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 속 일기4-빨간 머리 앤과 식빵

앤이 만든 따끈한 가족

by 이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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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Netflix의 tv 시리즈 '빨간 머리 앤'을 봤다. 추천이 자자한 작품이라 알고 있는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고전 원작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고, 주인공도 친숙해서 굳이 tv 시리즈로 봐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묵혀두고 있었다. 그러다 가족들이 보기 시작해서, 나도 덩달아 같이 보게 되었다.

시즌1을 다 보고 나니, 앤에게 따끈한 식빵을 구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덥석 들어,

엉겁결에 드라마를 본 김에, 엉겁결에 식빵도 굽게 되었다!


식빵 레시피는 생각보다 재료는 단순했다. 식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온도다.

어느 정도의 인내와 주위 환경의 도움을 받아야 완성할 수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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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 발효는 실내온도 27~28도에 맞추고,

5번에 걸쳐 총 2시간 동안 발효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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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를 거치면서 앤이 사랑하는 가족을 갖기까지 거쳤던 모진 시절들이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 학대를 당하고 가정부 노릇을 하며 누구보다 차가운 현실을 견뎠을 텐데

어떻게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을까?


앤은 언제라도 가족을 이루기에 맞춤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아주 조금 안 맞았던 것 같다.

앤에게 안락한 세상을 만들어 줄 가족을 만나기까지의 적당한 시간.

그 시간까지 앤은 아주 훌륭하게 버텨낸 것이다.

내가 앤에게 식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이 든 건 이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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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온도와 시간을 거친 식빵은

글루텐이 잘 만들어져 결이 끈끈하게 엉켜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성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빵집에 가도 식빵은 기본 메뉴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정말 맛있는 식빵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다들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흔치 않다.


예전에 잠시 혼자 살 때 식빵을 사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큰 덩치의 빵을 나 혼자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결심이 설 때에만 식빵을 사곤 했었다. 다시 본가로 돌아와 가족들이랑 같이 살게 되니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식빵을 산다. 나눠 먹으면 되니까! 입 하나가 무섭다고, 오히려 몇 조각 밖에 못 먹었는데 식빵이 다 사라져 있어 속상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번에 내가 직접 만든 식빵도 예외 없이 가족들과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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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이 금방 구워낸 나의 따뜻한 식빵을 북북 찢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남김없이 먹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내 식빵 맛이 유별나게 맛있지 않더라도, 흔치 않은 사랑을 나누는 가족들과 먹으니, 다시 먹고 싶어질 만큼 맛있게 먹을 것이다. 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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