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보다 중요한, 아이를 빛나게 한 학교
아이를 유학 보낸 부모라면 학군을 중요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나도 블로그 이웃들로부터 하와이 학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하와이 사립학교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졸업한 푸나호우 스쿨과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올라니 스쿨이 잘 알려져 있다. 공립학교 중에서는 와이키키, 메이어 존 윌슨, 노엘라니 초등학교, 카이무키와 모아나루아 중학교, 그리고 루즈벨트, 모아나루아, 칼라니 고등학교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학군을 기준으로 선택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일단 집을 먼저 구한 뒤, 그 지역의 학교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등급이 낮고 규모도 작은 학교라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그곳은 숨은 보석 같은 학교였다. 학교의 등급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학교였다.
학교는 겨울 방학 중이었고, 사무실에는 할머니 선생님 한 분만 계셨다. 영어가 서툰 남편과 나는 조심스럽게 등록 문의를 드렸다. 사무실 안쪽에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분 혼자 행정 업무까지 처리하고 계셨다. 그런데도 짜증 한 번 없이 따뜻하고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5학년을 마쳤는데, 생년월일 때문에 여기서는 다시 5학년 2학기를 다녀야 해요. 6학년으로 가려면 중학교로 가야 하는데, 그건 중학교에서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그제야 하와이 초등학교가 5학년까지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갑자기 중학교로 보내기보다는 초등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등록을 결정했다.
“아이들은 반에 한국 친구가 있는 것이 좋을까요?”
선생님은 한국 친구가 있으면 서로 도와줄 수 있다고 조언해 주셨다. 첫째 아이는 한국 친구가 없는 반을 원했고, 둘째는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학 날 반 배정을 알려주신다는 말씀에 마음이 놓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분은 교장 선생님이셨다. 우리가 방문했던 사무실 안쪽 방이 교장실이었다. 권위적인 교장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방학 중에도 홀로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학생과 학부모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에이미 교장 선생님은 모든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셨다. 유치원생부터 장애가 있는 아이들까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도 그런 선생님을 좋아해 늘 주변에 모여들었다. 둘째 아이가 졸업하는 날, 선생님은 퇴직하셨다. 학교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남달랐던 분이었다.
둘째 아이의 담임을 두 번이나 맡아주신 미스 캐펄 선생님도 잊을 수 없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그녀는 늘 밝은 미소로 학생과 학부모를 반겼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한 학생이 온라인 출석을 거의 하지 못하고 숙제를 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아이 부모조차 아이를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이는 유급 위기에 처했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방과 후에도 시간을 내어 공부를 가르치고 숙제를 함께 도와주셨다. 결국 그 아이는 무사히 다음 학년을 올라갔다.
그 아이에게 “거 봐, 너는 할 수 있다니까!”라는 따뜻한 격려를 보냈다. 아이가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당연했다. 내 아이가 이런 선생님의 반이어서 감사했다.
코로나로 인해 선생님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낯선 프로그램을 익히며, 아이들 없는 교실에서 화면을 보며 강의해야 했다. 새 학기 교재를 받으러 갔던 날, 마스크를 낀 선생님의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마스크 뒤에서도 환한 미소가 전해졌다. 친구 엄마는 선생님의 “고생 많으시죠?”라는 한마디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모두가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이 많았다. 컴퓨터 담당 코벡 선생님은 학교뿐 아니라 동네 편의점에서도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체육 선생님인 미스터 T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수업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며, 신나는 음악을 틀어 분위기를 띄웠다. 그림 실력도 뛰어나 아이들 캐리커처를 그려주셔서 인기 만점이었다.
어느 날, 퇴직하셨던 한 선생님이 학년말 행사에 내빈으로 오시자, 아이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한쪽 눈에 장애가 있으셨지만 늘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이 아닌,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봤던 것이다. 선생님이 나타나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환호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결국, 좋은 학군이 아니어도 충분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수준 높은 수업도 의미가 없다. 하와이 학교 생활을 단순히 영어 학습의 기회로만 보는 건 아쉬운 일이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함께 배우는 과정이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싶어 뛰어나가는 아이들, 성적이 아닌 배움의 기쁨을 알려준 선생님들,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가득했던 우리 학교. 그곳에 아이 보내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