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이었던 것 같다. 동네 단골 카페에 가서 브런치 연재를 마감한 후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가던 말은 꼬리를 물어 결국 글쓰기와 관련한 얘기로 옮겨갔다. 나는 사장님에게 글을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이미 일기를 쓰고 있다며 답했다. 그 말에 내심 반가웠다. 그래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일기를 쓰고 있는 건 충분히 멋진 일이지만 일기장은 혼자만 보는 공간이니 이제부터는 독자가 있는 공간에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블로그가 될 수도 있고 브런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의 말을 들은 그는 약간 놀라는 얼굴을 하며 타인이 자신의 글을 보는 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때였다.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보았다. 주저하는 모습과 설렘 가득한 표정이 교차하는 절묘한 순간을.
그는 항상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청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친절했고 부담 없이 대화를(언제나 칭찬과 함께) 걸어왔다. 9개월 정도 이 카페에 다니며 느낀 건 그는 변함없이 한결같았단 거였다. 물론 간혹 피곤한 얼굴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아마도 쉬는 날 없이 카페를 열었던 게 이유일 거라 추측하고 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문을 닫는다) 어쨌든 20대 중반의 나이에 카페를 오픈 한 패기도 멋지지만 그 나이에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은 훨씬 더 훌륭했다.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경우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성정이 원래 그러한 것이거나 철저하게 숙련된 것이거나. 중년인 내 입장에서(세상을 아주 조금 겪어봤다고 할 수 있는) 보자면 만약 후자라 하더라도 그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숙련'이라는 단어와는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 태도가 발현된 건 성정이 가장 유력한 원인일 거란 것으로. 아무튼 내가 보기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대단한 청년이었다.
대단한 청년인 그에게 일기장을 벗어나 보란 말을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건 9개월 동안 점진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일게 된 건데 그는 자신의 내면을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아마도 여러 번...)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사람을 만나면 내적 친밀감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그건 마치 같은 종족을 만난 것과 비슷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은 용량의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처박아둔 생각을 쏟아 낼 수밖에 없는 유형이다. 그것들은 언젠가 세상 밖으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고 그때가 온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는 예술의 영역에서 표출되는 거였다. 그래서 그에게 글쓰기를 말했던 거였다. 일기장이 아닌 독자가 있는 세상에 그것들을 토해내길 바랐던 것이었다.
이번 주, 평일에 카페에 들를 일이 있었다. 가게의 시그니처 커피를 주문하고 언제나 그렇듯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내어주던 그가 내게 한 마디를 던졌다. 얼마 전 내 말을 듣고 바로 아이디를 만들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데 재밌단 거였다. 아직 부끄러움이 가득한 듯했지만 그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올린 글의 조회수가 '1' 올라갔다며 소박한 숫자에도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기뻤다.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 글을 쓰며 느낀 점을 물었더니 글감을 찾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다며 일상에 변화가 생겼던 말로 답했다. 그랬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기록은 단순히 우연으로만 이뤄지진 않는다. 그 순간을 포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을 쓰려면 일상을 반추하며 글감을 찾아야 하고 사진을 찍으려면 부지런히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그런 과정은 자신의 내면과도 깊게 연결된 것이었다. 그는 벌써 그걸 느끼고 있었다. 독자가 있는 곳에 글쓰기 재미를 느낀 그가 얼마나 이짓(?)을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꽤 오래가지 않을까 싶다.
글 쓰며 느낀 행복을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아서는 분명히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책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한 달 전부터 시작했지만 잠시 넣어뒀던 출간 기획서를 다시 꺼냈는데 허접함 그 자체였다. 그걸 보고 있자니 눈앞에 어떤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어떤 편집자가 이런 기획서에 눈길을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두 들어내기로 했다. 그런 후 이 책을 왜 쓰려고 했던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다시 꺼낸 출간 기획서가 왜 허접해 보였는지. 왜 구겨버리고 싶은 메모지처럼 느껴졌는지. 그 안엔 깊은 고민 없이(물론 아무 고민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끼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과 책을 만드는 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사진을 찍는 것과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다르듯 흩어진 것들을 모으고 한 가지 주제를 관통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게 잘 꿰어야 하는 게 책과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것에 정성을 다하지 않았으니 고민의 답을 손에 쥘 수 없던 거였다. 잡히지 않는다는 건 부족한 열정의 결과였고 어설픈 마음에 의탁한 나약함이었다.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은 주제에 손에는 대단한 걸 쥐고 싶은 탐욕만 가득했던 거였다. 순간 수치심과 경멸이 나를 향해 밀려왔다. 고작 요행 따위를 바란 인간이었다니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었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이 모든 게 명백한 사실이란 거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스터디 카페에 갔다. 적당한 자리를 잡은 후 출간 기획서 파일을 맥북에 띄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손가락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 머리를 거쳐 전달된 신호였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시작된 내면과의 대화가 마무리되자 활자로 표현되고 있던 거였다. 한 번 탄력이 붙자 하루에 세 시간, 꼬박 3일을 3~4시간 기획서를 쓰는데 보냈다. 퇴고한 기획서를 다시 퇴고하고 그걸 가지고 또 퇴고했다. 몇 번을 퇴고했는지도 모를 때쯤 되어서야 하나로 연결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직 마음에 딱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기획서는 아니었다. 이 정도 되자 마음이 놓였다. 쓰면서 조금씩 수정을 하겠지만 지금 만들어 놓은 나침반만 믿으면 난파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고민 없이 만들어지는 건 없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내 사진과 책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나는 그럴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