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 : 현재는 PC만 가능, 체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을 배우기는 매우 쉬워서 접근성은 나쁘지 않은 편.
시간 소비 및 중단 가능성 : 한판당 길어도 30분 이내, 얼마든지 중단했다가 리플레이가능.
체감 난이도와 벌칙 : 난이도 조절 가능.
상황 하나를 가정해보자. 철수는 살면서 하는 게임이라곤 리그 오브 레전드 뿐이고, 영희는 피파 온라인 말고는 없다. 철수와 영희는 새로운 게임을 해보려 시도해 봐도 금방 포기하고 하던 게임으로 돌아온다. 왜 이들은 새로운 게임 도전에 번번이 실패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규칙을 새로 익히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여러 규칙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프로그램이다. 게임을 처음 접하면 누구나 새로운 규칙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개발사 측에서 초보자 친화용으로 튜토리얼을 친절하게 만들어 주고 배우기 쉽게 만들어줘도 새로 규칙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게임에는 새로운 규칙들이 존재한다. 게임을 A부터 Z까지 전부 복사하지 않는 한 그렇다. 자주 접하는 장르가 아니라면 학습해야 할 규칙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모든 게임은 학습이라고 하지만, 처음 게임을 접하면서 게임을 즐긴다기보다는 공부를 하게 되는 감각에 더 가까우니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샷건킹의 게임화면과 플레이어의 분신이 되는 흑색 킹의 일러스트
그 점에서 샷건 킹은 매우 친숙한 게임처럼 보였다. 흑백으로 장식된 체스 판에서부터 그리운 감정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친구와 내기 체스를 두던 기억이 떠올라서였을까. 옛 샷건을 든 짓궂은 표정의 킹은 마치 옛날 코믹 만화를 연상케 했다. 한 편으로는 참신했다. 체스라는,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은 플레이해보았을 보드 게임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했다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스팀에서만 할 수 있는 게임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숙함 속에서 참신함이 돋보이는 게임이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추천해주고 싶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더라도 업무용 노트북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실행 가능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샷건킹의 게임화면(좌)와 스테이지 승리시 화면(우). 게임화면에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버프와 패널티와 더불어 총알과 무르기가 몇 개 남아있는지 알 수 있다.
기존 체스와 다른 점은, 우선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흑색 킹은 기존의 킹을 받쳐줄 기물이 아무도 없지만, 원거리에서 상대 기물을 샷건으로 쏴서 쓰러뜨릴 수 있다. 판이 끝날 때마다 버프와 패널티가 랜덤하게 주어진다(왼쪽은 버프 카드, 오른쪽은 패널티 카드). 상대 기물을 죽이면 영혼석이 주어져서 해당 영혼석(룩이면 직선, 퀸이면 대각선과 직선 모두)이 가지고 있는 규칙대로 킹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도 기존 체스와의 차별점이다.
게임 스토리는 크게 특기할 만한 요소가 없다. 나(플레이어)는 폭정을 펼치던 흑색 킹이고 내게 반기를 든 부하 기물들과 부하들을 선동하여 빼앗아간(?) 착한 백색 킹을 처단하는 게 게임의 최종 목표다. 히든 보스인 블랙 비숍과 진엔딩이 있지만, 말 그대로 히든 콘텐츠이므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처음 보통과 어려움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 하고, 난관에 부딪힌 시점은 매우 어려움 난이도 부터였다. 주어지는 패널티가 차원이 다르다. 기물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크지만, 기본으로 주어지는 영혼석이 사라진다는 게 제일 컸다(버프로 영혼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이 게임에서 기물에 한 번 몰렸을 때 탈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격이 달랐다. 몇 번의 게임오버를 당했을까. 점점 초조해졌다. 그러자 고난도 스테이지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게임의 시스템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무르기 시스템이다.
무르기 시스템이란, 말 그대로 놓으면 체크메이트가 되는 상황을 물러주는 시스템이다. 물론 무한히 무를 수는 없고 횟수가 정해져 있긴 하다. 그럼에도 체스에서 무려 무르기가 되다니, 플레이어에게 너무 유리한 혜택이 아닌가?
하지만 이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람 버릇이라는 게 참 무섭다. 분명 클릭 한 번을 하면 무르기 시스템이 적용이 되어 기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나도 모르게 마우스 왼쪽 버튼 연타를 한다. 아니 분명 경고음까지 뜨면서 상대 빨간색 기물에게 체크메이트 되었다는 상황을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는 데도 소용없다. 이런 생각도 든다. 흔히 놓기 전에 생각했나요? 라는 밈으로 유명한 게임인데, 이 밈은 바뀌어야 한다. 누르지 말라는데 왜 계속 누르나요? 라고 말이다. 수십 번 넘게 재도전을 거치면서 나는 더욱 초조해졌고, 실수는 늘어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다음 날로 넘겼다. 다음 날에 킹 난이도까지 전부 클리어하긴 했다. 실력보다는 버프와 패널티의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었나.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해도, 복기를 해봐도 소용없다. 게임을 하는 내내 최상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실패를 겪을 수록, 사람은 점점 초조해진다. 날이 서 있던 집중력은 점점 무뎌지기 시작한다. 집중력을 놓치는 작디 작은 한 순간, 실수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이 게임의 경험이 특별했던 건, 턴제라서 충분히 생각할 여유가 있고, 실수를 방지해주는 시스템이 있음에도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실제 체스 경기를 두는 체스 선수들도 유사한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니,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클리어를 마쳤다. 게임 자체는 잘 만든 게임이다. 체스라는 익숙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규칙을 변주하고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낯설게하기'의 게임 버전이랄까. 난이도 조절 기능이 있기 때문에 쉬운 게임을 원하면 난이도를 최하로 낮추고 플레이해도 괜찮다. 그러면서도 최고 난이도는 원래 체스를 잘 두던 사람이 아니라면 상당히 클리어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난이도를 갖추고 있다. 스테이지가 진행될 때마다 랜덤하게 주어지는 버프와 패널티는 어떻게 조합하여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전략적 요소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모바일 포팅이 아직 되어있지 않다는 점인데, 형식 상 포팅 자체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개발자 측에서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모바일 포팅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적극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