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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Aug 19. 2021

아이들은 각자 다른 시간과 다른 방식으로 자란다

하와이 중학교 오리엔테이션

  우리 아이가 벌써 중학생?     

  ‘Dear Families’로 시작하는 한 장의 엽서가 우편함에 배달되었다. 주황색 물고기와 산호가 그려져 있는 사랑스런 하와이 우표가 우리를 반기는 듯 했다. 큰 아이가 진학할 중학교에서 보낸 등록 안내 엽서였다. 앙증맞은 그림으로 등록할 내용도 한 눈에 이해하도록 설명되어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다니.     

  학교 등록절차는 오전에 진행되었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오후 5시 30분부터 7시까지였다. 일하는 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요기가 가능하도록 피자와 쿠키, 스낵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싸, 오늘 저녁은 패스!’

  어쩌면 나는 오리엔테이션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앞에서는 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께서 열심히 이야기 하셨다. 어학원 리스닝 시간에 이제 어느 정도 들린다고 생각은 착각이었다. 아무리 귀를 쫑긋하고 들어봐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져 흐리멍텅하게 들렸다고 위로해 보더라도 실생활 영어는 아직 많이 어려웠다. 머리는 멍하고 어깨는 뭉치고 어학원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듯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온몸을 비틀고 있던 나에게 심장을 강타한 감동을 준 일이 있었으니 아리따운 한 여자 선생님께서 한 강의 때문이었다.     

  처음 선생님이 강의를 한다기에 딱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도 없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된 후 행사에 참석하게 되면 평소 관심도 없던 주제를 일방적으로 교육 시키곤 했다. 아까운 시간을 내서 참석하지만 학교측에서 의무적으로 배당된 부모교육 시간을 채우기 위해 또는 증거 사진을 위해 부모들을 동원시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내용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지루한 표정의 부모 상대로 말하는 강사도, 재미없는데 호응해줘야 하는 부모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시큰둥한 얼굴로 앉아 있던 내게 던져 진 강의 주제는 ‘청소년기 동안 집에서 당신의 자녀를 돕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들어보니 강의라기보다 선생님과 부모들의 공통 관심사, 사춘기 우리 아이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성장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이니 믿고 따라오라고 당부했다. 카더라 통신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각개 전투 우리네 교육관과 많이 달랐다.      

  첫 문장부터 마음을 울렸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시간과 다른 방식으로 자란다.’

  다름에 대한 이해. 이것이 기본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키가 조금만 작아도, 한글 읽기가 조금만 늦어도 안달복달 고민하는 우리네와 많이 다르다. 어릴 때 창의 교육 어쩌고 하던 부모들도 빠르게는 초등 입학 후 늦어도 초등 고학년에는 일정 틀에서 벗어날까봐 전전긍긍한다.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낙오자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분명 가르치기에 힘든 시기이다. 그들은 어떤 것도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집불통이고 그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부모와 선생님이 자기들을 기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기대를 놓지 말라.”     

  “부모님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아이의 선생님과 상담자,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으세요.”     

  “그들은 하루는 불쑥 성장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아기가 된다. 종종 걷는 방법도 잊어버린다, 아기처럼 우는 방법도 기억해낸다. 그들은 사춘기를 싫어하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어한다. 그들은 어렵다. 사랑하기 어렵고 가르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꼭 기억해라, 하나가 되어라.”     

  “아이의 신발에 부모를 맞춰라.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해라. 말하기보다 들어라. 실수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항상 쉽지만은 않다고 가르쳐라. 권리와 의무는 공존한다고 가르쳐라. 아이가 보는 것, 읽는 것에 관심을 가져라. 아이와 질적인 시간을 가져라. 독립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라. 아이들의 사춘기를 즐겨라. 그 시간은 곧 지나간다.”      

  “아이들은 더 많은 음식과 휴식, 잠이 필요하다. 많이 자게 하라, 좋은 아침 먹이기, 오버 스케쥴 하지 마라, 티비와 게임으로부터 보호. 운동할 수 있도록 하자. 이유 있는 선택은 허락하자. 자주 대화하자.”      

  나에게는 충격적인 강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은 싫고 돈만 요구한다는 편견, 아이들이 얼마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지, 대학 입시를 위해 중학교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부모나 사회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일 뿐이었다. 철저하게 아이 중심,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국과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어쩌면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만 아이의 성공을 위해 무시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알려주었다. 

  영어유치원으로 시작해, 1학년 줄넘기부터 학원으로 내모는 엄마들, 아이의 자신감을 위한다지만 아이의 실패가 본인의 문제 때문이라는 불안함의 틈바구니. 나만이 그것은 아니라고 외치며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뒤쳐짐의 쓰라림을 주었던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기꺼이 말해주는 사이다 같았던 강의였다.     

  내 사춘기 시절도 돌이켜 보면, 우리 부모 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 오토바이 타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춤이나 추고 집까지 나가는 질 나쁜 친구들일 수 있었던 내 친구들의 진짜 모습은, 당시의 나의 눈으로 봤을 때는 술 취한 아버지의 괴롭힘이 힘들었고 부모가 이혼한 상황이 괴로웠고 혼자 된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 뿐이었다. 그런 친구들 속에서도 나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고 춤도 못 췄으며 모범생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냥 나는 나였다. 그 친구들이 이상하다거나 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일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너무 바빠 무관심하게 보였지만 믿어주었던 부모님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들 모두의 소식을 알지는 못하지만 특별한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지금은 모두가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한 모습은 아니라고 해도 정상적으로 성장했고 부모가 돼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북한에서도 무서워 한다는 중학생, 미국에서는 특히 마약, 성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덜덜 떨었던 내게 청소년기의 중요한 의미를 알려 주었던 오리엔테이션. 

  공부가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보내기, 우리 아이의 힘을 믿기, 그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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