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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Oct 19. 2022

악독한 봉건시대의 영주

네 번째 게임, 래트로폴리스

소재 : 무난

접근성 : PC, ios, 안드로이드 전부 가능. 익혀야 할 규칙이 제법 있기에 다소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다.

시간 소비 및 중단 가능성 : 30라운드 기준으로 보통 1시간 이내, 얼마든지 중단했다가 리플레이가능.

체감 난이도와 벌칙 : 오염도가 없을 때는 무난, 오염도를 올릴 수록 어려워진다.


익숙했다. 지켜야 할 목표가 있고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을 막는 게임.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의 유즈맵을 제법 해본 기억이 있어서일까. 어렸을 때 친구들과 재미나게 즐겼던 타워 디펜스를 생각나게 했다. 게다가 카드로 덱을 구성하는 덱빌딩 요소를 추가하다니. 보드 게임을 해본 경험도 있던 터라, 여러모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게임이었다. 살짝 그로테스크(?)한 메인 화면의 쥐를 제외하면, 인게임에서 나타나는 쥐들은 상당히 귀엽게 묘사되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래트로폴리스의 게임화면. 파란색은 본진, 빨간색은 방어벽, 노란색에는 사용할 수 있는 카드와 영웅 능력 등이 배치되어 있다.


게임을 시작하니 중앙에 플레이어의 기지가 주어지고 양 옆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일정 구간마다 방어벽을 쌓을 수 있고 방어벽의 뒤쪽 구간에는 생산이나 방어 시설을 지을만한 공간이 생긴다. 건물, 유닛들은 카드로 주어진다. 카드를 내면 해당 카드에 해당하는 유닛이나 건물이 생성된다. 총 6명의 지도자, 3가지 분류(경제, 군사, 기술)의 카드가 존재하며 직업마다 다른 컨셉의 카드와 기믹, 게임의 운영을 도와주는 조언자도 있다. 규칙들이 제법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진입장벽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처음에는 무슨 카드가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부딪혀봐야 했다. 좋아보이는 카드는 다 집었다. 영지를 늘릴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늘렸고 건물을 지었다. 생각보다 손이 제법 많이 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 정기적으로 오는 적들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게임이 진행될 수록 공격해오는 적들의 체력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 반면 내 유닛들은 초반에 비해 너무 약해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방어벽 뒤에 있어도 소용 없었다. 적 원거리 유닛은 언제든 방어벽 뒤에 있는 내 유닛을 죽일 수 있는 공격수단을 갖고 있었으니까.


세금을 물리는 카드(?)


게임 오버를 당하면서 생각을 했다. 어떤 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게임에서 승리할 있을까. 지도자는 상인이었다. 상인은 어떤 컨셉일까. 아무래도 돈을 이용한 전략이 유효할 거라고 판단했다. 획득하는 금액의 비율을 늘려주는 조언자, 카드를 버리면 버린 카드만큼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의 10%를 쥐어주는 지도자 능력 등. 상인이라는 지도자답게 돈을 벌기도 쉬웠다. 세금을 걷기도 쉬웠다(상인이 왜 세금을 걷냐?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게임적 허용으로 넘어가자). 직업 컨셉 자체가 돈이었다. 화룡점정은 바로 '황금화살'이라는 직업 카드였다. 걷는 세금에 비례하여 상대에게 주는 피해량이 늘어나는 컨셉의 카드다.


건물을 늘리고 가차없이 세금 50%를 인상했다. 더해서 지어진 건물에 따라 비례하여 세금을 늘렸다. 지도자 능력을 사용하는 시간을 감소시켜주는 조언자를 얻었다(지도자의 능력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일정 시간 기다렸다가 쓸 수 있다. 이걸 쿨타임이라고 부른다). 지도자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황금화살을 얻는 건물, 해당 카드를 버릴 시에 황금화살 카드를 주는 화살 세례 등. 카드 간 시너지를 생각하여 덱을 짰다. 운도 따랐다. 미리 계산해서 짜둔 덱에 필요한 카드와 조언자가 빠른 시기에 나왔다. 수없이 많은 황금화살을 수급했다. 영지에 들어오는 적들은 내가 부과하는 무거운 세금화살(?)의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기 급급했다. 악독하기 그지 없는 중세 봉건주의 시대의 부패한 영주가 된 기분이었다.


게임을 클리어하면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건, 게임 내에서 승리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한정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특히 오염도(높일수록 게임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개념)가 높을수록 승리플랜은 더욱 정해지게 된다. 원하는 카드가 있어도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덱 컨셉에 안 맞거나 성능이 나쁘거나 여타 이유에서다. 게임을 진행하면 진행할 수록 더이상 필요없는 카드를 덱에서 지우는 과정도 필요하다. 덱빌딩 게임에서는 항상 모든 카드를 쓸 수는 없고, 내가 미리 짜놓은 덱에서 뽑히는 카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덱에 카드가 많을 수록 적재적소에 필요한 카드를 뽑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최대한 필요한 카드만 덱에 남겨놓고 나머지 카드를 지워 없애야 한다. 덱빌딩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덱압축이라는 개념이다.


비단 덱빌딩 게임만의 특징일까.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다. 난이도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게임의 규칙은 플레이어를 더욱 강력하게 조이기 마련이다. 프레임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정확한 조작, 상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낭비없이 해치우기 위해 요구되는 정확한 피해량 계산 등. 난이도가 높은 게임들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인 플레이만을 강요한다. 특정 컨셉으로 플레이를 하고 싶어도 이기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하는 놀이적 자유와 특정한 규칙에 의해 제약당하는 게임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상충하는 지점이 있다. 대다수의 게임들은 자유와 제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상충할 수 밖에 없는 두 요소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내는 게임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 내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대처법을 찾아내는 재미는 존재한다. 어쩌면 그런 재미야 말로 게임이라는 매체의 본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모든 게임은 기저에 내재되어있는 규칙에 의해 제약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효율 추구라는 특징은, 게임이 추구할 수 있는 재미의 가능성을 자기도 모르게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재미는 취향이라지만, 취향이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각자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존중해준다면 그만큼 다양하게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승리를 위해 가장 성능이 좋은 A카드 뿐만 아니라 B, C 카드도 써볼 여지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분들에게 추천

어린 시절 디펜스 게임에 추억이 있으신 분

귀여운 아트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카드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


이런 분들에게 비추천

카드 게임을 싫어하시는 분

복잡한 규칙을 싫어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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