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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없는 자 Oct 26. 2022

교과서적인 레벨 디자인

아홉 번째 게임, 지오메트리 대시

소재 : 무난(슈퍼 헥사곤과 동일하게 도형과 음악 외에는 없다)

접근성 : PC, ios, 안드로이드 전부 가능. 익혀야 할 규칙도 별로 없다. 접근성은 좋은 편.

시간 소비 및 중단 가능성 : 스테이지 하나 당 1~2분

체감 난이도와 벌칙 : 각 레벨마다 다르다.


단순한 캐주얼 플랫포머를 넘어, 전 세계 게임계의 위대한 고전

플랫포머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100%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맵 디자인, 스테이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플랫포머라는 형식을 넘어 게임계의 고전이 된 슈퍼 마리오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쉽다. 슈퍼 마리오의 규칙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2D 슈퍼마리오를 기준으로 삼아보면, 점프를 통해 난관을 통과하고, 적들을 밟아 죽이며 스테이지의 오른쪽 끝에 도달한다. 아이템을 먹으면 강해 지거나 목숨이 하나 더 생겨나는 등 다른 자잘한 규칙들이 있지만, 핵심은 이 정도다. 이런 단순한 규칙만으로도 장르를 넘어 게임계의 영원한 고전이 된 이유는 다양한 기믹과 콘셉트를 갖춘 레벨 디자인에 있었다. 점프로 어떤 장애물을 넘을지, 한정된 공간 하에서 어떻게 점프를 하여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지, 만들어진 메커니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레벨 디자인에 달려있다.


<지오메트리 대시>(이하 지메) 역시 간단한 규칙만 갖고도 세밀한 레벨 디자인을 통해 규칙의 활용을 극대화한 케이스에 속한다. 우선 지메의 규칙은 단순하다. 게임의 규칙을 아주 간단하게 나열해보면 이렇다.


1.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의 분신인 도형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2. 도형이 지형지물에 닿으면 게임에서 패배한다.

3. 도형은 방향키로 점프할 수 있으며, 위쪽으로만 점프할 수 있다.

4. 스테이지의 오른쪽 끝까지 도형이 이동하면 게임에서 승리한다.


일전에 설명했던 슈퍼마리오처럼 세부적으로는 파고들 여지가 있지만, 핵심적인 규칙은 이게 전부다. 게임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사용하는 버튼은 하나, 위쪽 방향키뿐이다(스페이스 바를 눌러도 된다). <쿠키런>처럼 플레이어가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캐릭터가 움직이는 방식이기에 플레이어는 타이밍에 맞춰 점프만 잘하면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쿠키런>을 제법 재미있게 즐겼던 플레이어라면 이 게임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간단한 조작과 규칙을 가지고 있는 데다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플레이할 수 있으니 접근성은 매우 좋은 게임이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앱 스토어에는 두 가지 버전, 라이트 버전과 본 버전이 있다. 라이트 버전은 무료로 배포된 버전이기에 우선 무료로 다운로드하여 플레이해보고 취향에 맞는 게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도 용이하다.


플레이 과정은 그다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커스텀 맵이나 추가된 맵들을 제외하고 라이트 버전에 수록된 13개의 스테이지만 하더라도 상당한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리듬 기반의 게임이기에 박자감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쉬울 수도 있다). 게임은 레벨 디자인을 활용하여 이 단순한 규칙을 점점 심화하여 활용하기 때문이다. 활용해야 하는 기믹이 늘어날수록, 게임의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욱 깊어진다.


메인 맵의 초반부 스테이지 기믹들을 몇 가지 설명해보면 이렇다.


왼쪽 상단에서부터 오른쪽으로 1. 비행기 운전 / 2 자동 하이점프 / 3. 공중 점프 / 4 지형 역전


1. 비행기 운전

기본적인 조작과 난관이 되는 지형, 비행기 운전을 배울 수 있는 레벨이다.


2. 자동 하이점프

밟으면 자동으로 하이점프가 되는 기믹이다. 이를 이용해 평소에 지나갈 수 없는 지형을 넘거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하이점프가 닿는 지점에 난관을 설치하여 회피를 유도할 수도 있다.


3. 공중 점프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공중에 있을 때 다시 점프를 할 수 있게 만든 기믹이다. 하이점프 기믹과 유사하게 지나갈 수 없는 지형을 넘거나 새로운 난관을 만들어 내는 용도로 쓰인다.


4. 지형 역전

마지막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위아래 화면이 거꾸로 변하는 기믹을 뜻한다. 단순히 지형을 위아래로 바꾸었을 뿐이지만 처음 플레이를 할 때는 상당히 헷갈린다.


이런 식으로 게임은 매 스테이지마다 새로운 기믹을 추가하면서도, 기존 기믹에 해당하는 난관을 설치하여 이전에 학습했던 기믹에 대한 대처법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만든다. 아니면 기존 기믹을 응용하여 새로운 난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게임을 하는 내내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학습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덕분에 이 게임의 난이도는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수록 단계적/규칙적으로 상승한다. 리듬 기반의 게임임에도 초반 스테이지는 '박치'조차 여러 번 트라이하다 보면 충분히 깰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 소위 고인물들을 위한 데몬 이상의 스테이지는 웬만큼 리듬/플랫포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클리어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난관을 만들어 낸다. 공식 메인 스테이지들은 거의 플랫포머의 교과서에 가까울 정도로 레벨 디자인이 깔끔하다. 추가로 리듬 기반의 플랫포머답게 리듬에 따라 버튼을 누르면 거의 정확하게 장애물을 통과하고 안전한 발판을 밟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면서도 통일성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한 게임이다.


일각에서는 지메같은 게임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 게임이 단순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프밖에 하는 게 없으니 별 볼 일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포토리얼리즘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언리얼 5 엔진의 게임들, 현직 소설가 뺨치는 필력을 갖춘 풍부한 각본을 보여주는 <에이지 오브 데카당스>,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와 철학으로 무장된 <디스코 엘리시움> 같은 게임들을 보다가 지메같은 게임을 보면 초라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현대 게임에는 여러 요소가 혼재되어 있기에 그중 어느 특정한 부분만 콕 집어서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의 장점이 뭘까? 실사 같은 그래픽? 많이 따라잡았다고는 해도 아직은 영화가 더 뛰어나다. 대단한 철학적 메시지? 책을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영역을 게임이 취할 수 있고,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게임이 가장 잘하는 영역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지메같은 게임의 가치는, 기존 형식적 측면을 매우 단순화시킨 대신 게임만이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경험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게임 내부에 존재하는 요소는 규칙, 다른 목적 없이 오로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존재하는 도형 모양의 기호, 리듬 기반 게임이기에 리듬에 맞춰 설치된 발판과 음악 등. 화려한 그래픽이나 거창한 스토리 같은 건 없을지 몰라도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만큼은 충실하다(리듬 게임이기에 음악도 있지만). 플레이어는 리듬에 맞춰 정확하게 방향키를 입력하여 난관을 피해내고, 곡이 끝나면 게임 한 판이 끝난다. 그 과정은 짤막하지만, 게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 리듬과 맞춰 플레이어와 게임이 정확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김민호에 따르면 악보에 맞추어 키를 입력하는 게 게임의 전부일만큼 ‘빈곤해 보이는’ 형식의 리듬 게임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게임 플레이의 원초적 면모를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메 역시 위 주장에 정확히 부합하는 게임이다. 지메는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만 남겨두고 세밀하게 정제한 게임 플레이 덕분에 '이것만이 게임이다'까지는 아니어도, '이것만큼은 게임이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닌텐도는 항상 같은 목표를 가지고 출발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새로운 방법을 선보이는 것이죠.

(중략)

어떤 게임 개발사는 편견, 이데올로기, 미국 개척자들의 쇠퇴 등에 대한 게임을 만든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진공 청소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게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 Game Maker's ToolKit

이런 분들에게 추천


쿠키런과 같은 런앤건 플랫포머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

컨트롤에 자신 있으신 분

박자감이 좋으신 분

점진적으로 게임 실력을 늘리는 걸 선호하시는 분


이런 분들에게 비추천


박자감이 안 좋으신 분(박치)

미세한 컨트롤이 어려우신 분

스토리 게임이나 그래픽이 화려한 게임을 선호하시는 분


참고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2u6HTG8LuXQ&t=265s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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