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됨

by 윤기




새해 들어 벌써 세 번째 맞은 목요일은 정말 지독히 재미없을 뻔한 하루였다.


개인 사진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지만 야외촬영을 4 시간 정도 할 생각이라 두툼한 후디에 활동이 편한 패딩을 챙겨 입고 장비를 꾸려 나섰다. 목적지는 서울역 주변의 한적한 동네였다. 도착하면 어떤 이야기를 만날지, 돌아오는 길엔 어떤 시선이 카메라에 담겨 있을지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망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한 시간을 넘게 걸었건만 시선에 잡히는 피사체가 보이지 않았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에서 원하는 빛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옷은 또 왜 그렇게 두껍게 입고 나온 건지 후디 안에 입은 반팔 티셔츠가 축축해지고 있었다. '한 겨울에 땀이라니...' 원하는 대로 작업이 되지 않아 가뜩이나 답답하던 차였는데 이래저래 짜증이 올라왔다. 모든 게 내 탓인 걸 알면서도 이미 삐쭉 튀어나온 못된 마음은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날씨 탓을 잔뜩 늘어놓으며 골목길을 힘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어떤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 잘됨 하우스? 저게 뭐야?'


[다 잘됨 하우스]란 글귀가 입구 옆에 현판처럼 걸려 있었다. 그걸 보자 저게 뭔가 싶어 '풉'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응원 같기도 하고 뭔가 다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집주인은 엉뚱한 사람일 게 뻔했다. 그런데 시선을 더 사로잡은 건 다 잘됨 옆에 적혀있던 영문이었다. DJD 라니... 저건 누가 봐도 다 잘됨의 초성을 영문으로 적은 거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걸 만들었을까 싶어 집주인을 만나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힘없이 걷던 내게 자그마한 재미를 준 집을 지나치려는 찰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다 잘된단 응원을 받을 거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처음엔 엉뚱한 글귀에 웃음이 났지만 이쯤 되니 집주인이 걸어 둔 현판이 어떠하든 그의 철학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대로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파인더에 안에 DJD를 담자 왠지 나도 다 잘될 거란 응원을 받은 것만 같았다.


지난해 연말 읽었던 에세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컴컴한 밤, 비를 흠뻑 맞으며 제주의 '오조리' 마을을 찾았던 저자는 버스에서 함께 내렸던 한 남자에게 작은 호의를 받는다. 그리고 그에게 '오조'의 뜻에 대해 물었는데 따스한 말이 돌아온다. '나를 비추는 빛' 그게 오조가 품고 있던 의미였다. 다 잘됨 하우스의 집주인과 오조리 마을의 이름을 지었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챙겨야 하는 마음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현판을 걸고 언제나 입에 오르내리는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게 아닐까 싶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비추는 빛이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스며들 수 있게 말이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하루라 생각했지만 나 자신에게 DJD라 말하고 나니 완전히 망친 하루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 잘될 거야.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땐 DJD를 떠올리자"



*김현지, 『우리 제주 가서 살까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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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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