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주, 꾸준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오늘 발행할 글까지 앞으로 열 번을 쓰면 올해의 브런치 이야기는 끝난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24년도엔 작정하고 글을 써보잔 마음을 가졌다. 아마도 글짓기 갈증이 역대급으로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욕구에서 탄생한 게 '주간정산 2024'다. 주간 단위로 계획한 글감 분류는 복잡했어도 글쓰기 조건은 간단했다. 매주 일요일 한 편씩 1년간 총 쉰두 편의 글을 쓸 것. 글자 수는 최소 1000자 이상으로 시작해 점점 늘려 2000자까지 써볼 것. 그렇게 쓴 글을 가지고 가을에 있을 브런치 공모전에 신청할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마감일은 무조건 지킬 것.' 지금 그렇게 마흔세 번째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궁금했었다. 많은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뒤적거렸는데 착각이었다. 딱 한 가지만 하면 된다고 했다. 꾸준하게 자주 쓰기. 자주 쓰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했고, 사물을 허투루 보는 법이 없어야 했으며, 연기처럼 사라지는 감정까지도 끌어안아 글감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자주 쓸 수 있던 거였다. 짧은 글이라도 어떻게든 쓰려하면 써졌다. 하지만 타인의 평가가 두려웠던 글쓰기 초짜에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세상 밖에 내놓기 힘든 글이 나의 자리임을 인정하고 발행 버튼을 눌러야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떻게 꾸준히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잘 쓰고 싶으니까 꾸준히 썼던 거였는데 어떻게라니. 그런 게 있긴 한 걸까. 잘 모르겠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아직 나는 그걸 알 수 없는 레벨인가 보다.
매주 4회 이상. 적어도 3회. 한 달에 100km 이상 달릴 것. 나의 러닝 계획표다. 한 주를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오래 달리는 날. 멀리 달리는 날. 빠르게 달리는 날. 회복하며 달리는 날로 나뉘지만 이름이 어떻든 모두 달리기다. 그렇게 나는 최소 100km 이상, 많게는 150km 정도 달린다. 아니.. 그랬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라 그랬을까.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았다. 신이 나서 달리던 중 자전거가 보행로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피하긴 했는데 발목이 접질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전거와 부딪치거나 혼자 다치거나 뭐가 됐든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거였다. 사고보단 혼자 다친 게 나은 것 같다. 발목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한 달 정도 쉬고 복귀했는데 무리였다. 뛸 수 있는데 아직 아팠다. 그건 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5월과 6월을 통째로 날리고(사실 네 번 정도 뛰기는 했다.) 7월이 되어서야 겨우 30분 달리기에 성공했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풀코스를 준비하고 있었고 몸을 잘 만들어가고 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달리기 힘들까 봐 걱정도 됐다. 7월을 무사히 보내고, 8월에 들어서 달리는 시간을 천천히 늘렸다. 시간이 늘어나며 거리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어 속도를 올리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달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난달. 드디어 1시간 이상 달리기에 성공했다. 10km도 성공. 속도와 심박수가 이전 같진 않았지만 아프지 않고 시간과 거리가 늘어난 건 기쁜 일이었다. 9월 마지막 날. 누적 거리를 확인하니 80km를 달렸다. 자신감이 붙었다. 아직 네 번이나 더 달릴 날이 남은 이번 달 누적 거리는 83km다. 특별한 일만 없다면 100km 이상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진정한 부상 복귀에 6개월이 걸렸다. 누군가 묻는다. 꾸준히 달리는 비결이 뭐냐고. 비결이고 뭐고 그런 건 모른다. 아프지 않으면 달리는 거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달린다.
한강 사진을 찍는다. 기준은 없다. 그냥 한강에 나갈 때마다 예뻐 보이는 것을 찍는다. 산책할 때도 달릴 때도. 그렇게 몇 년을 꾸준히 했더니 곧 출판하는 포토에세이에 들어갈 사진이 차고 넘친다. 사진이 없어 고민한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게 일이었다. 한강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언젠가 한강을 배경으로 꼭 책을 내고 싶었다. 사진집이 되었든 에세이가 되었든. 예정보다 빨리 찾아왔지만, 어떤 책을 쓸지 고민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포토에세이로 정할 수 있었던 건 꾸준히 찍어둔 사진 덕분이었다. 물론 새로 찍어야 하는 것도 꽤 됐지만 수년 전부터 아카이빙 했던 사진이 없었다면 포토에세이는 부담스러워 포기했을 거였다. 풍경 사진이라는 게 워낙 날씨 영향을 크게 받다 보니 원하는 그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루 이틀은 고사하고 일주일 내내 마주치기 힘들 때도 있다. 거기다 장마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특정 기간에만 가능하니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전업 작가도 아닌 나로선 글과 사진을 동시에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 만만할 리 없었다. 애초에 한강 사진을 찍었던 건 책에 쓰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기록을 열 땐 마치 선물 보따리를 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만든 것이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하는 그림 대부분 그 안에 있었으니까. 무엇이 되었건 꾸준히 기록한다는 건 지나쳐온 일상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음에 대한 보상이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진을 갖고 있었느냐고? 간단하다. 손에 쥔 휴대폰의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셔터에 손을 가져가면 된다. 그렇게 꾸준히 하면 된다. 단지 그것뿐이다.
꾸준함은 일상에 녹아버려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침전된 것들은 시간이 흘러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선물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