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by 윤기




올해의 두 번째 목요일은 아침부터 광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차를 몰고 분당-수서 간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아 맞다. 오늘 민정이 누나 생일이지!' 절친의 여자 친구이자 알고 지낸 지 벌써 20년이 지난 민정이 누나. 선물까지 챙기진 않아도 연락은 해야 하는 사람. 생각난 김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벨소리가 얼마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받은 누나는 대뜸 새해 인사부터 건넨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윤기야!", "어... 어! 고마워. 누나도 복 많이 받아. 그러고 보니 새해 인사도 안 했네. 하하..." 인사를 마치고 미역국의 안부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다. 그거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거라 안 먹었단다. '이 누나는 여전히 젊음에 진심이네!' 그래서 되물었다. "미역국 안 먹으면 한 살 더 안 먹을 수 있는 거야?" 다소 냉소적인 말에도 누나는 뭐가 재밌는지 크게 웃는다. 간단히 근황 토크를 마치고 요즘 유행하는 독감이 피해 가길 당부한 후 건강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5분 남짓한 시간에 가벼운 이야기만 나눴을 뿐인데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왜 그런 걸까?' 그거였다. 생일 축하 인사. 가까운 사람에겐 눈을 보고 말하거나 최소한 전화라도 걸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메시지만 보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형식적인 축하 인사와 시답잖은 말에도 반갑게 대꾸하는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니 말의 온도라는 게 이렇게나 소중한 거였구나 싶었다. 가까운 사람의 생일엔 통화버튼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용인-서울 간 도로를 타야 해서 세곡동 어딘가로 빠져나왔을 때였다. 사거리를 지나는데 비상등을 켠 버스 한 대가 앞쪽에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시선에 들어온 건 후면에 적혀있던 [謹吊]였다. '장의차구나...' 고개를 떨궈 시계를 보니 아마도 화장터로 가고 있는 듯했다. 빨간 신호가 올라왔고 장의차 옆에 차를 세우게 됐다. 고개를 조금 들어 왼쪽에 있던 버스 안으로 시선을 넘겼다. 짙은 틴팅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엔 슬픔으로 가득한 유가족들이 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을 때 급하게 떠난 외삼촌, 몇 해 전 큰 이모네서 임종을 맞은 외할머니를 보낸 후 나도 저 안에 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온도, 습도까지... 녹색 불이 들어오자 먹먹해졌던 가슴이 일렁였다. 가속페달로 발을 옮겨 지긋이 힘을 주었다. 한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고 건강하길 빌어주며 웃던 게 몇 분 전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장면을 마주한 게 이상했다. 광교로 차를 모는 동안 '시작과 끝'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마지막'에 관한 감정이 깊어지려는 순간,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단 알림이 울렸다. 주차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결국엔 우리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겠지...'




20260111-R0002872.jpg [2026-01-09 13:28] 어디론가 가던 중에...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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