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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없는 자 Oct 27. 2022

인디 게임의 캐주얼화

마지막 세 게임, 아이작과 슬더스, 뱀서

2010년 이후로 발매된 인디 게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인디 게임 씬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더 바인딩 오브 아이작>(이하 아이작)과 <슬레이 더 스파이어>(이하 슬더스),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이하 뱀서)다. 세 게임은 판매량도 판매량이지만, 판매량을 넘어서 게임계 전체에 미친 영향력이 타 인디게임에 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이작 라이크/슬더스 라이크를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스팀 게임의 범람 및 대중화를 이끌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게임들이다. 뱀파이어 서바이벌은 발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의 두 게임에 비하면 영향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금세 둘의 계보를 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왼쪽부터 <더 바인딩 오브 아이작 리버스>, <슬레이 더 스파이어>,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게임화면

본 연재의 마지막 게임은 이 세 게임을 다룰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지금까지의 글과 다르게 게임을 소개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워낙 유명한 게임들이고 구글에 검색 한 번만 해도 이 세 게임에 대한 자료가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온다. 위 게임들의 디자인을 분석하기 위해 굳이 지면을 할애할 이유가 없다. 대신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이 세 게임이 게임계에서 왜 중요한지, 나아가 이 게임계가 왜 인디 게임들의 캐주얼화를 상징하는 게임들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설명하는 걸 목표로 글을 쓰고자 한다.


이 세 게임의 공통점부터 지적해보자. 저예산에 리플레이가 용이하다. 그래픽이나 아트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각본의 비중도 낮고, 캐릭터도 존재만 하는 수준이고, 컷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한 판 한 판이 짧은 대신 게임 내부에 존재하는 해금 요소를 해금하려면 지속적으로 게임을 리플레이해야만 한다. 무작위적으로 레벨이 생성되는 절차적 생성 요소 덕분에 수학적 논리대로 잘 짜인 레벨 디자인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핵심적인 플레이 구간에만 집중적으로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 분량도 짧다. 이처럼 개발비용과 기간에 비해 플레이 타임을 확보하기가 매우 용이하다는 특징으로 인해 수많은 -라이크 작품들이 나왔다. 다른 성공한 인디 게임들이 이 세 게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발 가성비라는 측면에서 위 게임들만큼 탁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발 가성비라는 측면 말고도, 캐주얼 게임 측면에서도 위 세 게임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선 첫 번째 게임인 아이작은 캐주얼 게임의 요소 중 시간 소모라는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인다. 우선 아이작의 게임 구조를 요약해보자. 한 판당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게임을 클리어할 때마다 캐릭터, 아이템 등 여러 해금 요소가 열린다. 해금 요소를 모두 해금하다 보면 플레이타임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매판 매판이 짧으면서도 쉽사리 질리지 않고 리플레이가 용이하다. 모든 요소를 해금하고 게임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면 수백 시간을 족히 소모할 수 있는 게임이지만, 한 판당 평균 게임 플레이 시간은 20~30분 정도에 불과하기에 그렇다. 엔딩까지 길어봐야 1시간이 좀 넘는 수준이다. 장대한 서사시의 AAA 게임들이 엔딩 한 번 보기까지 수십 시간에서 수백 시간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이러한 아이작의 게임 구조는 시간이라는 현대 플레이어들의 니즈를 정확히 찔렀다. 예스퍼 율에 따르면, 캐주얼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적게 소비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제법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하드코어 하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실제 사용자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바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주목할 부분은 캐주얼 플레이어들이 플레이하는 게임 자체의 구조가 아이작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한 판 한 판 자체는 매우 짧으면서도 자발적인 리플레이를 통해 플레이 시간을 확보하는 게임의 구조가 아이작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아이작은 시간 소모/개발 가성비라는 측면에서 인디 게임계의 캐주얼화에 한 획을 그었지만, '캐주얼 게임'의 관점에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기존 클래식 로그'라이크'에 비해 캐주얼한 게임성을 갖고 있고, 영구적 죽음이라는 강력한 벌칙 역시도 해금 요소의 존재로 인해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수준에 그친다. 실제 탄막 슈팅 장르에 비하면 아주 미세한 수준이지만 장르적 특성을 빌린 관계로 종종 신중한 컨트롤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PC로는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으나 정교한 컨트롤을 수행하기가 어려운 스마트폰으로는 제대로 된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로 게이밍용 장비를 구비하기 어려운 플레이어들이나 나이가 들어 반사신경과 컨트롤이 떨어지는 50대 이상의 그레이 게이머각2)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어렵다. 호불호가 갈리는 아트스타일도 진입장벽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게임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접근성 측면에서 좋은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완전한 캐주얼 게임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다음 계보인 슬더스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로그라이트에 덱빌딩의 요소를 탑재한 슬더스는 아이작과 더불어 짧은 시간 소모와 함께 얼마든지 중간에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는 캐주얼 게임의 핵심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캐주얼 게임'으로서 기존의 아이작이 갖고 있던 한계점을 타파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선 턴제에다가 카드에 적혀 있는 문구와 숫자만 읽을 줄 알면 누구나 쉽게 규칙을 배울 수 있다. 젊은 시절에 비해 동체시력과 컨트롤이 다소 나빠져서 실시간 게임을 플레이하기 어려운 50대 이상의 그레이 게이머도 플레이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플레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포팅도 깔끔하게 돼서 모드를 설치할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PC버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누워서 자기 전에 게임하든, 지하철 출근길에 잠깐 켜서 하든, 장소와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도 않는다. 접근성 측면에서 비교가 불허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슬더스의 게임성은 인디 게임 시장에 크게 어필하여 수많은 슬더스-라이크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슬더스가 정식 발매된 19년 이후 인디 게임판은 그야말로 대(大) 덱빌딩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작에 이어 인디 게임 씬의 왕위를 완벽하게 계승한 셈이다.


마지막 계보(정확히는 계보에 속할 예정이라고 본다)인 뱀서는 기존 시간 소모/접근성뿐만 아니라 난이도 측면까지 캐주얼 게임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온 케이스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방향키를 눌러 몰려오는 적들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죽인 적들에게 나온 보석들을 모아 레벨업을 하면 스킬을 올린다. 플레이어가 주체성을 발휘할 영역은 어떻게 스킬을 조합하여 몰려드는 적들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뿐이다. 20분을 넘어가면서부터 화면에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들의 수가 많아지지만, 스킬 조합을 잘 갖추어 놓았다면 어려울 것은 없다. 간단한 조작과 규칙으로 인해 논리적으로 사고하거나 정밀한 컨트롤을 요구할 여지가 거의 없다. 뱀서의 무난한 게임성은 일상에 지쳐 휴식이 필요한 플레이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직 정식 출시도 되기 전 얼리 액세스만으로도 게임 계에 충분한 파급력을 일으켰다. 다만 모바일에서는 플레이할 수 없고 PC에 앉아서 해야 한다는 점이 유일한 진입장벽이었으나, <탕탕특공대>라는 카피캣의 등장(스킨만 갈아 끼운 뱀서다)과 더불어 <탕탕특공대>의 크나큰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뱀서류 게임이 모바일 캐주얼 게임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한 게임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각3). 지금까지 아이작과 슬더스, 뱀서 계보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이작, 슬더스, 뱀서의 캐주얼적 요소


사실 지금부터 하는 주장은 끼워 맞추기에 가깝기 때문에 주장이라기보다는 추측성 글에 가깝다. 먼저 근 10년 간 진행된 아이작 -> 슬더스 -> 뱀서 간 계보를 살펴보면 인디 게임계도 캐주얼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해마다 늘어가는 디지털 게임 플레이어의 숫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서론에 언급한 캐주얼 게임의 요소(소재, 시간 소모, 접근성, 난이도와 벌칙)들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장 우선해야 할 요소는 앞선 연재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해왔던 시간 소모다. 학생, 직장인, 취준생 등 평균적으로 한국인은 고작해야 하루에 4시간 정도의 여가 시간을 갖는 데다가, 여가시간을 전부 게임에 쏟기는 어려울 테니 온전히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내외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에 여가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플레이하는 캐주얼 게임을 목표로 삼는다면 시간 소모는 반드시 줄여야 한다각4).


한국인의 여가활동 시간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여가활동조사>)

일 평균 여가시간 = 4.4시간

한국의 여가시간 비율 = 17.9%

이 수치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고,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에 비하면 크게 낮다. 이들 국가의 여가시간 비율은 22%를 넘는다.


두 번째로 우선해야 할 캐주얼 게임의 요소는 접근성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콘솔이나 고사양 PC 등 고가의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든지, 규칙이 매우 복잡하여 플레이어가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게임을 시작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공들여 시작하더라도 30분 만에 머릿속에서 PTSD가 일어나면서 관두게 되는 케이스도 많다. 그럼에도 시간 소모보다 우선순위는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배워야 할 요소가 많다는 점은 처음에는 진입장벽일 수 있어도 한 번 배워두고 나면 동일한 게임에서는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고가의 장비 또한 처음에는 제법 돈이 나갈지 모르나, 한 번 쓰고 나면 반복해서 돈이 나가진 않는다. 적어도 동일한 게임을 계속한다는 가정 하에서는 그렇다. 반면 시간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은 24시간으로 동일하다. 아무리 학습을 하거나 돈을 써도 극복할 수 없는 게 시간 소모다(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개념의 가챠 게임들은 예외로 친다). 일회성 소비와 반복성 소비의 차이는 크다. 시간 소모를 접근성보다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난이도와 벌칙, 소재는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개인마다 편차가 커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근 10년 간 인디 게임의 캐주얼화도 정확히 우선순위대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로 아이작이 시간 소모라는 측면에서 캐주얼 게임 요소를 따오는 데 성공했다면, 슬더스는 시간 소모와 더불어 접근성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고, 마지막 뱀서는 난이도까지 캐주얼 게임의 요소를 그대로 따왔다. 위 계보의 게임들과 더불어 수없이 쏟아진 -라이크 게임들을 보면, 기존의 통념과 제법 다른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스팀 인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일종의 힙스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스팀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동일하게 24시간이 주어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짧은 시간 동안 즐거운 경험을 얻고자 하는 건 평생 모바일에서 하이퍼 캐주얼 게임만 해온 사람들이나, 스팀에서 인디 게임들만 플레이해온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다. 그저 게임에 누가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의 차이 정도다. 뱀서에서 스킨만 갈아 낀 채로 모바일로 발매하여 큰 성공을 거둔 <탕탕특공대>만 봐도 자명하지 않은가.


만인을 위한 게임은 존재할 수 없다. 당연한 얘기다. 사람마다 각자 취향이 다른데 만인을 위한 게임이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그나마 근사치에 속하는 게임이라면 캐주얼 게임일 것이다. 누구나 가볍게 시작하고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게임 플레이의 깊이마저 갖춘 게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뱀서는 모르겠지만, 못해도 아이작이나 슬더스는 그런 부류의 게임에 속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게임들이야 말로 만인을 위한 게임의 근사치에 가까운 게임이 아닐까. 위 세 게임의 의의는 점차 늘어나는 디지털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맞추어 캐주얼화 되어가는 게임계 전체를 상징한다.


각1) 최신작은 리펜턴스이나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버전이 리버스밖에 없어서 리버스 게임화면을 썼다.

각2) 개인적으로 플레이어라는 용어를 선호하나, 실제로 있는 학술용어이므로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각3) 표절 게임인 <탕탕특공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각4) 앞서 언급했다시피 캐주얼 플레이어들 역시도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여 하드코어 하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이 인터뷰에서 드러났다는 점에서 시간 소모가 필수라고 보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플레이하는 게임들 자체가 수십~수백 시간을 소모하는 하드코어 게임들이 아니라 시간 소모가 짧은 게임을 반복하여 플레이한다는 점에서 하드코어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플레이한다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짬을 내서 반복적으로 플레이하기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어설명

해금 요소 : 레벨 등 요구조건을 채우지 못해 얻을 수 없었던 플레이 요소를 획득하는 것을 해금한다고 한다.


참고문헌 및 자료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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