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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22. 2020

나 잘하고 있는 거야?

하와이에서 방황하기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 NAVER 지식백과 -     

 


  하와이 살이 3개월 차 봄방학에 있었던 아이들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그간 참아왔던 인내심이 폭발해버렸고 하와이 생활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제 멋대로였고 생활은 엉망의 연속이었다.    

  

  차를 사고 3개월째 한 번도 세차를 하지 못해 차가 너무 꼬질꼬질했다. 며칠 전 콘도 내 세차 장소를 발견하고 주말이 되기만 벼르고 있었다. 뜨거운 하와이 햇볕, 그래도 이른 아침에는 그늘 밑에서 세차가 가능해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을 깨워 걸레 몇 개와 지붕 닦을 때 사용할 의자까지 챙겨 나갔다. 세차장처럼 기다란 물 호스도 있었다. 거품 세차까지는 무리라 물청소만 하기로 했다. 잠이 덜 깨서 나가기 싫다며 입이 튀어나왔던 아이들이었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아침 공기는 이내 기분을 좋게 했다.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에 더러운 때가 벗겨지고 금새 차가 반짝이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하지만 좋았던 기분도 잠시, 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해보겠다며 호스를 갖고 실랑이를 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 다른 차에 물이 튈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서둘러 청소를 끝내려고 하는데, 순식간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쾅’ 닫혔다. 차 문이 잠겨버렸다! 큰일났다! 휴대폰과 집 키, 차 키를 모두 차 안에 두었는데!

  “누가 잠궜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범인은 둘째 아이였다. 평소 장난칠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화가 벌컥 났다.

  “왜 잠궜어!”

 나와 첫째가 화가 나서 방방 뛰자 그렇지 않아도 놀랐던 둘째 아이의 울음이 팍 터졌다. 뒷좌석을 청소하려고 열어보니 문이 잠겨 있어 운전석 차문에 모두 열리는 버튼을 누른다는 게 잠금 버튼을 눌렀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로비에도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았고 어렵게 전화를 빌려 매니저와 통화해도 문을 열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청소하시는 분이 차 문 여는 사람을 불러주어 1시간 로비에서 기다린 후 73.25달러를 주고 문을 열었다. 아침도 못 먹고 잠옷과 다름없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11시까지 그러고 있었다. 막막했고 화가 났고 아이도 울먹이던 시간이 한참 흘렀다. 내가 울고 싶었다. 아이가 너무 미안하다고 해서 괜찮다고 했지만 속은 쓰렸다. 차 청소 업체에 그 돈을 줬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건은 바로 다음날 연이어 찾아왔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친언니처럼 지내던 분이 해외살이에 에어 프라이어는 필수라고 꼭 사라면서 돈을 보내셨다. 코스트코와 바로 근처 베스트바이(전자제품 판매점) 두 곳을 둘러보고 사려고 출발했다. 

  역시 코스트코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나라보다 사람 사이 거리를 훨씬 넓게 두는 하와이 사람들이지만 코스트코나 와이키키처럼 복잡한 곳은 어쩔 수 없었다. 정신없이 장난치거나 싸우는 두 아이 때문에 붐비는 마트를 좋아하지 않는데, 하와이엔 몸집이 큰 분들도 많았고 커다란 카트에 가구처럼 큰 물건을 옮기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딪힐까봐 더욱 더 긴장이 되었다. 위험하니 카트를 몰고 가는 엄마 뒤에 따라오라고 신신당부해도 어느새 옆으로 따라 붙어 꼭 부딪힐 것 같았다. 

  그날따라 큰 아이가 다섯 살이나 할 법한 “내가, 내가!”를 외치며 카트를 몰겠다고 했다. 싸우기도 귀찮고 아이가 카트에 신경쓰면 어쩌면 더 안전할 것도 같아 카트를 내 주었다. 내가 앞장서고 아이들이 카트를 밀며 따라왔다. 하지만 둘이서 계속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주의가 산만해 다른 사람과 부딪힐 것 같은 상황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 내 발뒤꿈치에 카트가 살짝 부딪혔다. 다른 사람에게 부딪히지 마라고 다시 주의를 줬다. 이내 주의도 소용없이 다시 내 발뒤꿈치를 강타했다. 이번엔 정말 아팠다. 이상하게 칼에 베인 것 같이 아프고 피가 왈칵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몰랐다. 결국 피부는 벗겨졌고 피멍이 금방 들었다. 잠시 동안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파 한참을 서 있었다. 순간 머리를 꽝 쥐어박고 싶은 욕구도 울컥 올라왔다. 아동 폭력에 엄한 하와이에서 아이를 때렸다가는 잡혀갈 수 있으니 꾹 참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벌써 몇 번을 때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미안하다며 울고 있었지만 나야 말로 다섯 살처럼 눈물이 찍 났다.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고 싶었던 소중한 첫 방학이었다. 내가 학교만 다니지 않았으면 매일 웃으며 행복 했을 텐데, 여기서 서로 고생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율성을 준답시고 제 멋대로 키운 아이들은 눈치가 없고 자꾸 힘들게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간 참아 왔던 아이들에 대한 불만이 빅아일랜드 화산처럼 분출하기 시작했고, 이내 나에 대한 불만으로, 마지막에는 허무함으로 바뀌었다. 손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엄습했다. 바보같이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좋은 엄마로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무리하게 추진했던 하와이 생활이 생각과는 달리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영어라는 무기 하나만이라도 쥐어 주고 싶다는 순수한 엄마의 생각은, 현실에 치여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내 주제에 무슨 해외 살이라며.

  처음 하와이에 왔을 때 한국에서 못 해주었던 엄마 노릇을 충분히 해주며, 여유롭게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내 말을 새겨듣지 않고 제멋대로 굴고 결국 발이 다치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영어 공부와 EBS 강의를 허용해 주었더니 컴퓨터도 유튜브도 몰래 보곤 했고 글쓰기용으로 허용해주었던 블로그로 하릴없이 이웃 숫자에 연연하며 또래 친구나 사귀고 있었다. 나는 알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었다.     

  하와이의 자연과는 점점 멀어졌고 그 따위 것들을 하려면 하와이에 와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나 역시 영어 공부는커녕 못하는 살림에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허덕이고 있었다. 결국 한국에서도 하와이에서도 나는 못난 엄마일 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싫어졌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들이 야속했고 장난치거나 싸우는 소리가 지긋지긋해졌다. 좋은 엄마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망치고 있었다. 기분은 끝없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고 있었다. 심각한 위기였다. 


  정말 모든 걸 접고 되돌아가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하와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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