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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era Jun 01. 2020

[임신 일지/#3] 즐겁지 않은 임신 초기의 증상들

어서 와, 이런 무기력감은 처음이지?

사실 테스트기를 하기 전에도 '혹시...?' 싶은 증상이 있었다. 평소라면 입맛이 폭발할 시기인데 이상하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뭘 먹어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 때부터 15주 차가 넘어서 까지도 입맛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먹고 싶지 않았고 오늘은 이게 당긴다든지, 어떤 음식을 봤을 때 맛있겠다! 싶은 순간이 없었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연어회 역시 예전의 경험으로 맛있었던 것을 기억하지 당장 먹고 싶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나를 가장 성가시게 한 입덧의 느낌인 느글거림은 6주쯤 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느낌을 배멀미, 숙취 등에 비유하는데 다행히 나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고 차멀미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음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느글거리고 음식 냄새도 싫어지고. 막상 뭔가 먹을 때는 그럭저럭 먹을 수 있는데 먹고 나면 또 느글느글. (남편은 이 '느글거림'이 대체 뭐냐고 그랬는데 어떻게 느글거린다는 표현을 모를 수가 있는거지?!)

그나마 입덧은 익히 들어 조금이나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입덧보다 더 괴로웠던건 어마무시한 무기력감이었다. 약 11주 차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평소보다 1,2시간 정도 늦게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 먹고 눕고 점심 먹고 눕고. 뭔가 먹으면 눕기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배가 안 고팠다면 굳이 일어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 몸이 피곤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피곤한, 언짢은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퍼지는 마법에 걸린 듯 했다. 그러다보니 그냥 침대에 누워 예능이나 보게 되고 그동안 나름대로 지켜온 나만의 아침 루틴도 소홀하게 되었다. 게다가 무언가 먹고 느글거림이 느껴지면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 있는 것이 좀 덜한 느낌이라 점점 게으르고 멍청해지는 듯한 생활 패턴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 늘었다. 잠도 많이 자고 입덧이 심한 편도 아니어서 먹을 것도 나쁘지 않게 먹는 편인데 모든 것이 귀찮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는 나 스스로가 나약해 보였다. 임신해서 막달까지 일하는 분들도 있고 첫째를 케어하며 생활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왜 나는 이렇게 무기력한건지, 내 정신 상태가 나약해서 핑계를 대고 있는건 아닌지 우울해졌다. 남편은 내 몸이 임신이라는 상황을 겪고 있으니 아직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며 죄책감 갖지 말고 쉬고 싶으면 마음껏 쉬라고 하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육아를 시작하면 몇 년간 내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데,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에 마지막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이건 여유로운게 아니라 나태한 생활이었다. 스스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건  마인드 컨트롤 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임신 전과 다른 점이 없어보이지만 임신이라는 상황과 호르몬 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는 시기니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너그러워지려 노력했다. 아이가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이고 한창 신체 부분들을 형성하고 있는 시기기에 크기는 작을지언정 나의 에너지와 영양분을 열심히 끌어다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이 있으니 늘 피곤하고 무기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마다 체력도, 감정도, 증상도 다르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했다. 특히 나는 외국인의 신분으로 타지에 와있으니 더 여유롭게, 무리하지 않고 생활하는게 지혜로운 것이라 믿었다.


내게는 이 때가 남과 비교하지 않기 그리고 인내를 연습하는 시기였다. 내가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아야 앞으로 아이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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