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제활동을 배우는 초등학교 마켓 데이

학교에서 창의력과 경제 개념 배우기

by 만석맘 지은

둘째 아이는 한 달 전부터 마켓 데이를 준비했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회사의 ‘CEO’가 되어 직접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은 무엇일까? 어떤 자리가 가장 유리할까?’

마켓 데이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부모가 도와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이모지 머니(마켓 데이 화폐)로 지불해야 했다. 또한,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 아이들도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제 활동에 참여했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켓에 기여하며 경제 활동을 체험했다.


작은 CEO의 창의적인 도전


우리 아이는 방탄소년단(BTS) 캐릭터 책갈피를 만들기로 했다. 직접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고, 집에 있는 책갈피 크기를 참고해 디자인했다. 컬러 프린터로 그림을 출력한 후 코팅지로 마감해 깔끔하게 완성했다. 제작 과정과 아이디어는 모두 아이의 의견이었고, 나는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이었다. 물론, 도움의 대가로 20불을 받았다. 우리 아이는 철저한 비용 절감형 CEO였다. 가족 경영이라고 후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 하와이 최저 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보수였지만,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웃음이 났다.


모두 다 같이


마켓 데이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주방 스태프, 청소 담당자까지 모두 이모지 머니를 들고 행사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장사를 펼쳤고, 학부모들도 함께했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아이들도 기회는 있었다. 그들은 친구를 도와 종업원이 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제 활동에 동참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체험했다.

나는 마수걸이를 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물건을 사려고 둘러보았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50불이 넘는 상품도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경제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가격이 비싸면 팔리지 않는다는 시장 원리를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을 나누는 거래


우리 아이도 책갈피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에게 다가가더니 책갈피 하나를 샀다. 그 아이는 반에서 가장 인기 없는 친구였고, 30분 넘게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고 말했다.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진심 어린 구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치원 동생들이 몰려와 그 친구의 물건을 사 갔다. 덕분에 그 친구도 자존감을 되찾았고, 나는 우리 아이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대견했다.


사업 감각이 빛나는 순간


우리 아이도 처음에는 책갈피가 팔릴까 걱정했지만, 방탄소년단의 인기 덕분인지 50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같은 반 친구는 동생까지 데리고 네 번이나 찾아왔다. 단골손님이 많아지자, 아이는 할인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는 단호했다.

“아무리 단골손님이라도 그렇게는 안 팔아.”

어린 나이에도 경영 철학이 확고했다.

같은 반 한국인 친구 대니얼은 닌자 표창을 팔았는데, 가격이 70불이었다. 나도 사주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다. 할인해 달라고 했지만 그 아이도 꿈쩍 하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몰려든 고객들 덕에 표창이 한꺼번에 팔렸고, 큰돈을 벌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철저한 사업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경험


행사가 끝날 무렵, 우리 아이는 갑자기 멘붕에 빠졌다. 판매 장부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에게 팔았는지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했다. 나는 대충 적으면 된다고 했지만, 아이는 정직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결국,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제야 안심한 아이는 행사를 무사리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배움이 있는 교육


한국에서는 부모가 학교 행사에 참석하면 늘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로 분주했다. 그래서 마켓 데이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참여해 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제 개념을 익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사회에서 필요한 협상력과 책임감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와이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들은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항상 “틀렸다.”는 말보다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묻고, 정답이 아닐지라도 “재미있는 생각이야”, “좋은 시각이야”라고 격려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마켓 데이에서도 같았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실행했다. 물건을 만들지 못한 아이들도 배제되지 않았다. 친구를 돕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함께했다. 누군가 평가하거나 비교하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참여했다. 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 속에서 자신감을 키워 나갔다.


아이들에게 남은 가치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하와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배려와 존중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실수를 해도 비난하기보다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기회를 얻길 바랐다. 혹시 좌절하더라도 스스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키운다면, 그보다 더 큰 배움은 없을 것이다.

하와이의 교육 환경이 부러웠고, 동시에 내 아이가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와이에서 중학생을 대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