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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피나 Oct 31. 2024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연주해야 할 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본당에서 혼인미사가 있었다.

혼인미사 반주는 내가 벌써 15년째 토요일에 고 있는 봉사이자 연주.  시간 참 빨리 간다.

혼주 측의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혼인미사의 축가는 고린토서 13장 말씀(사랑의 찬가)이 가사인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를 하는데,

이 날은 시즌에 맞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축가로 하기로 했다.

기대 기대~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해설하시는 분이 이날 따라 축가가 있다는 멘트를 안 하셨고,

주례 신부님이 미사 전례문을 바로 하시면서 축가가 ‘자동 편집’이 되었다.  이런!

축가 없는 혼인미사는 디저트가 없는 만찬이라고 할까?

메인(혼인서약)은 있지만, 뭔가 아쉽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혼인하는 신랑, 신부에게 이 노래를 축가로 연주해 주고 싶었는데..

신랑신부가 퇴장하고 연주하면 장내가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릴 텐데 그렇게라도 해야 하나?

이때 지휘자님이 아래층으로 서둘러 내려가서 해설자에게 뭐라고 전달하셨고,

상황을 파악한 해설자가 축가가 있다는 멘트를 해서, 겨우 끼워서(?!) 축가를 할 수가 있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사는 다 아시죠?^^)

노래는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로 시작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로 마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대표하는 노래’로 많이 불려진다.

 

사실 이 노래는 ‘봄노래’다.

원곡은 봄이 배경인 노르웨이의 가곡인데, 이 곡을 시크릿 가든이 데뷔 앨범에서

“Serenade to Spring” - 봄에 대한 세레나데

로 발표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 곡에 한경혜가 가을에 어울리는 한국어 가사를 붙이고,  

바리톤 김동규가 2000년에 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발표해서 전국적으로 큰 히트를 쳤다.

이 노래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사 때문에 가을철 결혼식 축가로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는 봄노래, 대한민국에서는 가을 노래인 것이다.

이제는 K 가을 노래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가을에는 이 노래를 연주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다.


음식이 그렇듯이 음악에도 계절에 맞는 음악이 따로 있다.

가을에 듣고 싶은 곡이라면

향수(정지용 시, 김희갑 곡),

이브 몽땅의 고엽,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장밋빛 인생,

Mocedades(스페인어로 '젊은이들'이란 뜻)의  'Eres Tu'(당신입니다) 

미셸 사르두의 ' La Maladie d'amour'(사랑의 열병) 등이다.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고 싶은 곡은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

December, A White Shade of Pale (창백한 그림자)

에릭 사티의  'Je te veux'(그대를 원해요)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은 단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다.

10월이 가기 전에 오늘 이 노래를 연주해서 다행이다.

 

 15년 전쯤에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작은 성당에서 했던 연주회가 생각난다.

연주회에 오신 분들이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었는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야심 차게 앙코르 곡으로 준비해 놓고,

"10월 하면 어떤 곡이 생각나시나?"고 일부러 유도질문을 던졌다.


관객석에서 누군가 크게 외치셨다.

“잊혀진 계절!"

이런. 낭패다 낭패.

이분들의 가을 대표곡은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아니라,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었다.

항상 관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앙코르곡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모두가 함께 흥얼거리며 기쁘게 연주회를 마쳤다.


모두 멋지고 행복한 가을날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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