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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22. 2020

전쟁같은 등교시간

아이들 등교 습관 길들이기

  하와이 초등, 중등학교는 한국보다 깨나 이른 8시부터 시작된다. 수업 전 10분 전에는 도착해야 되니 7시 50분까지 도착해야 되었다. 학교에 가깝게 살고 있던 우리였지만 참 적응하기 어려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도 하와이 선생님들에게 시간을 잘 지키는 아이로 보이고 싶어서 아이들을 다그쳤다. 때문에 전쟁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다. 엄마가 긴장하면 아이들도 덩달아 그런 법이니까.


  가장 좋은 플랜은 7시 전에 일어나 7시에는 밥을 먹고 7시 30분에 집에서 출발, 걸어서 7시 40분에 학교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 아침밥을 꼭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밥을 했다. 

  늦기 싫어하는 첫째는 스스로 잘 일어났지만, 둘째는 다섯 번 정도 깨울 때까지 못 일어났다. 첫째는 알아서 척척 밥 먹고 씻고 책 읽고 기다리는데, 둘째는 일어나서도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밥 먹다 옷을 입다 책도 보고 도무지 급한 구석이 없었다. 언니와 엄마가 몇 시라고 계속 알려주는데도 신경쓰지 않았다. 연이어 경고를 주지만 속도는 나아지지 않고, 결국 첫째가 신발까지 신고 문 앞에서 늦었다고 짜증을 내면 이제 이를 닦고 양말을 신고 가방을 찾았다. 그러면 꼭 다툼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면 더 늦어져서 가까운 거리인데도 급히 차로 데려다 주게 되었다. 매일 아침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은데 매일 아침 등굣길부터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지각하는 것도 아닌데 애를 쓰며 아이를 깨우고 있고 그 노력은 허무했으며, 늦었다고 첫째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억울했다. 둘째가 내 말을 흘려듣고 있다는 생각에 화도 났다. 아무리 늦어도 기다려 주니 그런 모양이었다. 더 이상 타협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출발하기 싫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침에 엄포를 놓았다.

  “내일은 각자 알아서 일어나라. 엄마는 7시 30분에 무조건 집에서 출발한다. 만약 준비를 못했으면 엄마는 기다려주지 않고 나갈거야.”     

  그 날 새로 사귄 친구와 해변에서 늦도록 놀아서 아침에 힘들겠구나 생각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7시야, 어제 말했지만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안 깨울꺼야. 7시 30분에는 집에서 나간다.”

  큰 아이는 이미 일어나 있었고 둘째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큰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 준비를 했다. 작은 아이는 눈은 떴지만 다시 잠들었다. 큰 아이가 깨우겠다고 했지만 싸우는 소리가 싫어서 안된다고 했다. 결국 작은 아이는 7시 15분에 일어나 천천히 밥을 먹고 눈치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참 느긋했다. 분명히 30분에 나간다고 했는데,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큰 아이와 내가 계속 시간을 알려주었고, 29분에 신발을 신고 있는데도 아직 밥을 씹고 있었다. 딱 30분이 되어 큰 아이와 나가 버렸다. 그제서야 “엄마!”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래도 나가버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민스러워 큰 아이에게 물었다.

  “영원이 어떻게 하지?”

  “나는 지금 갈거야. 가자.”

  “엄마가 학교에 걸어갔다 오면 50분인데 그 때까지 영원이 괜찮을까?”

  “(화를 내며)엄마는 왜 약속을 안 지켜?”

  졸지에 약속을 안 지키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면서 화도 났다.

  “너는 동생이 울면서 집에 혼자 있는데 갈 마음이 생기니? 집에 올라갔다 올 테니까 로비에서 잠시만 기다려.”

  집에 가보니 가방을 메고 밥을 입에 물고 울고 있었다. 아빠에게 전화까지 한 모양이었다.

  “빨리 이 닦고 내려와.”

  결국 차를 타고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첫째를 먼저 내리게 하고 둘째를 달랠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엄마가 다시 오니 고마웠지? 엄마는 니가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걱정되서 올라왔다고 하면 되는데, 네가 잘못했고 언니와 엄마는 기다려줬다며 고마움을 강요했다. 당연히 “고마워.”라고 할 수 없었을 터였다.

  “나는 바퀴벌레 나올까봐 먹다 남은 음식도 냉장고에 넣어뒀다구. 나 혼자 갈걸 그랬어.”

  고만 수긍하면 좋을텐데 자꾸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생각에 또 화가 났다. 혼자 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여기는 신호등 없는 차도를 몇 개나 건너야 하고 반드시 부모가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하는데.      

  집에 돌아왔어도 내내 기분이 언짢다.

  ‘한국 같았으면 두고 가버렸을텐데!’

  다시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나는 밥만 챙겨 놓고 직장으로 간 뒤였고, 큰 아이는 작은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나갔고, 작은 아이는 자구책으로 같은 라인에 사는 친구와 만나서 학교를 갔었다. 그제서야 엄마없이 아이들 각자 시간에 맞춰 등교를 잘 해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니 모두 함께 나가야했기 때문에 불편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큰 아이는 약속을 잘 지켰지만 동생을 생각해 주지 않은 언니가 되어 속상했고, 작은 아이도  최선을 다했는데 늦었다고 혼이 났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약속을 안 지킨다고 화를 냈고, 지나고 나니 아이들 마음이 이해되어 미안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또 "엄마~"하며 반색하며 뛰어 오겠지. 그러면 나는 다시 미안했다고 안아주면 되겠지. 

 

  깨달음은 꼭 늦게 오나니. 육아는 참으로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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