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빡세게 공부하기
때로 아름다운 하와이를 둘러보며 한탄하곤 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정말 적절한 이 노래 가사는 누가 만든 거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까.
부러웠다, 아이들만 공부시켜도 되는 여유로운 한국 엄마들이.
부러웠다, 공부만 해도 되는 어린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여행만 해도 되는 여행객들이.
부러웠다, 한 달만 살면서 좋은 곳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한달살이 여행자들이.
부러웠다, 쉬운 사설 유학원에서 쉽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들과 하와이 일 년 살기를 하는데 정작 하와이는 신기루만 같았다.
직장에서는 공식 교육기관에서만 수학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공짜 휴직은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였음을 전혀 몰랐다. 처음 대학 부설 어학원 과정을 보고 속으로 신이 났다.
"8시 30분에 시작해서 하루 4시간만 들으면 된다고? 이런 황금 시간이 다 있나!"
8시까지 아이들 등교시키고 8시 30분부터 수업 시작, 12시 20분에 마쳐서 아이들 마치는 2시 15분까지 자유시간, 그리고 아이들 마치면 바다에서 놀면 되겠구나, 알고 보니 아주 순진한 생각에 불과했다.
아직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어학원 수업 첫날, 세상에 4시간이 그렇게 길고 힘든 시간일 수 있구나 몸소 체험했다. 선생님들이 말하는 10퍼센트도 알아듣지 못했다. 4시간을 용을 쓰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덜거렸다. 온몸의 진이 쫘악 빠져나가는 느낌. 내 머릿속 뇌도 지진 중이었다. 이렇게 첫 학기 10주를 버텨내야 하다니.
4시간만 집중하면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숙제와 시험의 연속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시험이었고 숙제를 읽고 해석하고 써내는 데 하루 꼬박해도 모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25여 년이 지나 영어를 접하니 그럴만했다. 같이 공부하는 대학생 친구들은 읽고 이해도 빨랐다. 쫓아가기만 해도 벅찼다. 프레젠테이션 시험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외울 수도 없었고 안 외울 수도 없었다. 페이퍼 없이 해야 된다고 하니 기가 찼다. 너무너무 빡센 하루하루였다. 내가 생각하던 그 유학길이 전혀 아니었다. 남의 나라 유학이 원래 고행이라는 사실을 그저 로망으로 생각하고 틀림없이 오해했다. 모든 유학생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아이들과 좋은 시간은커녕 하루 종일 숙제하다 말고 아이들 밥 챙겨주고 설거지하고 다시 공부하고 자고 일어나 새벽에 다시 공부하는 일상이었다. 조금 못하고 여유 있게 해도 되었을 텐데 못하기는 싫어서 아득빠득 해내려고 애를 썼다. 나이 많은 아줌마에게 남은 장점은 그저 성실함 밖에 없었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일주일 내내 몸 안의 모든 에너지를 다 빨려 놓고 금요일 저녁에 아이들과 알라모아나 쇼핑센터에 가서 맛난 저녁 먹고 집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하와이 코나 맥주 한잔, 주말에 와이키키 비치 한 바퀴 돌면서 바다에 발 담그고 흘러나오는 나른한 음악 들으면 또 이런 낙원이 없구나 싶었다. 어쩌면, 매일 만나면 금방 지루할 뻔했던 하와이를 아주 아껴서 조금씩 즐기라고 배려해 주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와이에 살고 있어도 여행객들보다 정보도 없고 많이 다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억울했지만, 여전히 공부에, 아이들에 못 견뎌 집을 확 나서면 10분도 걸리지 않아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는 바다가 있어 참 행복했다. 스트레스도 금방 날아갔다. 고작 일 년 살 수 있었기에 여기서 평생 사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음을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