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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Aug 05. 2021

오븐 속 일기3-첫 카스테라

빈틈없는 꽉 찬 사랑이 만든 빵조각


나는 할머니와 어릴 적부터 함께 살았는데,

요즘 들어 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 입퇴원을 반복하며

할머니와 가족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병세가 안 좋아지자

입맛이 없어져 밥도 간식도 도통 드시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엄마와 이모가 영양식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장을 보러 간 사이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할머니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할머니 옆에 꼭 붙어있었다.

함께 티비를 보는 중, 할머니가 불현듯

카스테라가 먹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하시자마자

할머니에게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생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카스테라를 만들러 부엌으로 향했다.


근처 빵집에서 카스테라를 사 올 수도 있었지만

할머니를 위해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던 나는

정성 들여 직접 만들어드리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첫 도전을 했다.


카스테라는 의외로 재료도 만드는 과정도 간단했다.

계란, 꿀, 중력분, 오일, 설탕, 바닐라 익스트랙 모두 집에 있는 재료들이었고

과정도 재료를 섞어 놓은 반죽에 머랭을 넣어 함께 섞은 후 오븐에 넣는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한 레시피였다.


할머니가 드시고 싶어 하실 때 얼른 드리기 위해 서두르느라

마음은 급했지만 최대한 완성도 높은 빵을 드리고 싶어

짧고 굵게 집중과 정성을 잔뜩 들여 만들었다.


반죽을 완성한 후 30분 동안 오븐에서 구운 후 꺼내 보니 매우 잘 구워져 있었다!

뒤집어서 식혀준 후 살살 잘라보니 평생 봐왔던 카스테라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할머니에게 완벽한 간식이 되어 줄 것 같아

말썽 없이 예쁘게 나와준 카스테라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시중에 파는 빵과 흡사하게 만든 나에게 감탄하는 사치스러운 시간도 짧게 즐겼다.


작은 세리머니를 마친 후 서둘러 두 조각을 담아 할머니에게 가져갔다.

할머니는 어디서 났냐며 반가워하시며

내가 만들었다 하니 파는 맛과 같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워낙 입맛이 없으셔서 겨우 두 입정도 드신 후 할머니는 미안해하시며

나중에 먹겠다며 포크를 내려놓으셨다.


 










(완성된 카스테라 한 통은 결국 삼촌이 거의 다 드셨다.)



카스테라가 아픈 할머니의 입맛을 돋우는 기적은커녕,

할머니가 아닌 애먼 사람의 뱃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어느 정도 제 역할은 해줬다고 본다.


입맛도 기운도 없던 할머니께 갓 구운 카스테라가 작은 미소라도 짓게 했으니

오늘도 베이킹은 어김없이 성공이다!


할머니는 내게 빈틈없이 꽉 차게 사랑을 주셔서

살짝만 건드리면 툭 튀어나와버린다.

나는 그렇게 툭 튀어나온 사랑을 할머니께 드리곤 하는데,


어느 날에는, 어깨 안마

어느 날에는, 손잡고 동네 산책

어느 날에는, 좋아하시는 호두과자 사드리기.


오늘은 카스테라가 툭 튀어나왔다.


누군가에게 나눠줘도 남을 만큼 넉넉히 받은 사랑을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막막하기도,

언제까지 드릴 수 있을까 함께할 유한한 시간이 두렵기도 하다.


오븐의 타이머처럼 시간이 얼마큼 남았는지 볼 수 있다면 좋을까 싶다가도

헤어짐이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진 않아 고개를 저어버리곤 한다.


레시피를 보지 않고 "이제는 눈감고도 만들지!" 외치며

뚝딱 카스테라를 만들어내는

할머니만의 카스테라의 장인이 될 거라고 다짐하며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백 번째, 이백 번째 카스테라도 할머니께 대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준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프다.


카스테라야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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