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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21. 2020

하와이 시골 촌놈, 대도시 LA 방문기

눈감으면 코 베어갈 것 같은 LA 여행기

  LA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하와이로 다시 가면 안 돼?”

  기대가 컸던 여행이었지만 내 생애 가장 힘든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시작은 늘 그렇듯이 작은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놀이동산에 무슨 한이 맺혔는지 항상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 아이들보다 내가 더 들떴다. 하와이에서 첫 본토 여행은 두말할 것 없이 디즈니랜드가 있는 LA였다. 마침 어학원 방학과 아이들 봄방학이 겹쳤으니 절호의 찬스였다. 디즈니가 목적이어서 비행기와 숙소만 정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첫째 날 디즈니 파크, 둘째 날 디즈니 어드벤처, 셋째 날 유니 셜 스튜디오, 넷째 날 할리우드, 북창동 순두부로 점심, 그리피스 천문대 가기. 딱 떨어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어학원 일정에 쫓겨 밤 늦은 시간 비몽사몽하며 비행기 표를 끊은 뒤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디즈니에 개장시간부터 가서 미친 듯이 놀 계획이었으므로 전날 오후 미리 도착해서 호텔 주변이나 쉬엄쉬엄 다닐 생각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도 여유롭게 LA를 둘러보다 저녁에 나오면 되겠다 생각하며 끊은 비행기 표였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도 한참 시간이 흘러, 겨우 호텔을 예약하려고 일정을 다시 확인해 보고 기절할 뻔했다. 시간을 착각해 완전히 반대로 새벽 도착, 아침 출발로 끊었던 것이다. 꼬박 하루 일정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가장 싼 비행기표를 끊어서 변경 수수료가 너무 커서 바꿀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완벽하게 빡빡한 일정이 될 예정이었다. 여행 계획 세우기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나는 그저 방전된 건전지 같기만 했다.       


  고난의 어학원 10주가 끝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방학이 시작되었는데도 손가락 까딱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여행 책 읽기도 너무 귀찮아 미루고 미루다 정신 차려보니 당장 다음날에 출발이었다. 처음 가는 미국 본토 여행인데 갑자기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당장 하와이에서도 공항까지 어떻게 갈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 정말 괜찮을까?’


  공항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버스를 탈까, 편안하게 택시를 탈까. 버스비 5.25달러와 택시비 35달러. 사소하지만 결정하기 어려워 하루 종일 고민한 뒤 택시를 선택했고, 이제 더 이상 그런 고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돈은 다른 데서 아끼자! 즐거운 여행을 하자! 이제 돈보다 효율이다!’     


  처음부터 어긋난 비행기 일정, 미리 알아보지 못한 탓에 당연히 달려 있는 줄 알았던 모니터가 없고 미리 항공사 어플을 다운받았어야 했는데 멍하니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아이들에게 유료 이용이라 거짓말하기, 디즈니에서는 찢어진 우비 입고 비 맞고 돌아다니기, 지도 잘못 보고 갔던 곳 또 가기, 가장 아끼던 우산과 아이 패딩 점퍼 잃어버리고 안 되는 영어로 ‘Lost and Found’에 접수하기, 가장 인기 있다는 놀이기구가 타고 보니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임을 알고 나도 울면서 아이들에게 두드려 맞기, 화장실 없는 인기 어트렉션 2시간 반 기다리면서 터질 듯한 오줌보 참기, 프린트 해 놓은 쿠폰을 안 가져와서 식당에서 당황하기, 호텔 셔틀버스 타는 곳에서 눈 뜨고도 내 버스 못 찾고 1시간 기다리기, 할리우드 거리 무서워서 우는 둘째 때문에 1시간도 안돼서 헐레벌떡 빠져나오기, 그리피스 천문대 스카이 쇼 보면서 잠들기 등등. 지금 생각해도 체력과 멘털이 너덜너덜해졌던 여행이었다. 서울에 가면 눈감아도 코 베어간다고 들었는데 하와이 사는 촌놈들의 정신까지 탈탈 털어갔던 LA 여행이었다.       


  그래도 다시 웃음이 나는 이유는 항상 활짝 웃고 있는 우리들의 사진을 보며 새록새록 떠오르는 좋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자기 전 호로록 들이켰던 컵라면, 내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며 칭찬해주고, 할리우드에선 모두 영화의 단역 배우여서 신기했던, 친절하고 유쾌했던 우버, 리프트 기사님들, 미친 듯이 어지르고 나간 호텔방이 돌아왔을 때 마법처럼 깨끗하게 치워졌을 때의 행복. 무엇보다 일정을 위해 앞만 보고 가야 할 때는 서로 다투고 투덜대고 힘들게 했던 그녀들이었지만 잠시 멈춰 눈을 마주 보고 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한 애정의 하트를 뿅뿅 날리며 미소 지으며 나를 행복하게 했던 두 딸들 때문이다. 경악했던 것은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도 좋았던 기억만 이야기 하는 그녀들이었다. 

  복잡한 디즈니랜드 속에서 잠시 쉬며 맥주 한잔, 치킨과 커다란 칠면조 다리를 뜯으면서 웃었던 기억, 하드락 카페에서 현지인들처럼 음악에 들썩이며 신나게 떠들고 마시며 이야기하기, 유명한 인 앤 아웃 버거에서 산 바삭한 감자튀김에 감동하기, 마지막으로 새벽에 비행기 타러 가야 하는데 늦게 깨서 10분 만에 일사불란하게 모든 짐을 함께 싸던 그녀들. 이제 제법 여행할 만큼 컸나 보다 느껴지던 순간들. 

    

  철저하게 돈 낸만큼 서비스도 분화되어 있던 미국의 대도시 LA.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은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우리는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시설을 갖춘 호텔과 식당 등 생각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그 정도 수준의 시설을 이용하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가격이 바로 서비스와 친절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디즈니에서도 티켓 외 맥스 패스를 구매하면 따로 스마트폰에서 예약을 해서 기다리는 절차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도 비슷한 추가 티켓이 있었는데 살 수 없을 만큼 너무 비싸 못 샀더니 매번 1-2시간 줄을 서게 되었다. 시간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나라 미국.

  또 하나 신기했던 점은, 아주 어린 아기라 하더라도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울고 짜증 내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이 함께 놀이를 하며 즐겁게 기다렸다. 우리나라 놀이동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울고 떼쓰는 아이라든가 온 가족이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돈을 지불할 수 없으면 당연히 기다려야 하고 기다림이 길어지더라도 묵묵히 즐겁게 기다린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


  무엇이 더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행의 묘미는 그런 차이를 눈치채는데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심 힘들면 투덜대고 짜증부터 내는 우리 아이들도 저런 점을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은근 슬쩍 보여주었다. 나도 버럭 화부터 내곤 했는데 단호하지만 늘 사랑스런 눈길로 자식들과 눈 마주치는 그들의 모습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LA여행이었다.        


  준비를 많이 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여행이었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우이섬이 보일 때 정말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역시 하와이 우리 집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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