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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Aug 05. 2021

누군가의 오븐 속1- 동네 케이크 가게

남의 오븐 맛보기

디저트이나 빵을 직접 탄생시키는 것을 매우 사랑하지만, 솔직히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직까진 훨씬 익숙하고 맛있다. 또 다른 사람이 만든 것들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매우 많은 것들이 숨어 있기 때문에 맛뿐만 그것들을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크림은 어떤 우유를 썼을까? 어떻게 이렇게 우유맛이 풍부하게 느껴지지? 시중에서 파는 게 아닌가? 이 조합은 어떻게 생각하게 됐을까? 이 모양은 어떻게 잡은 거지? 보통 답을 알게 되는 경우는 없지만 혼자서 여러 질문을 띄워보며 맛을 음미하는 일은 오로지 디저트에 집중하게 되는 너무나도 소중한 명상시간이다. 게다가 가게 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간은 마치 누군가의 완벽한 세계관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거대한 일기장 같은 느낌이랄까. 남의 것을 보고 탐내는 것은 나의 취미이자 특기다!


좋아하는 여러 디저트, 빵 가게 중 오늘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내 마음에 아주 가까이 위치한 케이크 가게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이 가게는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포스팅을 보자마자 '아니, 이런 가게가 우리 동네에 있다고?'라는 놀라움과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던 곳이다.



아담하고 따뜻한 공간에 아기자기한 사랑스러운 케이크들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완벽한 조합이다.


여러 선택지들 중, 2가지 케이크를 골랐다.  


처음 이 카페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제일 궁금했던 예쁜 분홍 색깔의 귀여운 '베리 블론디'와 '오페라 케이크'를 주문했다. 

'베리 블론디'는 비주얼만큼이나 상큼하고 귀여운 맛이었다. 한입 넣자마자, 라즈베리의 새콤한 맛이 매우 기분 좋았고,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맛을 꾸덕한 밀도의 화이트 브라우니가 꽉 잡아주었다. 조화로운 새콤함, 달콤함과 만족스러운 식감까지.. "패딩을 입을걸 그랬다." 염불을 외면서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뚫고 이 케이크를 먹으러 온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함께 주문한 '오페라 케이크'는 사실, 이미 '베리 블론디'로 만족감을 충족했기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먹었는데, '이건 진짜 초콜릿이다!' 외치는 묵직한 다크 초콜릿 맛에 감탄하고 말았다.


디저트의 맛도 훌륭했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식기들, 가게의 차분한 분위기가 정말 완벽한 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기분이 드었고, 이 순간이 다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나 만족스러웠던 첫 방문을 마치고, 짧은 기간 안에 나는 서둘러 두 번째 방문을 행하였다!

두 번째 방문은 애석하게도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첫 방문에도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두 번째 방문도 장대비가 내리다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인가? 그렇다면, 낙도 보통 낙이냐?  엄청나게 맛있는 낙이기에 나는 바짓단을 다 적셔가며 그라데이션 청바지를 완성시킨 후에야 가게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어여쁜 하얀 케이크 '딸기 몽블랑'과 '레몬 쇼트 케이크' 두 가지를 주문했다. 

개성 있게 솟아있는 원뿔 모양의 '딸기 몽블랑'은 첫 방문 때 품절되어 먹지 못했기에, 서둘러 주문해서 맛을 보았다. 부드러운 크림과 딸기의 만남은 역시나 안정적이다. 새하얀 크림을 잔뜩 떠먹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하얗게 투명해지는 기분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크림은 평소에 신경안정제로 써도 될 것 같다.  어쩜 기분을 한 번에 이렇게 풀어주는 걸까.



'딸기 몽블랑'이 마음을 풀어주는 맛이라면, '레몬 쇼트 케이크'는 마음을 들뜨게 해주는 맛이다. 산뜻한 레몬 맛과 달콤함이 발랄한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이걸 먹어서 그런가 집에 가는 발걸음이 오래간만에 가벼웠다. 디저트를 만끽하고 일상을 맞이 할 힘을 얻어갈 수 있는 케이크다.


자그마한 가게에서 자그마한 케이크 조각으로 얻은 기쁨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새삼 모든지 매우 큰 것도, 많은 것도 그리 의미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의미 있는 건 아주 작아도 크게 느껴지고, 아주 미세한 것도 강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얼른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머릿속으로 날짜를 몇 번이고 떠올려 갈 수 있는 날을 계산했다. 나에게 의미 있는 행복을 떠올리게 해주는 디저트 가게는 몇 없기 때문에 첫 번째, 두 번째 방문처럼 날씨가 궂어도 반드시 또 방문할 것이다. 고생 끝엔 디저트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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