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말이야

by 윤기





이번 주 목요일은 버거웠던 일상에 한 모금의 숨이 필요했던 하루였다.


지난주에 정돈해야 했을 머리를 사정이 생겨 한 주 미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제멋대로 솟아있는 옆머리가 눈에 거슬렸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탄 후에야 보문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저분해졌던 머리를 정리하기까지 3주가 걸렸다.


다음 주는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후쿠오카로 데리고 갈 카메라가 조그마한 말썽을 일으켰다. 바버샵에서 나온 후 충무로에 가서 수리를 맡기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는 줄 알았으면서도 왠지 그런 걸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낭비라... 사진가에게 장비를 손보는 걸 두고 낭비라 할 건 아니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지.


충무로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자 느닷없이 붕 뜬 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수면 시간을 급하게 바꾼 게 문제인 건지 과중해진 업무가 이유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머리카락을 다듬지 못했던 시간만큼 일상은 무거워져 있었다. 버거운 날들과 예고 없이 찾아왔던 무료함. 그것의 불균형이 한 발도 내딛지 못하게 발목을 꽉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당장 지금, 무언가를 채워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진을 보러 갈까 싶어 급하게 찾아봤지만 마음에 내키는 전시가 없었다. 아무런 소득 없던 발걸음은 6호선 보문역, 3-2 플랫폼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방금 떠나버린 전철이 오기까지 9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영화. 그걸 보자'


최근 소문이 자자했던 멜로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서둘러 영화표를 찾아봤다. 가까운 영화관은 시간이 애매했다. 5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창을 닫은 후 반경을 넓혀 다시 검색했다. 집 근처 영화관에서 적당한 시간에 상영을 하고 있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자리는 여유로웠다. 원하는 자리를 한 장 예매하고 나자 신당역행 열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극장은 한산했다. 영화관이 힘들다던 이야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표를 검사하는 직원이 없는 건 코로나 때와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었다. 6번 상영관으로 들어가 J열 16번 자리에 앉았다. 우측 팔걸이에 뭐가 걸리적거렸다. 뚜껑이 닫힌 캔 커피였다. 손을 뻗어 흔들어 보니 누군가 반쯤 먹다 남긴 듯 했다. 일손이 부족한 건 청소하는 직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스크린을 응시하는데 관람객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플로 보이는 이들 몇 명과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도 있었다. 어떤 아저씨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였다. 그나마 극장을 겨우 비추던 희미한 조명마저 점점 사라지면서 흔해빠진 광고가 시작됐다. 큰 소리로 귀를 때리는 소음과 섬광 같은 화면에 불쾌함이 느껴졌다. 잠시 후 다시 극장은 어두워졌고 나는 2시간 내내 두 주인공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던 그들의 대화와 말없이 바라만 보던 눈빛에 담긴 감정까지 모든 것들이 날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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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그때 내가 그랬다면...'


극장을 나오자마자 사람이 많지 않은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야 할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남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생각과 감정을 반추했다. 극 중 이야기와 닮진 않았지만 '만약에...'를 중얼거리게 했던 한 장면이 자꾸만 맴돌았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에 관한 기억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나는 일곱 명과 절친이 되었다. 그중 다섯 명은 30대 중반까지 함께 지냈다. 그 친구는 다섯 명 중 하나였고 누구보다 착하고 마음이 여린 녀석이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쯤 친구의 집은 가세가 기울어 모든 걸 정리하고 부모님만 고향으로 떠나셨다. 서울에 남길 원했던 친구는 홀로 지하 단칸방에 거처를 마련했고 몇 년이 지나 20대 중반을 넘어도 뚜렷한 진로를 찾을 수 없자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때쯤 만난 그의 여자 친구는 없는 살림인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이후로 그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여자 친구가 떠나자 건강도 마음도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는 게 속상하고 힘들단 이유로 친구에게 자주 화를 냈었다. 왜 그렇게 멍청하고 나약하게 사느냐고. 그때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웃기만 했다. 씁쓸하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30대 초반이 되었고 다섯 명 중 네 명은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려가던 중이었다. 그 친구만 빼고 모두가 더 넓고 보다 나은 곳이라 믿는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머뭇머뭇하는 그에게 다그쳤다. 무슨 일이길래 말을 못 하느냐고. 어렵게 입을 땐 그는 2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려는데 밀린 공과금 낼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부모님 곁으로 가는 걸 바라왔었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잘 결정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화를 냈다. 여태까지 뭐 하며 살았길래 그깟 20만 원이 없냐면서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내게 화를 내기는커녕 미안하단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나는 그걸 감추려고 더 못된 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친구에게 찾아가 50만 원을 욱여넣은 봉투를 내밀었다. (친구는 계좌로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고맙다며 곧 갚겠다는 말에 나는 필요 없다면서 또다시 상처를 줬다. 부모님에게로 떠난 친구로부터 몇 번의 전화가 걸려 왔지만 받지 않았다. 계좌 번호를 알려달란 메시지에도 모르는 체했다. 나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로 그를 마음에서 지우고 있던 거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나약했던 건 친구가 아니라 나였단 걸. 더는 학창 시절처럼 환하게 웃으며 친구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매번 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나오는 나를 다잡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전화와 메시지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2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면... 녀석이 부모님 곁으로 떠나던 날, 이제는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환하게 웃어주었더라면... 그리고 용기 내어 메시지를 보냈을 친구에게 답장을 했더라면... 혹시 우리의 관계는 달라져 있을까...


만약이라는 게, 이제 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기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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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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