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번째 주, 망자에 대한 평가는 누구의 몫이 되는가
가족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났던 한 주였다.
월요일 오전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언제 전화가 와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지만 보통 이 시간엔 연락이 거의 없었으니 조금 이상하단 생각으로 핸드폰의 화면을 옆으로 밀었다. 둘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평소에 소식을 들을 일도 없었지만(알려는 마음조차 없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너무도 뜬금없는 부고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사고사인가 싶어 자초지종을 물으니, 두 달 전부터 중환자실에 있었고 결국 오늘 오전에 숨을 거두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두 달 전부터라니...' 슬픔보단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먼저 밀려왔다.
둘째 이모부는 외갓집에선 거의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종종 왕래했었고, 가족이 모이는 자리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였지만 항상 옆에 계셨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조금씩 흐르며 얼굴을 마주하는 날도 뜸해졌고 어느새 둘째 이모부는 가족 모임에서조차 불청객이 되었다.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이모부가 점점 멀어져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외갓집 식구는 모두 9남매로 형제가 많다. 그중 둘째 이모는 평생을 미싱 공장에서 허리가 휘도록 두 아들을 먹여 살리며 가장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가족 중 유일하게 가난을 면치 못하는 형편을 보며, 형제 중 그 누구도 이모부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던 거였다. 이모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나이 먹도록 돈도 안 벌고 가족들 등골 빼먹고 사는 놈이 이모부였다. 그것도 모자라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 사니 원래 낯빛이 붉은색인 줄 알았던 내가 착각을 한 것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가족 모임에서 이모부는 언제나 불화의 발화점이었고 결국 큰소리가 난 후에야 진정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 모임에서도 나에게서도 둘째 이모부의 이름은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가족이란 사회적 합의 안에 있었을 뿐이었지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세상을 떠났단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혹시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같이 갈 수 있냔 엄마의 부탁에 선뜻 알겠다고 답을 할 수 없었다. 내겐 이모부의 죽음보다 눈앞에 있는 일들이 더 중요했던 거였다. 엄마에겐 아빠랑 먼저 출발하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난 참 못된 사람이란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모부인데, 지금은 아무리 남과 다름없다 하더라도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함께 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하고 말았다. 비교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가까운 지인의 부고였더라도 아마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우선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만 해결한 후 장례식장으로 나설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핸드폰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금은 별로 할 게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괜히 애쓰지 말고 장례식장엔 내일 가는 게 낫겠단 엄마의 전화였다. 이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진 내가 싫어졌다.
다음 날 오전 와이프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와이프는 이모부를 뵌 적이 없다. 아니, 딱 한 번 있을지도 모르는 데 있다면 결혼식 당일이었을 거다. 신부가 그날의 정신으론 존재감이 희박한 둘째 이모부의 얼굴을 기억할 리 없었다. 그 이후로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와이프는 이모부의 모습을 보기는커녕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이 부고가 되었다. 운전하며 이런 일이 생긴 배경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입으로는 이모만 불쌍하다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엔 이렇게 떠난 이모부도 가엽게 느껴졌다. 외조카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의 이른 죽음이 오히려 가족에게 도움이 되리란 안도감으로 표현되는 것에 대한 가여움이었다. 인간이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 한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며 죽음의 길로 떠나는데 이토록 야박한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인가에 대한 회의감도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조문객 한 명 없이 사촌 동생과 이모들만 있는 텅 빈 장례식장에서 이모부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그나마 인사라도 드렸음에 도리를 다했단 생각이 드는 나를 마주했다. 아마도 떠나는 날까지 사촌 동생 앞으로 빚만 지고 갔단 큰이모의 한숨을 들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어떤 것이 진짜 나의 마음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었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발인엔 참석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모부의 발인보다 내 일정이 더 중요했다고 하는 게 맞다. 오후였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무거운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인은 잘하고 왔는지 물었는데 이제 막 이모를 집에다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고 있단 말이 들려왔다. 이모부는 잘 보냈다고 했다. 엄마의 그 말과 함께 내게 둘째 이모부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때야 실감이 났다. 깊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모부는 내게 가족이었음을.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마음을 다해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었다.
전화를 끊고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란 존재는 살아서도 모자라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날마저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였다. 만약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죽은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는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망자를 향한 평가는 세상을 떠난 자의 몫이 아닌 남은 자의 몫이 되는 게 아닐까. 훗날 나도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내 가족이 나의 평가를 짊어지게 되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답을 주지 않은 채 고인이 떠난 하늘로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참 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