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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Dec 14. 2022

우리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자기부정? 타인 부정?

(2022.3.3)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을 무조건 맞다고 생각한다. 자기 기준에 맞으면 오케이다. 자기 합리화가 흔한 예이다.


(2022.6.7)

착각,

자신을 비롯한 타인, 사물, 자연 등 지구에 속한 모든 것들은 물론이고 그 외의 외계까지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구체적 예를 들려는데 3개월 전 그때 , 글을 쓰려던 의도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착각을 다루고 싶었을까.

언제 착각 속에 빠졌던 걸까.


아무래도 자신이 자신을 착각한 순간이었으리라.

자기부정의 순간이라 여겨진다.

자기 자신마저도 투명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지 않은가. 자신을 가리고 싶은 사례이지 않았을까. 낯 뜨거운 순간이었을까.


미루고 쓰지 않은 글이다. 제목만으로 스토리를 유추하기가 힘들구나. 힘든 이 상황을 지금 떠오르는 (단순한) 다른 스토리로 전환한다.




나는 원래 차가 없던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입의 대부분을 모아서 차부터 샀었다. 그 이후로 내 이동 수단은 계속 자차였다. 갑자기 나를 소용돌이치게 한, 내 생활 속 나를 흔들리게 한 장본인은 차(car)다.

있다가 없는 게 빼앗긴 기분일 줄이야. 근래 (특히 코로나 때문에) 주차장에 차를 (거의) 세워두게 되면서 아들에게 차를 양보했다. 현재 내가 차를 타는 횟수만 줄었을 뿐인데, 언제나 타고 싶을 때는 타던 차를 아들과 조율해서 타면 되는데 이렇게 휘청거리다니…

현재 코로나로 이동할 일이 별로 없어서 내 차를 아들이 전적으로 타고 다. 렇게 잘 타고 다닐 줄은 몰랐다. 내가 타는 횟수가 0이 될 정도로 잘 타고 다닐 줄이야.

이것이 내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빠진 시발점이다. 나는 그저 세워뒀던 차에도 의지하고 살았나 보다.


난 뭘 착각할 걸까.

내가 차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차가 뭐길래, 내게 차는 뭐길래…


지금 이 글을 쓰며 차와 관련한 착각이 아니었구나, 깨닫고 글 내용의 회전판을  돌린다.




묘사, 서술 등 글 표현의 기법이 익숙지 않은 나는 직설적인 어투를 곧잘 쓴다. 대부분 직접적인 글로 사실을 표현한다.

이런 참, 이 또한 내 생각일 뿐.


오랜 시간을 말의 의도에 해 생각했었다.

어떤 착각을 경험했던 걸까.




(2022.6.13)

사랑한다는 변명 아래 범하는 실수들의 착각이었을까.

우선 누굴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줄 착각하면 상대방의 행동과 감정까지도 강요한다. 그건 사랑하지 않는 거다.

누굴 사랑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착각 속에서 상처를 준다.




(2022.12.13)

타인의 말과 행동에 관한 착각이었을 텐데. 그때 그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직도.

이렇게 기억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야 하나.




(2022 12.14)

자기감정대로 내뱉는 말이었을까.

감언이설 뒤에 가려진 속내였을까.

거짓말을 반복하는 현장이었을까.

험담으로 상처 주고받는 상황이었을까.


무언가 목격했거나 내게 벌어진 상황이었겠지.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본 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치며 지나갔던 일이라서 잘  기억나지 않나.


자기감정대로 내뱉는 말로 비방하는(욕하는) 걸 본 걸까.


감언이설 뒤 속내는 호의적이던 사람의 태도 변화였을까.


거짓말을 반복하는 현장은 지금 생각났다.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학벌을 거짓으로 포장하여 대졸이라고 거짓말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말한 학벌이 허위임이 드러났는데도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계속 거짓말하는 걸 봤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거짓 학력을 말한 걸 알게 되 누구나 놀란다. 타인의 학력이 궁금하지도 않은데 먼저 거짓되게 지어 말하다니. 학력은 관계 형성에는 영향력이 없다. 조건을 요하는 곳에서나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는 학력 조회가 가능한 시대다. 왜 금방 들통날 을 한 걸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기에 놀랐던 감정이 슬픔으로 변해 당사자에게 조심스레 묻게 했다. 왜 거짓 학력을 거침없이 아직도 계속 말하고 있냐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얕볼까 봐, 무시할까 봐 그런다고 대답했다. 답변을 들은 후 오히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더욱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자연스레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왜??


이제 험담으로 상처 주고받는 상황을 기억해 보자. (기억이 다른 사건으로 재연된 것 같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하며 약점을 공격했다.(상처를 줬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떤 사람은 마음이 몹시 상했다. (상처받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험담했다. 자신에게 불편한 말로 공격한 사람 바로 옆에서 말이다. 불편하게 말하며 공격한 당사자(강자일까, 약자일까)에게 직접 항변을 하던지 불쾌감을 돌려주던지 해야 하는데(내 생각) 어떤 사람은 당사자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약자인지, 강자인지)을 붙잡고 강자(어떤 사람 입장에서 강자) 바로 옆에서 강자를 헐뜯었다. 어떤 사람은 약자들을 찾아 순회공연하듯 계속 험담을 늘어놓았다. 강자가 들리도록 자신이 하는 행동을 강자가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반복적으로 험담했다. 강자만이 관객이고 약자를 바꿔 가며 험담(자기 토로)을 영원히 계속할 기세다.

어떤 사람은 현재 험담하고 있강자가 적으로 굳혀진 시점에서 험담할 강자를 바꿀 것이고 또 다른 험담을 계속할 것이다. (당사자와의 2차 대화를 회피한 어떤 사람 <=누군가>의 악순환으로 서로 고통받고 고통을 준다.)


그럼 타인이 불편한 말을 했을 때 (어떤 사람은)<누군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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