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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y 14. 2020

하이, 바이, 바 선생

200410_회사작당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농담 중에 그런 게 있었다. 160cm 바퀴벌레와 한 달 동안 동거 시 100억 원을 준다면 도전하겠는가. 물론 그 바퀴벌레, 아니 바 선생은 성격도 아주 신사적이고 청결하며 가사도 척척해낸다. 다만 외로움을 잘 타 한 침대에서 자야 하고, 무엇보다 바퀴벌레다. 거대한 바퀴벌레를 떠올리니 문득 카프카의 <변신>이 연상된다. 그만큼 허무맹랑한 존재고,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치열하게 고민한다. 바 선생과 한 달 살기를 하고 100억을 얻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나도 껴서 아주 진지하게 고찰을 해본다. 가능할까?


그런데 사실 나는 이미 바 선생과 동거를 한 지가 꽤 되었다. 자취 생활 동안 거쳐간 세 번의 월세살이 중, 이사한 지 4개월을 조금 넘긴 지금 방 빼고는 늘 바 선생과 함께였다. 당연히 돈은 받은 바가 없다. 본가에서 지낼 때도 바퀴벌레를 가끔씩 보기는 했으나 그건 정말 몇 년에 한 번 볼까말까였고, 약을 뿌리면 금세 사라졌다. 눈에 보이질 않으니 관심도 덜 해서 그런지 딱히 바 선생에 대한 감정도 없어서, 징그럽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러다 서울로 상경하고서 얻은 첫 자취방은 그야말로 바퀴벌레 친화적인 공간이었다. 냉장고 아래에 죽어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었던 바 선생의 유해를 수습할 때 진즉 깨달았어야 하는 건데, 그 방엔 이미 자잘한 크기의 바퀴벌레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학교 근처에 그 정도 저렴한 방은 흔치 않았기에 참았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한편으로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 선생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느꼈다. 그래도 징그러우니까 가급적 눈에만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가끔씩 불을 켜두고 잠들어 버리곤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불을 끄기도 전에 곯아떨어지고 만 밤이었다. 얼마쯤 잤을까 점점 검지가 간지러워지는 탓에 끔뻑거리며 눈을 떴다. 이상하다. 검지가 시커멓다.


손가락 두 마디는 될 법한 바퀴벌레가 손가락을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사람이 진짜 놀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날 밤 처음 알았다. 겨우 헉 소리 한 번 낼까 말까다. 본능적으로 손을 털어 바퀴벌레를 떨궜다. 바닥에 떨어진 녀석의 외양을 다시 보니 틀림없는 미국 바퀴벌레다. 이놈은 대체 어디서 와서 어떻게 내 손가락에 올라탔을까. 이미 내 몸 구석구석을 다 탐험한 게 아닐까. 눈물이 났다. 아니다. 집중해. 일단은 이 녀석을 처리해야 한다. 책 한 권을 집어 들어서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그러나 찰나의 망설임에 묵직한 전공 서적은 바 선생의 옆을 비껴나고 말았다. 동시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녀석은 맹렬하게 다리를 움직여 패닉 상태로 방 안을 돌아다녔고 끝내 세탁기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날 밤 더 이상 그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는 울면서 몇 번이고 손을 씻다 밤을 새우고 말았다. 이 더러운 생명체가 얼마든지 내 지근거리까지 다가올 수 있단 걸 깨닫고 나니 바 선생이 공포 그 자체로 다가왔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조금이라도 몸이 간지러우면 혼비백산하여 방구석구석을 전부 뒤지고 난 후에야 다시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서럽게도 어쨌든 나는 지낼 곳이 그 방밖에 없었다. 손가락 위에서 움직이던 바퀴벌레 다리의 감각을 떠올리며 매일 잠들지 못하는 불안이 계속되었다.


나를 거기서 구해준 건 오직 시간이었다. 마땅히 이사할 곳도 없었던 난 계약 만료일까지 거기에 묶여있었다. 바퀴벌레가 나타날까 두렵다는 말을 주변에 털어놓아도 피곤하니까 새벽에 그런 걸로 징징대지 말라는 소리나 들었다. 그때 그 자식 얼굴에 주먹이라도 한 번 날렸어야 하는 건데. 이런 가혹한 환경 속에서 내 마음속 일부분이 파삭하고 떨어져 나감을 느꼈지만 그만큼 무뎌지기도 했다. 다음 자취방에서 바 선생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더 이상 놀라서 우왕좌왕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심지어 수건을 보관하는 서랍에서 나타난 이 녀석은 그 안에 꽤 오래 있었는지 여기저기 배변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바퀴벌레 똥을 어떻게 알아보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매일 얼굴을 부비는 수건 사이를 누볐을 녀석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 선생을 제압할 때의 제1원칙은 그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빠르게 도망치는 바 선생을 인간이 잡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서랍 속 수건을 꺼내고 다른 잡동사니를 꺼내고 오직 그와 나 사이에 싸늘한 공기만 남았을 때,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조심스레 재활용 바구니에서 우유갑을 꺼냈다. 그리고 우유갑으로 벽을 만들어 조금씩 조금씩 바 선생을 서랍 모퉁이로 몰았다. 혹시 눈치챘는지? 서랍 모퉁이는 3면이 모이는 꼭짓점이고 우유갑 역시 그에 딱 들어맞는다. 바 선생이 정확히 그 꼭짓점에 도달한 순간 가차 없이 우유갑으로 꾹 눌렀다. 바 선생의 숨통이 끊어졌는지 확인하려 손에 힘을 푸는 건 애송이나 할 짓이다. 선생의 몸이 짓이겨지는 감각이 전해질 때까지 밀여 붙여야 한다. 그렇게 우리 집을 방문한 바 선생이 생을 마감했다.


사체를 적절히 수습하고 알코올로 서랍을 소독하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함이 차올랐다. 많이들 홀로살이의 서러움은 아플 때 느낀다지만 내게는 바 선생이 그러했다.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방에 눌러앉아 대대손손 살 바 선생을 목도하는 순간만큼 지독하게 외로운 때는 없었다. 그걸 깨닫게 해주는 이 혐오스러운 생명체가 증오스러우면서도 또 만날까 불안했다. 그래서 바퀴벌레를 성공적으로 제압한 이 순간이 자랑스러웠다. 혼자여도 해냈다. 여전히 바 선생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고 외로운 존재지만 적어도 울지는 않을 거 같다. “왔어?”하고 익숙하게 인사하고 잘 보내줄 수 있단 걸 아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바 선생이랑 한 달 같이 살 수 있는가? 일단 판돈을 좀 더 키워주면 재고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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