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무죄 추정

by 스윗퍼시먼

1. 현장의 법, 그리고 사라진 확신


나는 현장에서 그를 붙잡았다. 지하철 역무 사무실 한 칸에서 경찰을 기다렸다.

국과수 요원이 와서 내 바지의 지문을 채취했다. 그 과정은 마치 영화처럼 정확했다. 과학적이고,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제는 법이 내 편이구나."

그날 나는 그렇게 믿었다.

현장에는 CCTV가 있었다. "명백하죠. 영상이 있으니까요." 경찰의 말은 단단한 약속처럼 들렸다. 그 말이 나를 버티게 했다.

하지만 며칠 뒤, 다른 경찰의 목소리는 달랐다.

"사각지대가 있었어요. 손이 정확히 어디를 스쳤는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한 문장이 내 안의 확신을 부숴버렸다.

사각지대. 그 단어는 기술적 한계였을 뿐인데, 내게는 존재의 증명 불가능으로 다가왔다. 카메라가 보지 못한 곳에서 일어난 일은,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취급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확신했다. 그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손의 궤적이 너무 익숙했다. 몸이 기억하는 공포는 교묘한 손놀림의 숙련도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손보다 더 선명한 것은, 사각지대 안에 갇힌 나 자신이었다.



2. 다시 진술, 다시 증명


열흘 뒤, 경찰서에서 문자가 왔다.

"피해 진술 관련 보완조사가 필요합니다."

그 문장은 예의 바르지만, 구원자 같지는 않았다.

조사실 문은 차가웠고 불편했다. 나를 맞이한 여성 수사관은 말했다.

"처벌을 내리기 위해 불가피하니 다시 한번만요."

나는 이미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다. 손의 위치, 압력, 방향, 그날의 인파, 내 몸이 기억한 떨림까지— 나는 또다시 그날을 소환해야 했다.

수사관은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의 일부, 입력값이 되었다.

"그때 도움 요청하셨죠?"

"예, 소리쳤어요."

"그럼 주변 사람 기억나세요?"

"아니요. 그저… 많이 스쳐갔어요."

"...., 증인은 없다는 거네요."

그 말이 내 가슴을 꿰뚫었다.

증인이 없다는 것은 곧 나 혼자라는 뜻이었다. 나는 사건의 유일한 증거이자, 피해자 그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CCTV가 증인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3. 문턱을 넘어, 벽을 만나다


조사가 끝나자 경찰은 말했다. "이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갑니다."

그 말은 안도와 동시에 불안을 불러왔다. 이상했다. 경찰의 문턱을 넘자 검찰이라는 벽이 나타났다.

제도와 절차, 나도 존중했다. 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고 배웠다. 하지만 몰랐다. 그 존중이 내게 또 다른 피해로 돌아올 줄은.

검찰로 송치된 후, 모든 게 느려졌다. 시간은 공정이라 불렸지만, 그 공정의 방향은 언제나 가해자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국선변호사는 말했다. 검사는 그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증인 출석을 늦추는 요청도 들어줘야 하고, 가해자의 의견서를 받고, 검토 기간도 줘야 한다고. 그 과정이 "공정"이라 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럼 내 불안은 누가 보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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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침묵, 그 속에 숨은 비명을 저는 문장으로 꺼내고 싶었습니다. 20대엔 공학을, 30대엔 정치를, 40대엔 다시 육아를, 지금은 민낯을 경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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