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번째 주, 종이책 출판을 앞둔 심정에 대하여
이번 주는 지난 몇 달 동안 써왔던 전자책 출판의 여정을 종이책으로 변경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썼던 시간이었다. 종이책 출판이라 하면 보통 출판사에서 러브콜을 받는 기획출판(돈을 받고 출판하는 방식)과 자비출판(내 돈을 들여 출판하는 방식)이 있다. 기획이든 자비든 출판사를 통해 유통하는 것이기에 교보나 영풍, 반디 등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내 책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어쨌든 종이책으로 변경된 이유가 기획출판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겠지만 아직은 그럴만한 역량이 되지도 않고, 전자책으로 출판을 기획하고 있었기에 출판사에 투고할 생각도 없던 터라(투고한다 한들 출판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번엔 자비출판으로 종이책 출판을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조금 신기하긴 한데. [한 걸음, 용기의 다른 말] 이란 제목을 달았던 글에서 먼저 이야기했지만, 언젠가 종이책을 내고 싶단 생각은 했었어도(대략 7-8년 후 정도, 기획출판으로) 전자책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적으로 전자책을 그리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손에 직접 쥐는 맛이 없는 것에 나의 첫 책이란 타이틀을 주고 싶지 않은 탓도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필하는 과정을 배운단 생각과 함께 책 쓰기에 매진한 동료들 덕에 편협한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그렇게 전자책 쓰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어떤 책을 쓸지 고민한 끝에 포토에세이 형식이 되어 글보단 사진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종이책을 갈구하는 마음의 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기왕이면 모니터보단 종이에 내 사진을 담고 싶었다. 자꾸만 두드리는 목소리를 묻어두는 것이 아쉬워 기념으로 제본이나 해두자 싶은 생각에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다. 적당한 곳을 찾아 원고를 넘기고 인쇄감리 일정을 조율하려는 찰나 출판사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계약한 인쇄소에 원고를 보내니 나의 사진을 출력할 해상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건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 정도 기술도 없는 인쇄소와 협업을 맺고 있었다니, 나도 그랬지만 출판사 담당자는 더 당황해했다. 사진집은 내 본 적이 없어 담당자도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죄송해할 것까진 없는 일이라 사과하실 일은 아니라 말씀드리고 다른 출판사를 찾았다. 그리고 몇 군데를 추리고 추려 최종 후보 두 곳과 미팅을 했던 게 바로 이번 주였다.
화요일에 미팅한 A 출판사와 목요일에 미팅한 B 출판사의 견적은 비슷했다. 똑같이 300부를 만드는 데 자비로 지출되는 금액이 거의 같았다. 다만 출판사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출판 과정의 차이와 인세였다. A 출판사는 표지 디자인만 아니라 본문 디자인과 교정 교열을 모두 봐주는 방식을 취하는데, 인세에 공제 부수가 있었다. 공제 부수라는 것은 몇 부 이상이 팔린 이후부터 인세가 지급되는 구조를 말한다. B 출판사는 표지 디자인만 봐줄 뿐(심지어 그것마저도 내가 만들어서 약간만 수정해 주는 형태) 본문 디자인이나 교정 교열도 없이 내가 만든 데로(사진 배치나 기타 등등) 인쇄하는 방식이었다. 단, 인세에선 장점이 있었는데 A 출판사와 달리 첫 번째 판매되는 부수부터 인세가 바로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전자책 출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본문과 표지를 만들어 두었기에 (표지는 종이책에 맞게 수정해야 하지만) 사실상 이대로 인쇄를 진행해도 상관이 없었다.
A 출판사는 종이책 출판 과정을 조금 더 밀접하고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지만 인세가 아쉬웠다. 현실적으로 따져보니 공제 부수를 생각하면 인세를 못 받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B 출판사는 전자책을 인쇄하는 것에 가까운 형식을 띠다 보니 A 출판사에 비해 직접적인 참여도가 아쉬웠지만 인세에 대한 건 강점이었다. 여기서 선택해야 했다. 무슨 일을 하든 소통을 중요시하는 성격상 두 출판사의 담당자는 이 부분에선 모두 합격점을 줄 만했다. 그다음은 종이책 출판을 하려는 본질적인 이유에 집중했다. 원래는 기념으로 제본이라도 해두자는 것에서 출발했었으니 B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왕 자비를 들여 종이책 출판을 하는데 출판사와 조율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게 내심 아쉬웠다.
결국 나는 A 출판사를 선택했다. (아직은 A 출판사도 모르고 있지만) 저번 주에 만난 절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비출판은 000만 원짜리 취미생활이었다. 그랬다. 기왕 하는 취미생활인데 돈보다는 즐거움을 얼마나 밀도 있게 즐길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게 맞단 생각이 들었다. B 출판사의 진행 과정보단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아 10월에 출판하기로 했던 일정은 지키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선택이 분명 훗날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다시 떠올려보면, 당장 책을 낼 생각도 없던 사람이, 그것도 전자책은 더더욱 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이. 책을 쓰기로 하고, 그것도 글만이 아닌 사진이 주가 되는 포토에세이 형식을 선택하고, 기념으로 제본이나 해두자 했던 것이 자비를 들여 종이책 출판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선택이 하루아침에 대충 일어난 일은 아닐 거다. 어릴 때부터 사색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싶어 사진을 찍고, 글을 썼고, 배움을 얻고 싶어 책을 읽던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선택을 하게 했을 거다. 계획이 달라지고 목표가 수정되어도 어디든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건 꿋꿋하게 믿어온 나의 경험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출판을 앞둔 나의 심정은 괜히 일을 크게 벌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막상 책이 나오면 진한 아쉬움이 가장 먼저 다가올 것도 알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련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그냥 지금의 선택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래! 지금은 그냥 글쓰기 취미 생활이나 마음껏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