을 한 후 업로드 순서를 정했다. 겨우 버텨내던 허리가 점점 한계에 다다라 시계를 봤더니 어느새 1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조정을 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였다. 결국 타협에 타협을 덧붙여 짧은 인사말과 함께 발행 버튼을 눌러 버렸다.


자신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찝찝함과 사진에 충분히 신경 쓰지 못한 게 다시 불편함으로 밀려왔다. 적당한 타협은 언제나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게 그제야 기억났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 타협을 했다. 침대에 누워 숨죽여 기다렸다. 내 글과 사진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독자를. 그들이 담아 줄 이야기를. 그러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서 알람을 확인하니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주 소중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8개의 댓글이 달렸다.


몇 년 전이었다. 누군가가 보는 공간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건 꽤 단단한 용기와 거창한 이유가 필요했었다. 두려운 거였다. 하지만 일주일, 한 달, 반년, 1년, 2년이 지나자 그때의 두려움은 이제 안줏거리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매우 부족한 글쟁이고 사진쟁이지만 늘 응원해 주는 독자 덕분에 용기를 가지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허리를 이토록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 덕분에 내 허리는 지금 회복되었다고(95%) 확신한다.









이번 주에도 사진 작업을 하러 나갔다. 한의원에서 3일 연속 침을 맞았더니 놀라울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해가 넘어가고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불편함도 가셨겠다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이 도진 거였다. 이날도 역시 한강을 걸었다. 이번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아주 재미난 장소를 발견했다. 빛의 대비가 강하고 질감이 느껴지는, 내가 좋아하는 그런 곳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장소'다. 장소를 고를 땐 빛의 방향이나 강도, 질감을 신경 쓰는 편이고 배경이 심플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장소만큼 중요한 게 공간을 채우는 '사람'이다. 스트릿 사진을 좋아하는 내게 사람이 없는 사진은 영혼 없는 눈동자를 보는 것과 같다. 그만큼 장소를 찾는 건 사진가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번에 만난 장소는 적당한 유동 인구까지 갖춘 곳이라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초상권이었다. 스트릿 사진의 가장 큰 벽이라고나 할까. 특히 우리나라는 초상권의 법적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 사람의 뒷모습을 찍거나 흘러가는(셔터 스피드를 느리게 해서) 걸로 표현해서 담는 편인데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기에 딱 좋아 자주 찾으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장면을 담으려면 한 장소에서 인내를 가지고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매우 오래.


낚시를 하진 않지만(사실 전혀 모른다) 낚시꾼들이 저마다의 포인트를 갖고 있듯, 내게도 촬영 포인트가 하나 더 추가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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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책을 읽던 중이었다. 다음 꼭지가 시작되는 순간 마법처럼 제목에 빛이 드리워졌다.


'상처받은 사람이 받아들일 때까지...‘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을까? 잘못을 저지른 횟수만큼 상처받은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그때마다 적절한 사과를 했었을까? 사과를 잘하는 편이란 이야기를 곧잘 듣지만 '잘하는' 것의 적확한 의미까지 들어본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단 건 사과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사과할 일을 자주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했다. 그러면 사과를 '잘한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걸까?


사유의 파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정의할 수 있는 게 '잘한 사과'란 결론으로 도출됐다. 물론 그동안 가해자(나의) 입장에서만 사과를 한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나, 항상, 어김없이 나의 감정은 잘라내고 피해자의 입장만 배려해 사과한 것도 아니었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나란 인간은 부족함 투성이라 아직도 알게 모르게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채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글의 내용은 제목을 보고 확산됐던 생각들과 결이 조금 다른 것이었지만 읽는 즐거움이 이런 것에 있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문장 하나 때문에 '나'와 '삶'의 본질을 마주하는 것. 그런 후 질기도록 곱씹어 보는 것. 그 순간만큼은 마치 시공간이 멈춘 것 같은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껴보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게 즐거운가 보다. 우연히 문장 하나를 만나는 기쁨을 아니까.


어쨌든,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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