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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광대 Nov 27. 2023

아메리카노 1인분을 정의하시오.

나의 상식은 상식이 아니었다.

다양한 나의 세계를 알기에 그 무엇보다 두렵고 어려운 것은 함께하기 싫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사실

손절 천재이다.


예민함과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나와 결이 맞을 것 같다, 맞지 않을 것 같다', '함께 있으면 편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을 것 같다, ' 판단을 기가 막히게 하고 실제로 들어맞는 경우가 컸다.


눈치는 없지만 센스는 열심히 길러온 결과,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돗자리를 깔아도 좋을 만큼 예측력이 좋았고, 이를 위해 사람을 관찰하고 작은 언행에도 재단했다.


나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바운더리를 꽤나 엄격하고 견고하게 만들었고

튼튼하게 성을 지켜왔다.


그런데,


그랬었는데,


회사에는 왜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 걸까?


회사라는 조직은 그렇다.

내가 원하는 사람만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인사담당자가 사람을 채용하고 조직과 비슷한 사람을 뽑으려고 한들, 시너지를 발휘해야 하는 팀의 특성상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그때의 면접 상황에 따라 2종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고, 정말 싫지만 채용 비리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하고 있는 수많은 취준생에게 당신의 자질 부족이 아님을 꼭 말해주고 싶다.)


처음 다닌 회사에는 특별한 상사분이 있으셨는데 그분의 광활한 우주 같은 세계를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이따금씩 바로 앞에 있지만 전화를 하거나, 시끄러우니 조심하게 걸으라는 말을 동료에게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유독 청각적으로 예민한 분이라는 것을 캐치하고 최대한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살금살금 은밀하게


하지만,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부딪혀야만 존재가치가 생겨나는 곳이다.


어느 날, 그 상사께서는 스타벅스에서 투고백을 미리 주문을 하셨고 나에게 픽업을 요청하셨다.

(과거의 나처럼 투고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스타벅스 투고백을 검색해 보길 바란다.) 


신문명에 놀란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대용량 박스에 담겨 있는 모습에 '세상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감탄하며, 10인분에 맞춘 컵과 뚜껑, 컵홀더까지 야무지게 챙겨 회의실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 이 불안전한 투고백을 완전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스타벅스 매니저에 빙의를 하여 최대한 정량에 맞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두었고, 각 자리에 하나씩 세팅을 해두었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적어도 나의 세계에서는 아메리카노는 1인분의 컵에 온전히 담겨 있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를 본 상사께서는 깜짝 놀라하셨는데


상사의 깊은 생각에 따르면

도착 순서대로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알아서 따라 커스터마이징을 하기를 바라셨으며, 때문에 예측에 벗어나 임의로 만든 1인분의 아메리카노에 말을 잃으셨던 것이었다.


아, 투고백은 보온의 기능도 있었구나!


그렇다. 상사분은 청각뿐만 아니라 촉각까지 민감하셨던 것이었다.


상사분의 반응에 죄송해진 나는 메신저로 긴 사과편지를 보내었고

이를 본 상사분은 다시 나에게 온전한 1인분의 아메리카노 자리에 놓아주시며 투고백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렇듯 아메리카노 하나에도 상식의 기준이 천차만별인 각각의 개인이 섞여있는 회사이니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때 상사분께 '아메리카노 회의실에 놔두었는데, 하나씩 아메리카노 만들면 되는 것일까요?'라고 물어보기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상사와 나의 아메리카노의 기준은 같아졌지 않았을까?


나에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

 

그것이 사회이자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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