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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Nov 24. 2024

러닝, 잃어버렸던 나를 찾기

마흔일곱 번째 주, 즐거움을 향한 마음에 대하여



오늘이었다. 잃어버린 나의 즐거움을 다시 찾은 날.




그동안 매주 일기를 읽어 주신 독자라면 알고 있겠지만 러닝은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다. 벌써 5년 차 러너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데, 취미에 이 정도 시간을 들였다는 건 단순 건강 목적을 떠나 즐거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뭐든 꾸준하게 한다는 건 정신력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매 순간 정신력을 운운하며 살기도 힘든 노릇이고 심지어 스트레스 해소 목적이 강한 취미생활에 정신력을 가져다 붙이는 건 뭔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완벽주의 성향이(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리에 어긋난 그 짓을 하게 만들고 말았다.


어느 순간 러닝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기 힘들어졌다. 내가 러닝이 빠진 이유는 달리면서 숨이 차오르는데도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단 것이었고 더 나아가선 산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색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데 있었다. 그러면서도 심폐지구력 향상과 심혈관 계통에도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하니(아! 다이어트도)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수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수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수영도 무척 좋아해서 몇 년 동안 꾸준히 강습에 참여했고 결국엔 상급반에 합류 후 한강을 왕복으로 건너는 대회에 나가 완주도 한 경험이 있다. 코로나 때 수영장을 가기 어렵게 된 것이 가끔 달리던 한강을 본격적인 취미 생활로 만들게 된 배경이 되었다. 다시 러닝 이야기로 돌아와 왜 내가 그토록 즐기던 운동이 요새 재미가 없어졌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 생각도 달리면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나의 완벽주의 성향이었지만 그거야 원래도 가지고 있던 것이었고, 나름 잘 컨트롤하고 있던 것이니 뭔가 다른 요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한 10분 정도 달리자 힌트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부상'이었다. 그랬다. 올 5월에 자전거를 피하며 접질렸던 발목 부상 때부터 강박이 시작된 것 같았다.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 당시에 나는 한참 폼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고, 풀코스를 뛸 몸을 만들기 위해 훈련 프로그램을 잘 수행하고 있던 중이기도 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약 15km 정도 산을 뛰기도 했었고 하프 정도는 (21.1km)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당장 나가서 달려도 될 정도의 몸을 만들었을 때였다. 그렇게 점점 거리를 늘리면서 30km 훈련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 불의의 부상을 입고 말았다. 운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잠깐 쉰다고 해서 실력이 크게 줄어들진 않는다. 물론 매일 연습을 해야 감각이 유지되는 예민한 운동도 있지만 러닝은 잠시 달리지 않더라도 급격하게 실력이 퇴보하진 않는다. 10 정도에서 2로 가는 게 아닌 6-7 정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뿐이고 이마저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현명하지 못한 탓인지 잘 만들어 가던 폼을 잃고 싶지 않단 생각에 매몰되고 말았다. 어느 때보다 부상에서 빨리 회복하고 싶었고 다시 풀코스를 뛸 수 있는 몸과 내가 원하는 기록을 가질 수 있는 몸을 되찾고 싶었다. 그 강박이 바로 나에게 러닝의 즐거움을 뺏어간 씨앗이 되고 만 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어진 씨앗은 장마철이 되자 비를 잔뜩 맞은 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잡초들처럼 어느새 내 안에서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달리면서 보던 풍경, 산책을 하는 가족들과 연인들. 코 끝으로 전해오는 그날의 습도와 공간의 냄새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내가 그런 것을 즐기고 있던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발목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은지를 신경 쓰고, 자세와 착지, 케이던스(1분당 발 구름 회전수) 등등 러닝에 대한 오만가지 기술적 분석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즐거움이 들어갈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다치기 전의 나의 기록과 퍼포먼스에 사로잡혀 채찍질만 계속될 뿐이었다. 더 빨리 달려야 했고 다 자주, 더 멀리 달릴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서운 짓을 여름 내내 나에게 강요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냥 앞만 보고 가는 경주마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다. 내 인생의 모토인 '즐거움 없는 취미생활은 필요 없다'란 걸 지켜내고 싶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깨닫게 되자 한숨이 밀려왔다.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니...' 나를 지치게 만든 건 부상이 아닌 나였고,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빌런이 되어 있던 거였다. 오늘이었다. 다시 즐겁게 달려보자고 스스로 다짐한 후 처음 한강으로 나간 날. 스포츠 워치에서 알려주는 페이스와 거리를 보지 않고 달렸다. 그렇다고 일부러 알람을 끄진 않았다. 알람을 끄면 내 의지가 아닌 시계가 알려주지 않아서 안 본 게 되는 것 같아 싫었다. 알람이 울리더라도 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13km를 달렸다. 오랜만이었다. 이제야 넘어가는 해가 다시 눈에 들어왔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소도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공기는 차지 않았고 나의 숨소리는 편안했다. 팔동작과 발소리는 리듬감이 있었으며 박자가 잘 맞았다. 오늘의 나는 풀코스를 위해 달리던 내가 아닌 행복에 겨워 달리던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그리워하던 그때의 나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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