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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Oct 12. 2022

게임으로 불면증 치료하기

두 번째 게임, 바바 이즈 유

소재 : 무난

접근성 : PC, ios, android 모두 가능, 규칙도 복잡하지는 않다.

시간 소비 및 중단 가능성 : 실력에 따라 다름. 언제든지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음.

체감 난이도와 벌칙 : 난이도는 높음, 벌칙은 가벼움


(일부 퍼즐에 대한 스포일러 존재)


직전에는 빠른 템포의 액션 게임을 플레이했으니 이번에는 천천히 머리를 쓰면서 진행하는 퍼즐 게임을 플레이 해보고자 했다. 소코반류 퍼즐 게임인 바바 이즈 유였다. 소코반류란, 한정된 공간에서 캐릭터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물건을 지정된 장소로 옮기는 <소코반>이라는 퍼즐 게임과 유사한 규칙을 가진 게임들을 의미한다. 기존 소코반 게임과 차별점이 있다면, 플레이어가 직접 규칙을 바꾸고 그게 퍼즐의 일부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만만찮은 난이도로 인해 'babo is you, babo is me'라는 밈으로도 유명한 게임이다.


초반 8개의 튜토리얼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첫 번째 레벨인 호수에서 쉽게 풀리는 초반부 퍼즐들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명성보다는 쉬운데?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 생각이 오산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호수 레벨의 후반부 스테이지부터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 게임이 어려운지, 막히게 된 연유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게임의 메커니즘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을 소개하자면 대략 이런 식이다. 가장 기본적인 문장 두 개로 시작해보자.


‘바바’ / ‘는(은)’ / ‘당신이다.’

'baba' / 'is' / 'you'

 

‘깃발’ / ‘는(은)’ / ‘승리한다’

'flag' / 'is' / 'win'


게임은 저런 식으로 단어 블록을 나눠두고 플레이어가 직접 단어 블록을 옮기면서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임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조합법 하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십자 블록 조합법은 게임 내에서 정말 많이 쓰이는 단어 조합법인데, baba라는 블록이 게임 내부에 한 개가 아니라면 단어 블록을 이런 식으로 맞춰볼 수 있다.

                                                      baba

                                              baba  is  you

                                                       win

이런 식으로 단어 블록을 맞추면 게임에서 바로 승리하게 된다. 바바는 당신(플레이어)이고 바바는 승리하므로 바로 게임 클리어가 된다는 논리다. 게임은 이런 식으로 단어 블록을 조합하며 규칙을 바꾸고, 게임 클리어 조건을 찾아내는 게 게임의 승리 조건이 된다. 이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만수산 칡넝쿨마냥 꼬으고 꼬아서 한상 거나하게 차려두면 바바 이즈 유라는 게임이 되겠다.


1-12 꽃게 저장소 스테이지(좌)와 2-11 감옥 스테이지(우). 특정 기믹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 없다.


메커니즘을 꼬는 건 이해가 가는데,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건 좀 아쉽다. 게임 내부에 숨겨진 기믹과 규칙이 존재하고 그걸 파악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스테이지가 제법 많다. 1-12 꽃게 저장소에서 baba is baba로 미리 규정해놓으면 다른 단어를 넣어도 정의되지 않는다는 기믹을 활용하여 통과할 수 없는 단어 사이를 뚫고 퍼즐을 푸는 스테이지에서는 정의된 단어 간의 우선순위가 있다는 규칙을 몰라서 몇 시간을 고생했다.


문제의 2-11 감옥 스테이지. 몇 시간 내내 정말 무슨 짓을 해봐도 퍼즐이 풀리지 않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엎드린 상태로 뻗었다.


결국 잤다.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지만 퍼즐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슈퍼 헥사곤같은 액션 게임은 아슬아슬하게 클리어 못 할때의 '쫄리는 맛'이 있는데, 퍼즐 게임은 안 풀리면 몇시간이고 그냥 안 풀린다. 계속해서 머리를 써보지만 생각해내지 못하면 그대로 머리가 굳어 졸음이 쏟아지기 마련. 나는 그대로 불면증 치료에 성공했다. 달콤한 수면이었다.


하루 자고 나니까 30분만에 퍼즐 풀이법이 생각나더라. 정의되지 않은 사물에는 단어 블록을 올릴 수 있다는 숨겨진 규칙을 여기서 처음 깨달았다. 알고 나니 정말 간단한 퍼즐이었다. 그래서인지 안 풀리던 퍼즐의 기믹을 알아내서 풀었을 때 내가 똑똑해진다는 기분보다는 되게 쉬워보이는 퍼즐이었는데 왜 못 푼거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풀었을 때 '아하'라는 감탄사가 나올만한 쾌감 역시도 충실히 갖춘 게임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려운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퍼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결과적으로 호수 레벨은 EX 퍼즐을 포함한 모든 퍼즐을 풀었지만, 2번째 레벨인 외로운 섬부터 슬슬 뇌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비직관적인 퍼즐의 기믹도 인내심에 한계를 불렀다. 모든 스테이지를 깨보려다 결국 EX 퍼즐들은 대다수 넘겼다. 노멀 엔딩만 보고자 한다면 엔딩을 보기 위해 해당 레벨의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 정해진 홑씨만 클리어하고 나머지는 그냥 넘겨도 무방하다. 필요한 스테이지만 어떻게든 깨다 보면 노멀 엔딩 스테이지인 탈출구! 스테이지가 열리게 되고, 이 스테이지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클리어가 가능하다(스포이므로 무슨 조건인지는 직접 풀어보길 바란다). 다만 마지막 스테이지는 우거진 숲에서 처음 나오는 Belt / Shift 기믹을 이해하지 못하면 클리어할 수 없는 레벨이므로, 사실상 5번째 레벨인 우거진 숲까지는 어느 정도 클리어가 강제되는 게임이다. 그렇게 바바 이즈 유의 맛보기 콘텐츠를 마쳤다. 나머지 퍼즐들은 언젠가 시간이 좀 많이 나면 몰아서 해보고 싶다(과연 그때가 언제일런지...) 


플레이를 마치고 나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감을 말해보자면, 이 게임은 쉽다고 말하기 어렵다. 당장 나만 해도 노멀 엔딩만 대충 보고 넘어갔기 때문에 후반부 퍼즐의 난이도를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초반부조차 막히는 부분들이 제법 있었다. 퍼즐을 정말 잘 푸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비없는 난이도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게임을 캐주얼 게임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진엔딩까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노멀 엔딩만 보고자 한다면 클리어하지 못할 난이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마지막 탈출구 스테이지에서 고생을 좀 많이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게임의 규칙이나 조작 자체는 익히기 쉬운 편이고, 게임 자체가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 게임은 아니다. 크게 거부감을 주는 비주얼도 아니다. 따라서 노멀 엔딩만 보고자 한다면 충분히 캐주얼 게임의 범위에 들어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엔딩을 보려고 하거나 모든 스테이지의 꽃송이를 따내는 걸 목표로 한다면 50시간, 더 나아가서 100시간도 찍을 수 있는 게임이지만(물론 플레이어의 '지능'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린다) 그 정도 단계로 넘어가면 이미 캐주얼 게임의 범위를 가볍게 넘긴다. 캐주얼 게임과 하드코어 게임, 경계선상에 위치한 게임이라고 보면 정확할 거 같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

논리에 자신 있으신 분

빠른 액션 게임보다 천천히 생각하며 플레이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


이런 분들에게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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