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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Oct 06. 2024

이별, 피할 수 없는 것

마흔 번째 주,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하여




어제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함께 한 절친과 오랜만에 만났다. 한동안 전화로만 듣던 이야기를 드디어 소주잔을 부딪치고 눈을 마주 보며 나눴다. 내가 만나본 직장인들은 누구라도 비슷한데, 술 한잔을 마시고 나면 쓴맛이 사라지기도 전에 보통 회사 선후배 이야기, 업계 현황 같은 직장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중 7할은 속상한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인데, 주 5일을 마주치는 동료와 회사 욕을 어디 가서 할 수 있을까. 아무에게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스스로 누워서 침 뱉는 격이나 마찬가지일 거다. 그러니 대나무 숲과 같은 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거다.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깊게 공감할 수 없는 것들도 종종 있지만 친구들이 직장생활의 애환을 늘어놓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으며 가만히 듣는 것에 집중한다.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이런 이야기는 1시간 내외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냥 듣고만 있어도 괜찮다. 어디 가서 말 못 할 이야기를 토해내고 속이 후련해질 친구를 생각하면 지루하기는커녕 더 시원하게 해 보라고 부추기곤 한다. 어제도 친구는 내가 예상한 강도와 시간 안에서 적당하게 신세 한탄을 끝냈다. 테이블 위를 봤는데 두 번째 주문한 녹색병도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한 잔 정도 덜어지는 소주를 둘이 나눠 마신 후, 자리도 옮길 겸 잠깐 걷기로 했다.


주말 밤의 성수동 연무장길은 항상 사람이 많은데, 어제는 여의도 불꽃축제 때문인지 조금 적게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싶었지만, 항상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식당 앞도 평소보다 적은 걸 보니 아마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저 멀리 구름처럼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여 가까이 가봤다. 팝업 공연이 한창이었다. 팝업 스토어가 문을 닫은 시간은 팝업 공연이 열리기 좋은 시간이었던 거다. 어느새 성수동은 팝업의 동네가 되어있었다. 팝업 마케팅이 시들해지면 성수동은 누가 지키게 될지 궁금해졌다. 


2차로 종종 가는 막걸릿집을 가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 덜한 골목길을 지나갈 때였다. 자그마한 야키도리집이 눈에 띄었고 분위기가 적당해서 계획을 변경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꽃 피운 이야기는 취미생활이었다. 우리 둘 다 옷질(우리는 옷을 사는 행위를 옷질한다고 한다) 하는 것과 운동을 좋아해서 최근 쇼핑 목록을 공유했고, 다치지 않고 운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10년 전 도쿄 시모키타자와에 있던 액세서리 가게에 함께 들렀던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가 지난달에 도쿄에 갔더니 그 가게가 여전히 있다는 것과 끊어져 버린 내 팔찌는 이제 더 이상 팔지 않더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함께 트레일 러닝을 다녔던 친구 형의 부상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 나간 대회에서 부상을 당했고 무릎 쪽 인대가 파열됐다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당분간 운동은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주제는 건강으로 옮겨갔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적당히 해야 한다. 어릴 때 생각하며 몸을 혹사했다가는 언제 인대가 파열돼도 이상하지 않단 섬뜩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무서운 이야기의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건 물욕이었고, 그리운 건 싱싱한 연골과 인대였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아직은 쇼핑을 그만둘 생각도, 운동을 적당히 할 생각도 없다는걸. 씁쓸해진 입안을 하이볼로 헹구고 야키도리집을 나왔다.


이번엔 아예 메인 거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조용하다 못해 조금 으슥한 길로 걷는데 친구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자기는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다고 했다. 자신이 맞을 죽음이 아닌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게 되면 처할 상황이 그렇다고 했다.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보다 먼저 떠나게 될지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것. 그것은 죽음 될 수도 있었다. 준비할 수 있는 이별이라 한들 그것이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까. 친구에게 요즘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물었지만, 그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느새 생맥주집에 도착해 버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2시간 정도 나누자, 막차 시간이 다 되어 가게에서 나와 역까지 걸었다. 4번 출구 계단으로 올라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데, 그가 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죽음과 이별'


이것을 떠올리자 뜬금없이 든 생각은, 어찌 보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가장 숭고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적어도 배신이나 변절로 인한 이별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볼 수 없는 아픔을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리움보단 차라리 누굴 미워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영생할 수 없는 존재다. 죽음으로 비롯된 이별은 순리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진심을 전하면,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준비하는 마음은 언제나 어렵다. 심지어 죽음과 이별이라니. 그 순간을 상상하니 나도 친구처럼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없어 더 이상 생각을 멈추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가 꺼낸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한참 동안 고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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