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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21. 2020

엄마는 요리사

하와이에서 요리하기

  탕수육, 짬뽕, 짜장면, 치즈불닭, 허니버터 치킨, 매운 돈가스, 꽈배기 도넛...

  배달 음식 메뉴가 아니다. 누가 봐도 손 많이 가고 어렵게 보이는 이 메뉴, 꼭 사 먹어야만 될 것 같은 이 메뉴를 하와이에서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 하와이에 와서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민박집에 주방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라면이나 3분 요리 같은 인스턴트나 겨우 해 먹을 수 정도였지 제대로 음식을 해 먹을 수 없었다. 아니, 해 먹을 정신이 없었다. 집을 구하고 나서 뭔가 해먹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참 고마웠다. 


 하와이에 여행으로 왔을 때는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마라사다 도넛, 스팸 무스비, 아보카도 햄버거, 랍스터, 스테이크, 로코모코 등등. 하루에 세 끼 밖에 못 먹는 인간 소화 능력의 한계가 무척 안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하와이에 정착하며 생존을 위해 먹는 음식의 질과 만족도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가격이 우선이었고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이어야 했다. 아무리 선별해서 간 식당도 아이들은 여간해서는 맛있게 먹지 않았고 방금 밥 먹고 나왔는데 배가 고프다고 해서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빵, 치킨, 피자, 햄버거라도 좋아해 주면 좋겠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라면과 김치만 먹고 싶어 했다.      

  다행히 집을 빨리 구하게 되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짐들을 풀자 먹는 것도 풍요로워졌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온갖 양념으로 찬장을 채우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비록 신랑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아 마음 편하게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은  해주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신랑이 하와이 있는 동안 코스트코에서 사 온 소고기로 스테이크를 해주겠다며 솜씨를 뽐냈지만 아이들은 금방 질려서 잘 안 먹었다. 아이들은 오직 한국음식이 필요했다.


  신랑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아이들과 나는 한국 음식이 더더욱 그리워졌다. 매일 아이들과 한국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에서 먹던 매운 족발이 정말 먹고 싶어!”

  “엄마, 나는 우리 동네 ○○○에서 먹었던 삼겹살이랑 김치볶음밥!”

  “엄마, 나는 ○○○짬뽕!”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먹을 기세였다.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그래도 한 번씩은 상상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인마트에서 족발을 사 먹고, 냉동으로 얇게 썰어진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고, 인스턴트 짬뽕 라면을 끓여 먹어도 봤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사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분식집 같은 곳을 한번 쓱 둘러본 적이 있다. 가격을 확인한 후 얼른 마음을 접었지만 말이다. 칼국수가 만원 가까이 하니 선뜻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건비 비싼 하와이에서 어쩌면 당연한 가격이었을 테다. 하지만 한국의 가격을 알기에 아무래도 너무 비싼 가격이라 신랑은 행여나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떼를 쓸까 봐 한국 식당 쪽은 일부러 둘러가곤 했다.

   ‘그 가격이면 아이들 고기 먹이지.’ 

  그런데 점점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으니 가격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하와이 정착 2달째 미친 듯이 한국 음식이 그리워져 주말이 되면 한국 음식점 한 군데씩 아이들과 투어 하기로 했다. 부푼 기대를 하고서. 주변에 물어보고 인터넷 검색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 다음에는 분식집, 고깃집, 핫도그 집까지! 

  다 맛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같은 집을 두 번씩 가고 싶을 만큼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국에 그 많은 중국집과 분식집 등이 있지만 그중에 내 입 맛에 딱 맞는 집은 몇 군데 없듯이, 먼 이국땅 하와이에 몇 군데 없는 한식당이 당연히 그 맛을 내 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필요했던 것은 맛보다도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한국의 분위기였는지 모른다. 무뚝뚝한 식당 아줌마라 하더라도 그냥 딱 내 정서와 똑같은 한국인이 멀리 하와이에도 있다는 안도감이 필요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에서도, 하와이 총영사관에서도 느꼈던 그 느낌. 한국말을 하고 겉모습은 한국인은 틀림없는데 내가 무수히 봐 왔던 한국에 있는 딱 그 한국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 혼자 느껴지는 서운함과 이질감. 그것이 달래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향수병에 걸렸을지도 몰랐다.     


  결국 떡국만 끓여줘도 “엄마가 해 준 밥이 제일 맛있어.”라고 하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 10년이 넘었지만 먹는 것만 좋아하지 요리는 취미도 별로 없고 반찬가게 아줌마가 너무 고마운 엄마지만, 하와이 음식 값은 너무 비쌌고 그래도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익숙해서 잘 먹으니 잘하지도 못하는 음식을 집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안 그래도 손이 느린데 한국보다 좁은 부엌에서 음식을 하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조금만 벌려 놓아도 싱크대가 가득 찼다. 

  고기 맛도 어딘지 모르게 차이가 났다. 한국 고기보다 조금 더 비린 맛이 났다. 그 흔한 계란조차 그랬다. 채소는 싱싱했지만 익숙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집주인이 한국인이라 큰 냉장고, 3구 전기레인지,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제품이 잘 되어 있어 요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초기 하와이 식생활에 한 줄기 빛이 보였으니, 바로 유명 유튜버 망치(Mangchi) 아줌마였다. 지금은 백종원님 덕분에 더 풍요로워 졌지만 그 때만 해도 할 줄 아는 음식이 몇 개 없는데다 식재료 구입부터 어디서 해야 될지 몰랐던 시절이라,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다양한 한국음식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분을 찾아내서 참 기뻤다. 

  10년 이상의 경력, 한국 요리책도 내셨다. 영어로 이야기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발음이라 알아듣기도 편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통통 튀는 패션에 요리를 쉽게 뚝딱 해 내고 요리하는 과정을 정말 즐기는 분이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이 요리를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했다. 웬만한 한식 메뉴는 모두 있었다. 족발까지! 미국에서 이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동지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저녁 요리에 관심이 많은 둘째 아이와 유튜브를 보고 함께 메뉴를 고르고  요리를 했다. 부엌은 엉망이 되고 할 일은 더 많아졌지만 그때부터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가 컸다. 신랑이 사진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 한국에서 늘 반 친구들보다 키가 작아서 걱정이었던 큰 아이는 한 달 새 내 발 크기를 앞질렀고 결국 1년 동안 키도 나보다 커 버렸다. 10여 년 만에 아이들이 눈에 띄게 크는 모습을 보니 더 엄마다운 일을 해 준 것 같아 흐뭇했다. 처음에는 고장 낼까 봐 겁나서 시도조차 안 해 봤던 큰 식기세척기에 모든 설거지 거리를 몽땅 넣어 버리니 설거지도 걱정이 없어지면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더 늘어났다. 엄마라면 당연했던 일들이 늘 부족해 미안하고 힘들었던 나에게 한 단계 성장하는 힘을 주었다. 바로 엄마가 해주는 집밥의 힘인가 보다. 아무리 하와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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