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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Aug 05. 2021

오븐 속 일기4-빨간 머리 앤과 식빵

앤이 만든 따끈한 가족

지난 주말 Netflix의 tv 시리즈 '빨간 머리 앤'을 봤다. 추천이 자자한 작품이라 알고 있는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고전 원작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고, 주인공도 친숙해서 굳이 tv 시리즈로 봐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묵혀두고 있었다. 그러다 가족들이 보기 시작해서, 나도 덩달아 같이 보게 되었다. 

시즌1을 다 보고 나니, 앤에게 따끈한 식빵을 구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덥석 들어, 

엉겁결에 드라마를 본 김에, 엉겁결에 식빵도 굽게 되었다!


식빵 레시피는 생각보다 재료는 단순했다. 식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온도다.

어느 정도의 인내와 주위 환경의 도움을 받아야 완성할 수 있는 빵이다.


반죽 발효는 실내온도 27~28도에 맞추고,

5번에 걸쳐 총 2시간 동안 발효를 거쳐야 한다.

발효를 거치면서 앤이 사랑하는 가족을 갖기까지 거쳤던 모진 시절들이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 학대를 당하고 가정부 노릇을 하며 누구보다 차가운 현실을 견뎠을 텐데

어떻게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을까?


앤은 언제라도 가족을 이루기에 맞춤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아주 조금 안 맞았던 것 같다.

앤에게 안락한 세상을 만들어 줄 가족을 만나기까지의 적당한 시간.

그 시간까지 앤은 아주 훌륭하게 버텨낸 것이다.

내가 앤에게 식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이 든 건 이 때문인 걸까?

알맞은 온도와 시간을 거친 식빵은

글루텐이 잘 만들어져 결이 끈끈하게 엉켜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성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빵집에 가도 식빵은 기본 메뉴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정말 맛있는 식빵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다들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흔치 않다.


예전에 잠시 혼자 살 때 식빵을 사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큰 덩치의 빵을 나 혼자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결심이 설 때에만 식빵을 사곤 했었다. 다시 본가로 돌아와 가족들이랑 같이 살게 되니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식빵을 산다. 나눠 먹으면 되니까! 입 하나가 무섭다고, 오히려 몇 조각 밖에 못 먹었는데 식빵이 다 사라져 있어 속상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번에 내가 직접 만든 식빵도 예외 없이 가족들과 나눠먹었다. 


앤이 금방 구워낸 나의 따뜻한 식빵을 북북 찢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남김없이 먹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내 식빵 맛이 유별나게 맛있지 않더라도, 흔치 않은 사랑을 나누는 가족들과 먹으니, 다시 먹고 싶어질 만큼 맛있게 먹을 것이다. 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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