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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Oct 28. 2022

 디지털 게임의 미래는 캐주얼 게임에 있다


출처는 게임메카. '매트릭스 어웨이큰스 언리얼 엔진 5 익스피리언스' 테크 데모.

놀라운 그래픽이었다. 더 게임 어워즈 2021에서 에픽게임즈가 언리얼 엔진 5의 기술을 토대로 제작한 매트릭스 어웨이큰스 이야기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드디어 게임이 영화를 따라잡았다거나, 실사와 다름 없다는 식으로 차세대 그래픽 찬양을 시작했다. 나 역시 놀라웠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래픽이라 할지라도 영화와 게임 간에는 눈에 띄는 격차가 존재했었는데, 여전히 어느 정도 차이는 있긴 해도 이 정도면 거의 다 따라잡은 수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그래픽이었기 때문이다.


출처는 라프 코스터. 1985-2017 사이 게임 개발 비용에 관한 데이터
이번 세대의 AAA 작품 개발주기는 약 5년이며, 개발비용은 8천만에서 1억 5천만 달러 사이입니다.

그리고 게임 개발 비용이 앞으로 모든 세대의 두 배가 될 것입니다.

- 숀 레이든


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이미 천문학적으로 올라간 게임 개발 비용이 더 올라갈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현대 게임들이 마케팅 요소로 삼는 게임 요소 몇 가지를 살펴보자. 실사같은 그래픽, 풍부한 플롯의 각본이나 캐릭터성, 영화 같은 컷신 등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기획자, 프로그래머, 시나리오 라이터, 그래픽 아티스트, CG, 레벨 디자이너, 배우, 성우, 애니메이터 등 현대 게임 개발자들의 직종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으며 인건비도 어마무시하게 높다. 관련 장비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만큼 싱글 게임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엔딩을 한 번 보고나면 더 이상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파이널 판타지 7>의 리메이크처럼 파트별로 게임을 쪼갠다든지, DLC로 게임을 나눠 팔거나 가챠 요소를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BM요소를 구현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재미 이론>의 저자 라프 코스터, SIE Global Studios의 전 회장인 숀 레이든 등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현대 AAA 게임 개발 비용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이러한 게임들은 왠만큼 많이 팔리지 않는 한 흑자를 보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그만큼 현대 게임들의 개발 가성비는 정말 안 좋다. 기술 발전이 게임 퀄리티의 발전을 이끌어 내는 것도 아니다. 언챠티드, 라스트 오브 어스 등 유명 게임들의 리마스터, 리메이크가 게임 퀄리티를 바꿨는지 자문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크다.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가고 대자본이 투입될 수록 게임은 투자자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투자된 돈은 그 이상으로 불려서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투자비를 포함한 개발비를 회수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미 검증된 성공 공식만을 따라야 한다. 혹여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하면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게임 디자인적으로 타협을 할 수밖에 없고, 도전적이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는 어렵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나 속은 평범한 게임들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근래 나온 <어쌔신 크리드 : 발할라>,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 <배틀필드 2042>, <고스트 오브 쓰시마> 등의 AAA게임들은 대자본이 투여되어 현실과 타협하고 '무난하게' 만들어진 게임들의 전형이다. 이 게임들이 나쁜 게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게임들과 비교하여 새롭다거나 도전적인 시도가 없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 게임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인디 쪽으로 눈이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디 게임이라 해서 항상 좋은 게임만 나오는 건 아니고 단발성 아이디어 정도에 그치거나 양산형, 아류작도 많지만, '인디'이기에 할 수 있는 시도들이 많다. 2~3일 안에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루덤 데어(ludum dare)각1)와 같은 행사가 대표적이다. 윈도우 프레임, 타이탄 소울 등 인디 게임이기에 시도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온다. 바바 이즈 유, 샷건 킹과 같이 본 연재에서 소개한 게임들도 루덤 데어 출신이다. 물론 대부분은 단발성 아이디어에 그치고, 다듬어서 본 게임으로 만들어내고 상용화하는 과정이 수 개월에서 수 년 정도는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판은 인디 쪽이 아니면 드물다. 물론 비용도 게임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AAA만큼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기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본 연재는 '캐주얼 게임'에 대한 연재다. 왜 갑자기 뜬금없는 AAA와 인디 게임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는가? 인디 게임들 역시도 판도를 장악한 게임들은 캐주얼 요소가 강한 게임들이라는 게 현실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근거는 이전에 아이작과 슬더스, 뱀서의 사례를 보면서 충분한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판도를 장악한 게임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과거 닌텐도 패미콤 시절이나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플래시 게임들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게임들도 인디 쪽에서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게임들의 공통점은 뚜렷한 기술적 한계 속에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 게임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게임들의 상당수는 시간 소모가 짧고, 접근성이 좋은 캐주얼 게임의 요소를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블루 아카이브의 인게임 화면


일각에서는 이런 지적을 할지도 모른다. 캐주얼 게임이라는 주장을 핑계로 게임 내부에 존재하는 메커니즘을 축소시킨 후, 노골적인 BM만 남겨놓는 식으로 게임을 대충 만든다는 주장이다. 플레이 타임을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고전적인 재미요소를 전부 제거하고 게임을 지극히 단순화 시킨 다음, 남은건 BM과 결제 모듈밖에 없어졌다는 이정엽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합리적인 지적이다. 실제 모바일 캐주얼 게임들을 보다 보면, 게임 플레이 과정은 전부 스킵해버리고 결과물인 아이템만 나오게 한다든지, 성적인 표현이 강조되는 캐릭터 가챠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임이 얼마 전 과도한 성적 표현으로 인해 청소년 이용불가로 등급이 개정된 <블루 아카이브>다. 이 게임의 게임 플레이 과정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매우 간소화되어 있으며, 선정적인 캐릭터 묘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캐주얼 게임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캐주얼 게임의 가능성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메커니즘을 축소시키거나 단순화한다는 말이 게임의 깊이를 없앤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나 <동키콩>같은 고전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 비록 기술적으로 조악하고 게임성도 단순해보일지 모르나, 이면을 파고들면 굉장한 깊이의 게임 플레이를 갖춘 ‘클래식’이다. 플레이어를 순차적으로 학습시키기 위해 점진적으로 새로운 기믹을 소개하고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고전적인 게임 디자인의 측면에서 봤을 때, 현대 AAA 게임들보다도 나은 측면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디지털 게임의 캐주얼화는 원초적인 게임 플레이를 추구했던 레트로 게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비록 그것이 기술적 한계로 인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결과물 일지라도). 패미콤이나 아케이드 게임들의 메커니즘과 <애니팡>같은 현세대 캐주얼 게임의 메커니즘을 비교해보면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게임의 혁신을 이루어내기 위한 토양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리스크가 큰 AAA보다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캐주얼 게임 쪽이 풍성하다. 쏟아지는 캐주얼 게임의 홍수 속에서 악랄한 BM으로 살아남는 게임도 있겠지만, 아이디어와 훌륭한 게임 플레이가 돋보이는 게임들도 나올 수 있다. 더 많은 플레이어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임도 캐주얼 게임이다. 제 아무리 <엘든 링>이 1600만장 판매를 넘어 2000만장의 판매를 바라보고 있다고 한들, 10억 회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자랑하는 <캔디 크러쉬 사가>나 5억 회를 넘어가는 <클래시 오브 클랜>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기 때문이다각2). 플레이어가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 캐주얼 게임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게임의 미래는 캐주얼 게임에 있다.


각1) 컴포(the compo)와 잼(the jam)사이의 세부 규칙이 조금 다르긴 하나 큰 차이는 없다.

각2) 캔디 크러쉬 사가나 클래시 오브 클랜을 인디 게임으로 보기는 힘드나, 어디까지나 캐주얼 게임의 접근성이 더 우수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들었다.


참고자료

https://www.gamesindustry.biz/shawn-layden-gamelab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672261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27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852279&memberNo=40601392
https://venturebeat.com/pc-gaming/the-cost-of-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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