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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Nov 17. 2024

건강, 어쩌다 자체격리

마흔여섯 번째 주, 코로나에 걸려 억울했던 날들에 대하여



'밤새 온도가 좀 내려갔나?'

수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방안이 약간 차게 느껴지며 뭔가 으슬으슬하고 기분 나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27도. 방 안의 온도는 어제와 다름이 없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밖의 온도를 확인하니 역시 어제와 별 차이가 없다. '뭐지... 기분 탓인가?' 일어나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업무를 보고 있는데 몸살감기가 오기 전에 그 미묘한 기분과 침을 삼킬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편도가 영 신경 쓰였다. 지난달이었나. 반찬을 받으러 본가에 갔을 때 목련차를 챙겨주며 비염에 좋으니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불편한 건 코가 아니었지만 뭐라도 마시면 좋을 것 같아 포트에 물을 끓이고 꽃잎을 두 장 꺼내 찻잔에 올렸다. 따뜻한 걸 마시니 금세 불편함이 사라졌다. 엄마의 혜안에 감탄하며 한참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침을 삼키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편도가 다시 예민해졌다. '좋아진 게 아니었나? 병원에 다녀와 볼까...?' 평소라면 이 정도는 무시하고 넘길 수준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병원에 다녀와야만 할 것 같았다. 금요일부터 3일 연속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가급적 빨리 컨디션을 회복하고 싶었다. 달력을 보며 고민하다 시간만 지체하느니 빨리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가 오후 2시였다.


대충 트레이닝 복을 걸친 후 모자를 쓰고 평소 자주 다니던 집 근처 내과에 갔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수요일은 오후 1시까지만 진료한단 안내판을 보자 짜증이 밀려왔다. '언제부터 바뀐 거야. 후...' 등을 돌리고 지도 앱을 열어 진료 중이란 걸 확인한 후에야 근처 이비인후과로 걸음을 옮겼다. '진료 중'이란 글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문을 열고 들어가 인적 사항을 적었더니 다시 나를 부른다. 첫 방문이냐며 묻더니 신분증을 달라고 한다. 휴... 카드만 챙겨 올까 하다 지갑을 가져온 게 다행이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증상을 말하고 열 체크를 한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병원엔 사람들이 많았다. 20분을 조금 넘게 기다려서야 의사를 만나게 됐다.


"어디가 아프세요?"

"목이 조금 아프고 약간 몸살 기운이 올 것 같은 기분입니다."

"심한가요? 열은 안 나고요?"

"열은 나지 않고 증상은 심하지 않습니다."


내 얘기를 들은 의사는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열 체크를 부탁했다. 귀에 기계를 집어넣은 간호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세 번을 하고 나서야 37.8도라는 말을 의사에게 전달했다. '36.5도가 정상 아닌가...?' 내 귀를 의심했다. 난 분명 열이 느껴지지 않는데 37.8도라니 기계 오류가 아닌가 싶었다.


"열이 있네요?"

"네? 열이요?"

"네. 열이 높아요. 제가 봐서는 독감이나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네. 할게요."

"검사 비용 4만 원이 추가되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만약에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린 거라면 비상 상황이라 그깟 4만 원이 대수가 아니었다. 내 대답을 들은 의사는 끼고 있던 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한 번 더 끼더니 기다란 막대기로 왼쪽 콧구멍을 쑤셔댔다. 예전에도 코로나 검사를 한 적이 있어 그리 긴장하지 않았지만, 막상 막대기가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오자 목뒤가 자연스럽게 경직됐다. 어느새 막대기는 간호사에게 전달되었고 나가서 기다리라는 말이 들려왔다.


'에이 설마. 아닐 거야. 근데... 독감이나 코로나면 어쩌지? 당장 금요일부터 있는 약속들은 어쩌지?' 금요일 약속은 친한 지인들과 아산으로 가을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사이트 예약도 내 이름으로 했고 SRT도 내 이름으로 예매해 놔서 일단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려던 찰나 내가 37.8도인 걸 의사에게 알렸던 간호사가 손에 하얀 걸 들고 누굴 찾는 게 보였다. 손을 들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렸다.


"윤기 님?"

"네"

"막대기를 보면 위가 독감이고 아래가 코로나예요. 근데 위에는 한 줄. 아래는 두 줄로 선명하죠?"

"네. 그렇네요."

"네. 윤기 님은 코로나 양성 반응이에요"

"네? 코로나에 걸렸다고요?"

"네. 격리는 하실 필요 없고, 따로 약은 없어요. 증상에 맞는 처방 해주실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다시 오세요."

"네..."


믿기지가 않았다. 코로나라니? 내가? 아니 그건 그렇고 하필 왜 지금? 코로나가 걸린 것보다 왜 지금인지가 정말 너무나 짜증 났다. 지인들과의 가을 소풍은 한 달 전에 잡은 약속이고 토요일 있을 출간 동료들과의 연말 파티도 한 달 전에 잡았던 거였다. 일요일은 절친들과의 단순 술자리라 그냥 넘길 수 있겠는데 금요일과 토요일 모임은 너무나 기대했던 일정이어서 코로나에 걸린 걸 부정하고 싶었다. 


'별 증상도 없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갈까?'

'아니야.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뭐 어때? 눈에 띄는 증상도 없고 요새 코로나는 별것도 아니라고 하던데. 감기라고 하지 뭐.'

'그래도 속이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못 간다고 이야기하자.'


마치 안에서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우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의사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우선 금요일 모임부터 정리하잔 생각에 모임을 주선한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죄송하단 말을 건네고 그다음 수습에 나섰다. 이제는 토요일 모임이었다. 역시 모임의 리더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죄송하단 말을 건넸다. 이제는 일요일 모임이었다. 친구는 내 얘길 듣더니 큭큭 거리며 웃었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녔길래 코로나에 걸렸냔 말에 나도 좀 알고 싶다고 응수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간 곳이라곤 집, 한강, 카페 한 번, 도서관 한 번밖에 없는데 싸돌아다녔다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하지 않냐며 따져 물었더니 친구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라면서 웃더니만 몸조리 잘하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렸다. 친구들은 그렇다 치고 갑작스러운 불참으로 이런저런 불편함을 끼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걱정하는 지인들의 개인적인 연락에도 민폐를 끼쳤단 생각 때문에 참 미안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일요일 오후다)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와 똑같다 싶을 수준으로 목이 조금 불편할 뿐 컨디션은 더 좋아졌다. 그럼에도 의사는 감염률이 높으니, 사람을 만나지 말라며 토요일에도 다시 한번 주의를 줬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지인들이 톡방에 올려준 사진을 방구석에서 실시간으로 보며 참 부러웠다. 나도 저기 있었어야 했는데, 저들과 같이 걷고, 먹고, 마시며 웃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나 억울했다. 누굴 탓하랴. 몸 관리 못 한 내 탓이거늘. 몇 년 만에 찾아온 코로나는 이전과 다르게 마음에만 생채기를 내고 이렇게 지나가려나 보다. 올해 나의 가을도 이토록 헛헛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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