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번째 주, 시작하는 게 망설여질 때에 대하여
어제였다. 오랜만에 세차를 맡기고 한가한 주말을 보내려 하던 차에 P의 집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게 되어 P가 다니는 교회의 사진을 찍은 후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겉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샵에 차를 맡기고 기다릴 동안 P와 커피를 한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제야 메시지를 봤다며 P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단체 카톡방은 알람을 꺼두다 보니 바로 확인이 어려웠다는 말과 아직도 근처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단 말도 했다. 그렇게 P와 주말 오후 몇 시간을 함께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은 러닝과 글쓰기였고 시작과 주저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P의 형이 최근 러닝을 하고 있는데 P에게도 러닝을 권유한단 말이 시작이었다. 러닝 5년 차에 접어든 내게 어떤 말이라도 듣길 바라는 눈빛이 느껴졌다. 참견하기 전 P에게 러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 돌아왔다. 사실 러닝이라는 게 그냥 나가서 달리면 될 것 같지만(사실 틀린 이야기가 아니긴 하나...) 막상 무작정 달리기엔 약간 걱정이 될 수도 있는 운동이다. 초심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몇 분을 달려야 하는지도 막막할 테고, 천천히 달리라는데 그것조차 애매했을 거였다. 숨이 차지 않으면 운동이 되는 건지 의문이 들 수도 있고 혹시 모를 부상에 대한 압박도 있을 법했다. 러닝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P에게 물었더니 거의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 사용했던 방법을 알려줬다. 아주 똑같진 않지만, 핵심 두 가지는 같았다. 천천히 달리기와 5분만 달리기. 아직은 초심자니 5분 내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기와 뛰기를 나누어서 달려보자고 조언해 줬다. 처음엔 1분만 달리고 4분만 걷는 것. 이렇게 채운 5분이 1세트가 되고 총 6세트를 채우면 한 번에 30분을 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1분간 달리는 속도는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달리는 것이니 전혀 힘이 들지 않을 수준이었다. 내가 이 방법을 추천하는 이유는 할 수 있단 자신감을 채워줘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 같은 경우 뭔가 시작할 때 열정과 의욕이 가득 차서인지 너무 거창하고 먼 곳부터 바라볼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막상 첫발을 내딛자마자 뒷걸음쳤던 경험도 많아졌다. 이런 경험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중도 포기가 잦아지고 결국 시작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P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내가 극복했던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방법으로 러닝을 시작하면 1분 뛰고 4분을 걷던 몸이 4분을 뛰고 1분을 걸어도 아무렇지 않은 걸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단 자신감이 강해지고 더 오랜 시간 달리고 싶어진다. 결국 러닝이 재밌어지고 취미가 되며 습관이 되는 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달리고 싶어지는 마음. 이렇게 시작하면 P는 점점 뛰는 시간이 늘어날 거고 아마 한 달 안엔 30분 내내 뛰어도 힘들기는커녕 아주 개운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될 거다. 달리는 게 힘들다고? 피곤해서 하루 쉬고 싶다고? 날씨가 짓궂어서 내일로 미루겠다고? 모두 집어넣고 일단 나가서 '5분만' 달려보자. 그럼 힘든 것도, 피곤했던 것도, 짓궂은 날씨도 아무것도 아닌 기적이 일어난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P가 내게 책 출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약간 딜레이가 생겼지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답한 후 P의 글쓰기로 화제를 전환하자 지난 여름날 교대에서 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언젠간 자신도 책을 내보고 싶단 말에 지금부터 해보라고 권유했던 것도 기억났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P가 망설였었는데 당시 그의 말은 몇 년 전의 나를 생각나게 했다. 글 쓰는 게 취미란 걸 주위에 말하는 게 어색했던 그때가... 사실 쓰는 행위가 어떤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것인데도 막상 어디 가서 이걸 취미라고 말하기엔 뭔가 대단한 각오가 선 것처럼 곤두서곤 했었다. 아마도 주변 시선이 의식되고 내 글이 한없이 하찮단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취미생활이 그렇지 않나.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재밌으니까 하는 것. 결국 글쓰기도 다른 취미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P에게 내가 속해 있는 책 쓰기 커뮤니티에 가입해 볼 것을 권유했다. 당장 책을 쓰라는 것이 아니라 P의 주변이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보길 원하는 마음을 전달했다. P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며 당장은 독서를 좀 해야겠단 말을 꺼냈다. 그럼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엔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는단 답이 돌아왔다. 사실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퇴근해서 육아까지 병행하다 보면 힘에 부치는 게 당연할뿐더러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렵단 것이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블로그에 글도 쓰는데 독서를 못할 건 없어 보였다. 들어보니 P의 아내도 얼마든지 그를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시한 방법은 '5분만'이었다. 퇴근해서 주차 후 차 안에서 딱 5분만 책을 읽고 집으로 들어가면 어떠냐는 거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분이었다. 일주일에 5분씩 5일. 한 달에 20일만 읽어도 웬만한 두께의 책 한 권은 한 달이면 충분하다는 걸 말해줬다. 이 말을 듣더니 P가 솔깃해했다. 러닝처럼 독서도 5분만 해보겠단다. 사실 하루에 5분도 시간을 내지 못하면 그건 마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다는 게 거짓이거나 그만큼 하고 싶지 않은 것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보통 하루에 30분 정도 독서 시간을 갖는데 내겐 이 정도가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기에 딱 좋은 페이스다. 물론 나도 책을 펼치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역시 '5분만'을 끄집어낸다. 막상 독서를 시작하면 5분만 읽자던 것이 30분이 지나있다. 오히려 더 읽고 싶지만 덮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긴 하나 매번 이유에 집중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이유에만 매몰되면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다. 내 경우엔 뭔가를 시작해야 할 땐 이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시작하고 나면 '그냥' 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고 재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그냥' 하기의 방법이 바로 '5분만'이다. P가 독서를 시작하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5분만'의 기적을 알게 된다면 쉽게 끊긴 어려울 거다.
P와 '5분만'에 대해 이야기하다 서로 헤어질 시간이 되어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들어오니 뛰러 나가기가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귀찮음에 정신이 잠식당하기 전, 5분만을 외치고 운동복을 입었다. 40분을 달리고 돌아왔는데 마침 P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달리러 나간다며 운동복을 입은 사진과 함께였다. 그의 5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