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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21. 2020

친구가 약이다

하와이에서 친구 사귀기

  하와이 학교에 간 첫날 아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엄마! 친구가 나보고 “You are my best friend!”라고 했어.”

  “엄마, 하와이에 계속 살래, 친구들이 정말 친절해.”

  며칠 동안 하와이 친구들에 대한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첫째 아이는 적극적인 성격이고 평소에 말하기를 좋아해서, 학교에서도 되든 안되든 영어로 신나게 이야기했던 모양이었다.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매일 학교에 가고 싶고 주말이 싫어졌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말이었다. 봄방학 시작하는 날에는 일주일이나 친구들을 못 본다며 거의 울상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어떤 친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신이 나서 종알종알 다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는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서로 편이 나뉘어 아웅다웅 자주 다퉜는데 하와이에서는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친하게 지내서 좋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이 남녀 상관없이 잘 지내서 좋았다. 인구의 반이 남자인데 여자 형제만 있는 우리 아이들이 남자아이와 편하게 지내기를 바랐었다. 게다가 하와이에서는 무엇보다 공부로 친구를 판단하지 않아 좋았다. 한국에서 지난 1년 내내 반에서 단짝 친구를 만들지 못해 애가 탔던 큰 아이에게 참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BTS(방탄소년단) 나라에서 온 새로운 친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내 아이들은 익숙해졌고 열렬했던 환영도 점점 식어갔다. 단짝 개념이 없는 하와이 아이들은 내 편, 네 편이 없다 보니 오늘은 나랑 둘이서 세상 둘도 없이 재밌게 놀다가 내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친구와 놀아 속상한 일도 종종 생겼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충격이라 겪어내야 될 일들이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먹을거리와 에어 바운스 같은 놀이기구를 갖다 놓고 가족들과 동네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Fun Fair’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반 친구가 같이 놀자며 데려가고 슬라임도 선물로 주더니, 친한 친구들이 모이자 갑자기 “너는 가족들과 같이 왔으니 가족과 놀아, 이제부터 나 따라다니지 말아.”라고 해서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그리고, 반에 약간의 장애가 있는 친구(스페셜 키즈)가 이유도 없이 발로 차서 아팠지만 스페셜 키즈라서 화내거나 울 수도 없어서 속상했던 적도 있고, 학교 급식시간에 식탁을 닦는 일을 맡았는데 주스 쏟은 자리를 가리키며 “00, 빨리 닦아, 이건 니 일이잖아.”라고 해서 속상해한 적도 있었다. 크고 작은 문화적 차이로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적응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대성통곡하고야 말았던 날은, 이상하게 그날따라 아이들 둘 다 기분이 엉망이어서 자꾸 사소한 일로 다투던 날이었다. 알고 보니 두 아이 모두 반 아이들이 친절해서 좋긴 하지만 영어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한국 친구들만큼 마음으로 친해지지 못하고 어쩌면 ‘왕따’인 기분이 들어 속상하고 힘들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대었다. 아무리 일하던 엄마와 하루 종일 있어 좋았더라도, 친구가 무척 소중한 때인데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아픈 것도 사실이었다.      


  친구로 받은 상처는 친구로 치유해야 되는 법.

  나와 같은 어학원에서 만나 알게 된 한국계 일본 여자분이 계셨는데 말이 잘 통해서 친분을 쌓았다. 우리처럼 엄마와 딸만 하와이에 공부하러 왔고 아이가 비슷한 또래라고 해서 같이 만나 놀기로 했다. 

  그 아이는 하얀 피부에 맑고 선한 큰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나 서먹함도 잠시, 아이들은 금세 알라모아나 비치에서 작은 게를 잡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그 친구는 한국말이 조금 어색해서 처음에는 부끄럼을 탔지만 적극적인 성격인 첫째 아이가 리드했고 말수는 적지만 배려를 잘하는 둘째 아이와, 조용해 보여도 재미있고 무한대로 착한 그 친구, 셋이 찰떡궁합처럼 딱 맞아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친구처럼 사소한 다툼 한번 없이 잘 놀았다. 저녁까지 먹고 밤늦게 헤어졌데도 아쉬워했고 또 만나고 싶어 했다. 

  그 날부터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어떤 다른 한국 친구들과도 꼭 한 번은 싸우고 속상한 일이 생겼는데 참 신기했다.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영화관도 같이 가고, 이올라니 스쿨 축제에 함께 가서 음식을 나눠먹고 놀이기구도 타고, 그 친구 집으로 가서 컵케이크를 만들며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부활절 달걀 찾기 행사, 코스트코 함께 가기, 그렇게 매주 만나 먹고 놀고 자고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갔다.

  “깔깔깔!”

  “낄낄낄!”

  “와하 하하하!”

  “조용히 하라고! 아랫집 아저씨 또 올라오면 어떻게 해!”

  아랫집 아저씨가 걱정이 되었지만 끊이지 않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같이 미소 지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소원하던 파자마 파티를 하와이에서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좋은 친구와 함께. 하루 종일 친구와 흠뻑 놀고 웃다가 잠들었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기분이었지만 두 아이의 엄마였을 때보다 훨씬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즐거우니 힘든지도 몰랐다.      

  좋은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역시 친구가 약이었다. 좋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하와이 생활이 무척 풍요로워졌다.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해졌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의 하와이 생활의 큰 의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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