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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21. 2020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쉬는 맥컬리 모일릴리 도서관

하와이에서 도서관 이용하기

  아름다운 하프의 선율. 내 가슴을 울리고 내 눈을 적셨다. 

  대공연장의 콘서트가 아니었다. 동네 작은 도서관 내 자그마한 교실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서.     

  하와이에 오고 싶었던 결정적 이유 2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도서관과 바다였다. 


  한국에서도 도서관과 바다에서 만큼은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도 않았고 서로 다투지 않았다. 각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함께 잘 놀았다. 그 곳은 나도 쉬고 아이들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와이는 더운 나라인 만큼 바닷가에서 놀다가 너무 더울 때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플랜으로 하와이를 결정했다.     

  한국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괜찮은 아이들 영어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쉽고 유명한 책은 대출해 가서 없거나 찾더라도 이미 많이 봐서 너덜너덜 헤져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대부분의 책은 영어 공부용으로 만들어 진 책이라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웠다. 적당한 수준의 책이 단계별로 갖추어져 있기 어려웠다. 하와이 도서관에 가면 실제 현지인들이 읽는 영어책을 우리 아이들이 직접 골라 마음껏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하와이에서 집을 구하고 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바로 맥컬리 모일릴리 도서관(McCully-Moiliili Public Library)이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2, 3분 거리에 있는 작고 아늑한 도서관이었다. 집을 구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안되는 영어로 가족 수만큼 대출증을 만들었다. 깜짝 놀랄만한 일은 대출 권수의 제한이 없었던 점! 방학이면 주말마다 인당 4-5권이 대출되는 대출증 4장을 가지고 대전 시내와 세종시의 여러 군데 도서관을 각각 방문해서 몇 십권씩 빌렸는데 무제한이라니! 아이들도 나도 욕심껏 한아름 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하지만 마냥 책을 많이 빌릴 수 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무작정  빌렸다가 다 반납한 줄 알았는데 연체 되서 매일 25센트씩 연체일수만큼의 벌금을 낸 적도 있었다. 쉽게 빌려주지만 책임은 내가 져야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무한대출은 우리에게 천국과 같은 시스템이었다.      

  도서관 1층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용 책과 DVD가 한가득 있었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물론 마련되어 있었다. 아기들이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아기들이 떠든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국립 세종도서관 지하에 있는 어린이 열람실의 소음이 윗층까지 올라와 시끄럽다는 항의 민원이 들어온다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마음 졸였던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도서관 2층에 가면 사무실과 컴퓨터 이용 장소, 그리고 일반인용 책과 DVD가 있는데 맥컬리 도서관은 다른 도서관과 다른 것이 있었다. 바로 하와이 한인들을 위해 설립된 한국도서재단에서 하와이주 공공도서관과 제휴해 한국책 전문 도서관으로 운영되는 곳이 바로 이 도서관이었다.(지금은 한국도서는 카파훌로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장애인도서관으로 옮기는 중이다) 우리는 전혀 모르고 갔는데 2층에 한국인 사서 2분도 상주하고 계셨다. 한국 사서분을 통하면 훨씬 더 쉽게 대출증을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한국도서재단 사이트 (klfhawaii.org)에 접속하면 한글로 도서 검색도 가능하며, 교보문고와 연계된 전자책까지 빌려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 DVD까지 대출이 되니 한국이 그리운 한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충분한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비록 영어 때문에 간 하와이였지만 한국책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괜히 마음이 잡히지 않고 싱숭생숭 심란한 날에는 한국책을 잔뜩 빌려와 하루 종일 읽곤 했다. 아이들 만화책도 흥미 위주만 아니면 허용해 주었다. 한국이 그리운 날에 언제든지 가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안식처였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커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매주 토요일에 유아들을 위해 한국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국말로 이쁜 동화책 읽어 주는 소리만으로도 정겹고 행복했다.     

  도서관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무료 행사도 종종 개최하곤 했는데 우리가 좋아했던 시간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상영하는 무료 영화 시간이었다. 조금 철지난 영화들이긴 했지만 다시 봐도 좋을 영화들을 상영했다.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영어 자막도 함께 보여줘서 충분히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어라는 장벽 때문에 영화관 조차 맘 편히 즐길 수 없었는데 도서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영화와 그곳에서 공짜로 주는 팝콘과 음료수도 소소한 행복이었다.      

  하와이 여름 방학은 2달 이상이나 되었는데 그 긴긴 여름 방학이 그래도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도서관에 자주 갔기 때문이었다. 하와이주에서는 매 여름마다 섬머 리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우리가 있던 해의 주제는 우주였다(A Universe of Stories). 이 시기에는 매달 한번 보여주던 영화도 더 자주 보여주었고 하프 콘서트, 레고 만들기 등 더 많은 행사가 진행되었다. 온라인으로 읽기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는데 프로그램 등록만 해도 맥도날드 무료 쿠폰을 선물로 받아 아이스크림콘을 즐기기도 했다. 

  프로그램 중 유난히 감동적이었던 행사는 하프 콘서트였다. 하와이에서는 아무래도 훌라 음악을 많이 듣게 마련인데 한국에서도 잘 들을 수 없는 하프소리를, 그것도 세 대가 동시에 내 코 앞에서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전율은 충분히 눈물샘을 자극했다. 클래식 위주가 아닌, 우리도 평소에 많이 들어 본 Fly me to the Moon, Moon River, 라라랜드의 테마송 등이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와 어우러져 울려 퍼질 때는 음악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황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섬머 프로그램이 아니었어도 영어 듣기 실력도 늘일 겸 매일 1달러에 DVD를 빌려 오는 소소한 재미도 여름나기의 한 방법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먹으며 시원한 마루바닥에 누워 영어 자막을 띄워 놓고 DVD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편안한 즐거움이 또 없었다.

  한국보다 시설이 더 좋지도 않고 시스템이 더 우수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1년 살이 이방인에게도 가감없이 기꺼이 내주는 공간은 큰 즐거움과 안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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