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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Apr 03. 2022

사진으로 걷는 올레18-1코스

제주도민의 언제 포기할지 모르는 올레길 돌파기 (10)

1. "그 섬에 가고 싶다." 추자도는 올레길 돌파를 계획하고 나서 올레 코스를 살피며 가장 기대했던 올레 코스였다. 추자도는 제주도에 속한 섬이지만 제주도 같지 않은 섬이기도 하다. 우도나 비양도, 마라도에 비해 자주 닿을 수 없는, 어쩌면 가기 위해선 결심 따위의 굳은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추자도에서 보낼 계획으로 '결심'을 세운 나는 추자도로 발길을 옮겼다. 추자도로 향하는 배에서 올레길을 계획하며 처음으로 내키는 대로 길을 걷기로 했다. 그건 올레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추자도 여행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올레길 코스 밖의 숨겨진 길 또한, 추자도를 겪는 일에 필요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오늘 사진으로 걷는 올레길은 다소 뒤죽박죽이다.


2. 배가 닿은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올레길 안내소에서 시작 스탬프를 야무지게 찍고 첫걸음을 옮기면 추자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다. 올레길을 걷는 객의 대부분은 버스 정류장에서 하추자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당일치기 객이 많은 추자도에서 올레길을 걷기 위해선 중간 스탬프 지점인 묵리에서 항구로 돌아오는 쪽이 시간적으로 알맞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객들의 초조함을 뒤로하고 1박을 결심한 나로서는 느긋한 발걸음을 옮긴다. 알록달록 예쁜 추자초등학교의 전경 곳곳에는 녹이 많이 보이는데, 바다가 훤히 보이는 교실의 숙명일 터였다.


3. 왼쪽으로 가면 올레길, 오른쪽으로 가면 '나바론 하늘길'. 올레길 경로에서 벗어나 하늘길을 걷기로 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하늘길 끝 정자에서 만난 한 어르신께서 하늘길에 붙여진 '나바론'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나바론 요새'라는 외국 영화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어르신의 눈빛과 말에는 젊었던 그때 그 시절의 힘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힘찬 이야기와는 별개로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길에 낯설게만 느껴지는 영어가 붙어 있어 마음이 착잡했다. 하늘길을 걸으며 만난 우리의 절경들이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4. 하늘길은 하늘로 닿을 듯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걷는 길이다. 괜찮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선 오금이 저리는 벼랑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하고 투박하게 조성된 길을 걸으려면 한 발씩 신중히 걸어야 한다. 고된 하늘길을 걸을 수 있는 건, 고개를 들면 펼쳐지는 절경 덕이다. 언젠가 찾았던 대륙의 끝, 호카곶에서 보았던 망망대해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경치가 앞뒤 양옆으로 펼쳐진다. 숨이 가빠지는 구간이 많아 쉬엄쉬엄 걷는다. 쉬엄쉬엄 걷는 김에 뒤를 자주 돌아볼 수 있고 주변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5. 하늘길에서 내려와 다시 올레길에 합류한다. 하추자도로 향하는 길. 추자도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2개의 섬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두 섬은 폭이 좁다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상추자의 군락과 하추자의 군락은 꽤 거리가 있어 상추자도에 사는 이들이 하추자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 기울일 적에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게 좋겠다고 쓸데없는 생각하며 하추자도로 향한다. 여행객의 대부분은 상추자도에 머문다. 그래서 식당이나 숙소도 상추자도에 몰려 있는 편이다. 우리도 하추자를 걷다가 올레길을 마무리 짓지 않은 채 상추자로 돌아와 식, 주를 해결할 요량이었다. 남은 길은 다음 날 하추자도에 위치한 신양항에서 제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기 전에 이어 걸을 계획이다.


6. 큰 기대를 안고 온 묵리수퍼. 의자 두어 개가 놓인 수퍼에서는 고된 길을 걷고 온 내 입맛을 당기는 갯바당 라면을 판다. 애초에 묵리수퍼에서 라면과 함께 막걸리 한잔을 기울일 생각에 들뜬 마음이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다녀갔던 때에는 갯바당 라면이 없는 날이었다. 자주 올 수 없는 추자도이기에 들떴던 마음에 상처가 난다. 아쉬운 대로 컵라면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켠다. 갯바당 라면 없는 한상이지만 나름대로 다시 걸을 힘을 얻는 연료 역할이 될 만한 순간이다.


7. 어느덧 따뜻해진 바람과 맑은 바다,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올레길을 반긴다. 몇몇 군데에는 성미가 급한 벚꽃도 고개를 들고 있다. 추자도는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배가 결항되는 때가 많은 섬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는 오가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 날씨와 걷기에 넉넉한 날씨로 추자도를 만날 수 있었다.


8. 하추자도를 빠져나와 돌아온 상추자도에서 기다렸던 저녁을 먹는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삼치회. 추자도 삼치는 품질이 좋은 생선이고 삼치회는 회를 잘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생선회다.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식당이라 어느 정도의 바가지를 각오하고 왔는데 납득이 가지 않을 만한 가격대는 아니어서 조금 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삼치에 소주를 마시고 길에서 채 풀지 못했던 이야기를 함께 걷는 친구와 나누며 첫날의 추자도를 마무리한다.


9.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길로 나선다. 아직 걷지 못한 하추자도의 길을 마저 걷기 위한 발걸음이다. 삼치만큼이나 추자도에서 먹어봐야 할 굴비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예초리 마을로 향한다. 하추자 신양항에서 오전 배편으로 제주로 빠져나갈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예초리 포구는 그 시간을 쪼개어 갈 만큼 가치가 있는 고즈넉한 포구였다. 나는 조용한 포구에서 위안을 얻곤 하는데 조용할 틈 없는 제주의 포구에서 잊었던 위안을 얻는 때였다. 아울러, 포구 끝 수평선에 걸린 섬들은 기이한 감동을 선사한다.


10. 추자도를 아련하게 두고 초조하게 떠나는 뱃길. 아쉬움이 뱃길을 따라 바다에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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